각종 설탕들. 대체 감미료인 아스파탐이 발암 유발 가능 물질로 지정될 것이라는 소식에 아스파탐이 함유된 식품에 대한 공포감이 퍼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나친 공포"라고 일축했다./Pixabay

제로콜라·막걸리 등에 쓰이는 대체 감미료의 일종인 아스파탐이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하는 ‘발암 가능 물질’로 분류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체 감미료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햄, 소시지, 탄 고기와 소금에 절인 생선도 발암 물질로 분류된 만큼, 아스파탐에 대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아스파탐은 도대체 어떤 물질이며 얼마나 위험하길래 WHO가 발암 물질로 지정하려고 할까.

◇WHO가 발암물질로 지정하는 이유

아스파탐은 설탕보다 200배 달지만 열량은 낮아 ‘무설탕’ 음료와 과자 등에 쓰이는 대체 감미료다. 미국 화학자 제임스 슐레터가 지난 1965년 발견했고, 1974년 미국, 1983년 일본, 1985년 한국에서 식품첨가물로 지정됐다.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아스파탐을 비롯해 22종을 설탕 대체 감미료로 승인했다.

전문가들은 IARC가 아스파탐을 ‘발암 가능 물질’로 지정하는 것은 ‘연구 활성화’의 목적이 크다고 봤다. IARC는 직접 실험하지 않고, 전 세계 연구 논문을 전문가들이 분석해서 발암 물질 여부를 결정한다. 이번 아스파탐 결정은 7000건의 연구 논문과 자료 1300건을 검토한 결과이다.

특히 지난해 3월 프랑스 소르본 파리 노릇이래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프랑스 연구팀은 성인 10만2865명의 식단, 생활 방식, 건강 정보 등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개인의 대체 감미료 소비량과 암 검진 정보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아스파탐을 많이 먹는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암 발병 위험이 1.15배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 커뮤니케이션)는 IARC가 아스파탐을 ‘발암 가능 물질 2B군’으로 지정할 예정인 것에 대해 “IARC가 프랑스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믿는다고 판단했지만, 자신은 없다는 뜻”이라며 “학계와 정부에게 ‘아스파탐 연구 경보’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아스파탐에 대한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으니, 전문가들이 추가 연구를 하도록 정부가 지원하라고 독려하는 차원이라는 뜻이다.

◇“아스파탐 관련 연구를 더 해달라는 뜻”

IARC는 발암 물질을 1, 2A, 2B, 4군으로 구분한다.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암을 일으키는 물질은 1군, 암을 일으키는 개연성이 있는 물질은 2A,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물질은 2B, 해당 없음은 4군으로 분류한다. 더 정확하게는 발암성 여부가 다수의 인체·동물실험 연구로 증명됐다면 1군, 연구 사례가 적으면 2A군, 동물실험에서 일부 확인되면 2B군이 된다.

조선DB

이덕환 교수는 “1군이라고 발암 강도가 세거나, 2B군이라고 발암 강도가 낮은 게 아니다”며 “아스파탐(2B)이 김치나 햄⋅가공육(1군) 같은 식품과 비교해 덜 위험하거나, 더 위험하다는 표현을 쓰는 것 역시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IARC의 구분은 말 그대로 연구 케이스에 근거한 ‘과학적 구분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술과 담배나 햄, 소시지 같은 가공육은 1군이고, 고온 조리 연기, 살충제(DDT)는 2A, 채소절임 휴대전화 전자파는 2B, 미네랄 오일은 4군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2A군에 있는 살충제(DDT)가 1군에 포함된 술과 담배보다 더 안전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 교수는 “아스파탐을 걱정하려면 우리가 매일 먹는 김치부터 걱정해야 한다”며 “채소절임이 2B군에 포함돼 있는데 김치만큼 발암성이 확실하지 않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발암 물질에 대해 이런 분류법을 쓰는 것은 암이란 질환의 특성 때문이다. 암은 만성질환이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예를 들어 복어 독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하지만 사람 세포에 암을 유발하는 요인은 수십, 수백 가지에 이른다. 이 교수는 “암과 같은 만성질환의 원인을 따지는 개별 논문은 단순한 추정에서 출발할 때가 많기 때문에 정확성을 따지기가 특히 더 어렵다”고 설명했다.

4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막걸리를 고르며 설탕 대체 인공감미료 '아스파탐'이 들어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아스파탐을 '발암 가능 물질'(2B군)로 지정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장수의 경우 '달빛유자 막걸리'를 제외한 모든 제품에 아스파탐이 들어있으며 지평주조 '지평생막걸리', 국순당 '생막걸리' 등에 아스파탐이 들어있다./뉴스1

◇한국인 WHO 발표에 유난히 반응

WHO 발표에 한국 사람이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지적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사카린이다. 설탕의 300배나 되는 높은 당도지만 열량이 없어 대체 감미료로 인기를 끌었지만, 1990년대 시장에서 아예 퇴출당했다. 1977년 사카린을 투여한 쥐 실험에서 방광종양이 발견됐다는 캐나다 연구가 발단이 됐다.

나중에 캐나다 연구진이 쥐 실험에서 일상 섭취량을 훨씬 넘는 사카린을 투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카린은 누명을 벗었다. 1993년 WHO에서 사카린은 인체에 안전한 감미료라는 결론을 내렸고 200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안전한 물질로 인정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사카린이 다시 사용되기까지 30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식약처는 2014년이 돼서야 빵, 과자, 아이스크림 등에 사카린 사용을 허용했고, 지금도 어린이용 식품에는 쓰지 않도록 한다.

이덕환 교수는 “사카린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한국은 국민적 정서 때문에 여전히 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조미료 성분인 글루탐산 나르튬(MSG)이나 커피믹스에서 우유 맛을 내는 카제인나트륨도 유해 물질 논란에 휩싸여 홍역을 치렀다.

WHO의 ‘발암물질’ 지정이 세계적 논란을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WHO가 지난 2015년 햄과 소시지 같은 가공육을 발암 물질 1군, 쇠고기 돼지고기 등 붉은 고기를 2A군으로 지정했을 때, 오스트리아 농림부 장관은 “햄이 석면과 같은 발암물질이냐”라며 자신의 트위터에 소시지를 먹는 사진을 올렸다.

◇“소비자들은 일일 허용 섭취량 따라야”

그렇다면 아스파탐이 든 제로콜라와 막걸리를 마음껏 마셔도 되는 걸까. 이덕환 교수는 소비자들은 일일 허용섭취량(ADI)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ADI는 사람이 일생 매일 섭취해도 안전한 수준의 양이다.미국 식품의약국(FDA)을 포함해 각국 식품의약당국은 안전성 평가를 통해 대체 감미료에 대한 하루 섭취량을 정해뒀다.

의사 출신 방송인인 홍혜걸 박사도 이날 페이스북에 “아스파탐이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하루 섭취량은 사람 체중 1㎏당 40~50㎎ 수준”이라며 “다이어트 콜라로 환산하면 매일 30캔 정도를 먹어야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섭취 허용량을 초과했다고 해서 곧바로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장기간 허용량을 초과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식약처는 14일 WHO와 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JECFA) 평가 결과를 보고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아스파탐 허용 및 사용량 기준 등을 결정할 계획이다.

해외 전문가들도 비슷한 입장이다. 영국 레딩대의 식품영양학자인 군터 쿤레 교수는 과학언론 지원기관인 사이언스 미디어센터에 “아스파탐은 IARC의 자매기관인 WHO 국제식품규격위원회(JECFA)를 비롯한 여러 규제 기관에서 하루 최대 몸무게 1㎏당 40㎎까지 섭취해도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새로운 증거에 따라 가이드라인이 변경될 수도 있지만 섣불리 불필요한 우려를 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대체 감미료가 걱정된다고 다시 설탕을 쓰는 것은 더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2월 다른 대체 감미료가 심장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자, 해당 물질이 들어있는 식품을 멀리하고 다시 설탕을 쓰려는 소비자들도 있었다. 당시 영국당뇨협회의 대변인인 듀안 멜러 애스턴대 의대 교수는 “대부분 사람은 해당 실험에서 투여한 것과 같은 양을 섭취하지 않는다”며 “이번 결과가 사람들이 대체 감미료가 들어있는 식품이나 음료를 끊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 오히려 설탕 섭취가 늘어나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