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비리그에 진학한 A양은 입학 2년 만인 지난해 돌연 귀국했다. A양은 부모와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수업을 자주 빠지고 과제를 놓치며 2년 연속 낙제점을 받았다.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A양의 탈선을 우려한 학교는 보호자에 연락해 A양의 정신 감정을 추천했다.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ADHD)가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한국에 돌아온 A양은 정신과 치료 중이다.
ADHD는 주의력 등을 통제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덜 발달해 나타나는 선천성 질환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질환이지만, 병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모른다. 뇌의 기능은 크게 전두엽과 변연계(邊緣系)로 구분할 수 있다. 전두엽은 생각하고 판단하고 조절하는 이성의 영역이고, 변연계는 감정, 행동, 동기부여를 담당하는 감정의 영역이다. 즉, 이성을 담당하는 영역이 덜 발달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생기는 문제란 뜻이다.
국내에서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때문에 ADHD를 적기에 진단받아 치료를 시작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A양처럼 성인 ADHD 환자 가운데, 어릴 때부터 증상이 있었지만, 뒤늦게 병원을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반건호 교수는 “A양의 경우, 대학교 진학 전까지 헬리콥터 부모의 철저한 관리 속에서 살다 보니 병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ADHD 진단 현황’에 따르면 ADHD 진단을 받은 성인은 2017년 7748명에서 2022년 9월, 3만9913명으로 약 5.1배 늘었다. 4050 환자의 증가율이 가장 가팔랐다. 50대는 2017년 170명에서 지난해 954명으로 약 5.6배 늘었다. 40대 역시 같은 기간 656명에서 3816명으로 5.5 배가 늘었다.
한국의 성인 ADHD 문제를 분석한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를 쓴 반건호 교수를 만났다. 반 교수는 지난 2009년 국내 첫 ‘성인 ADHD 교과서’를 발간하고, 한국형 성인 ADHD 진단 도구와 진료 지침을 제작했다. 지금까지 30편 이상의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국내 대표적인 성인ADHD 전문가로 꼽힌다. 다음은 일문일답.
-ADHD 환자는 어떤 특성을 보이나.
“ADHD의 주요 증상으로 잔 실수를 많이 하고, 일을 미루는 행태 등이 있다. ‘내일 해야지, 좀 있다 해야지’ 하면서 학교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야단을 맞는다. 판단과 조절 능력이 떨어지니 집중하기 어려워서 실수가 잦다. 책상에 오래 앉아도 성과가 잘 나지 않는다. 물건을 곧잘 잃어버리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잊어버리거나, 약속 시간을 어기는 일이 일상사다. 스스로를 게으른 사람으로 자책하거나 주변에서 “덜렁댄다”는 질타를 받으면서 자존감이 떨어진다. 충동을 억누르기 어려워 중독에 쉽게 빠지기도 한다.”
-사례를 들어줄 수 있나.
“최근 진료하는 청소년 환자 가운데 당근마켓(중고 물품) 거래 과정에서 구매자로부터 경찰 고발을 당한 환자가 있었다. 구매자로부터 돈을 받아 놓고, 정작 물건을 배송하지 않아서 생긴 사고다. 그런데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귀찮아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 물건을 배송하려면 편의점에 가거나 밖으로 나가서 보내야 하는데, 다른 일을 한다고 미루다가 까맣게 잊어버리는 식이다. 구매자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경찰에 신고한 사례다.”
-그건 인지 기능의 문제 아닌가. 지적장애와는 무엇이 다른가.
“ADHD는 인지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다. 책임감과 사회성은 정서적인 부분이다. 지능이 아무리 높아도 책임감은 떨어질 수 있지 않나. 인지기능과 사회성은 별개인 것처럼 말이다.”
-환자의 사회성은 어떤가.
“ADHD 환자는 사회성도 떨어진다. ADHD환자의 특징은 에너지가 넘친다는 것이다. 대화를 나눌 때는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ADHD 환자들은 자기 생각에 매몰돼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러니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사회성이 떨어지게 된다.”
-귀찮아서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미루는데, 에너지가 넘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기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은데, 판단하고 정리하는 게 안되니까 미룬다. ADHD 증상으로 ‘브레인 포그(Brain Fog)’가 있다, 머릿속에 항상 안개가 껴 있는 기분이라고 한다.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 생각이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또 다른 과제가 안개 위로 떠오르는 식이다. ”
-거식증이나 폭식증과 같은 섭식장애와도 연관이 있는지 궁금하다.
“성인 환자들은 공존 질환을 가진 경우가 많다. 가장 많은 게 우울증이고, 강박증, 수면장애, 섭식장애도 있다. ADHD 환자 중에서 비만도 많다.”
-그건 왜 그런 건가.
“자기 통제를 하지 못해서 그렇다. 소아 환자는 가정과 학교에서 관리하므로 식욕이 통제되는데, 성인이 되면 관리자가 사라지니 살찔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에서는 ADHD 진단을 받은 환자의 평균 수명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0년 짧다는 연구도 나왔다. 사고 위험도 높고, 살이 찌면 고지혈증 같은 만성질환 성인병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여기에 더해서 여성 환자는 성(性)생활에서도 문제가 많이 생긴다.”
-성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는 건 어떤 뜻인가.
“작년에 발표된 스웨덴 연구 논문에서 원치 않은 임신을 한 10대 여성을 추적 조사했더니 ADHD 환자 비율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7~8배가량 높았다. 성관계를 할 때 피임을 건너뛰거나 충동을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병원에서 진료하는 환자 중에서도 10대 미혼모가 있다.”
-사람이 성장하면 전두엽도 자라지 않나. 어른이 되면 ADHD는 나아진다고 들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ADHD 환자의 경우 ‘청소년에서 성인이 될 무렵 증상이 좋아진다’고 규정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2010년 이후에 나온 임상 연구에서 소아 ADHD 환자의 절반은 성인이 되어도 관련 증상이 계속 나타났다. 그래서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에게 평생 관리한다는 각오를 하고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성인 환자의 특징은 어떤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자신이 ADHD인 줄 모른 채 병이 진행된 경우가 많다. 소아 환자가 에너지가 넘치고 산만하다면 성인은 우울증등 공존 질환이 겹쳐서 치료가 더 어렵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어린 학생들이 제 자리에 앉아서 집중하지 못한다고 진단하지 않는다. 그 나이 때는 원래 그렇다. 전두엽이 덜 성장했으니까.
ADHD는 정도가 심하다. 자기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선생님에게 물어본다. 이 넘치는 에너지가 고학년까지 계속되면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당한다. 학교와 가정에서도 잔실수 때문에 야단을 맞는다. 10여 년의 야단을 맞으면 사람이 위축된다. 그렇다 보니 활발하던 아이가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말이 없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적힌 생활기록부를 들고 온다. 결국 성적도 떨어지고 대인 관계가 좋지 않은 어른으로 큰다.”
-진단은 어떻게 하게 되나.
“자라면서 대인 관계나 사회생활 심각한 지장을 주는 경우에 성인 ADHD로 진단하게 된다. 알코올 중독의 진단 기준도 같다. 단순히 술을 많이 마신다고 알코올 중독이라고 하지 않는다. 중독은 술을 마셔서 직업, 학업적으로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는 경우를 뜻한다.”
-치료는 어떻게 하나. 학습이나 훈련으로 ADHD를 치료할 수는 없나.
“정신 질환의 치료는 환자가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환청을 겪는 조현병 환자는 환청을 무시하는 훈련을 한다. ADHD는 넘치는 에너지를 통제하는 훈련을 한다. 하지만 뇌에서 벌어지는 일을 훈련으로 통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약물 치료를 하게 된다.”
국내에서 사용되는 ADHD 치료제는 크게 ‘메틸페니데이트’ 계열과 ‘아토목세틴’ 계열의 약이 있다. 메틸페니데이트는 주의·집중력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에 작용해 각성 상태로 만든다. 아토목세틴은 노르에피네프린에만 작용한다.
도파민은 보상이나 쾌락에 작용하고, 노르에피네프린은 각성과 흥분을 일으킨다. 도파민이 분비되면 짜릿한 기분이 든다고 표현한다. 노르에피네프린에만 작용하는 아토목세틴은 도파민 수치를 높이는 메틸페니데이트에 비해 집중력 부족 같은 ADHD의 증상 개선 효과가 약하고, 복용 후 효과가 나타나는 시간도 느리지만, 더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요즘 강남 학원가에서는 ADHD 약이 공부 잘하는 약으로 통한다.
“ADHD약은 사람을 각성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 집중하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세상에 공부 잘하게 하는 약은 없다. 공부는 각성만으로 되는 게 아니지 않나. 공부는 ‘동기부여(모티베이션)’가 있어야 한다.”
-성적 향상에 목마른 학생들은 유혹을 느낄 것 같다.
“공부 잘하고 싶다고 잠깐 먹고 마는 그런 약이 아니다. 메타페타민이란 마약이 있다. 이 약은 원래 기관지 확장제로 쓰였다. 1910년대 소아 청소년 정신병동에서 산만하고 폭력성이 있는 아이들에게 이 약을 썼더니 차분해지는 효과가 확인됐다. 그 당시에는 뇌 기능에 대한 의료 개념이 없으니 ‘기관지 확장을 해 주니 정신에도 효과가 있나 보다’라고 추정만 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의 임상 결과가 학술지에 게재된 이후 미국의 아이비리그에서는 이 약이 ‘수학 잘하는 약(math pill)’으로 둔갑해 엄청난 유행을 했다. 하지만 지금, 메타페타민은 한국에서는 아예 처방도 안된다.”
-약을 성인에게 ‘일 잘하는 약’으로 쓰면 어떤가.
“중독성이 문제다. 마약이나 알코올이 다 그렇게 중독되지 않나. 그리고 ADHD의 치료 역사는 아직 짧다. 40년의 짧은 임상 기록으로 약물 치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ADHD 환자를 치료하는 최신 트렌드는 어떤가.
“‘리질리언스(resilience)’다. 리질리언스란 정신적으로 심하게 상처받고도 극복하는 능력, 즉 회복하는 능력을 뜻한다. 어린이는 칭찬을 들으면 회복력이 튀어 오른다. ”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의사들은 사실 환자의 문제가 되는 부분, 부정적인 부분을 찾는 훈련을 받는다. 그런데 이 개념이 등장하면서 긍정을 강화하는 치료가 시작됐다. 진료받으러 온 엄마들은 자녀의 문제점부터 얘기한다. 그 문제를 고치러 온 거니까. 그런데 나는 초진 부모들에게는 먼저 ‘이 아이의 장점은 뭐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엄마들은 당황한다. 그리고 대부분 ‘우리 애가 장점이 어디 있어요?’라고 면박을 준다. 하지만 엄마가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만 하다 보면 아이를 좋아할 수가 없고, 아이의 정신적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잘한 점을 찾아서 ‘〇〇야 이렇게 해 줘서 고마워’라고 얘기해 보라고 한다. 칭찬의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아이 입장에서 평생 자신에게 소리만 지르고 야단치던 엄마에게 칭찬받는 것이니 감동이 밀려 들어온다. 그렇게 회복이 된다. 물론 이 방법이 성인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다. 성인들은 이게 계획된 칭찬이란 걸 알아채기 때문이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
-미국에서는 ADHD 치료 디지털 의료기기가 FDA 허가를 받고, 성인 ADHD 환자를 위한 스케줄러가 인기를 끌고 있다.
“FDA의 허가를 받은 디지털 치료기기는 게임 앱의 형태로 안다. 의사 처방이 받으면 게임을 하는 식인데, 큰 감흥은 못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 스케줄러 역시 도움은 되겠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중증 ADHD 환자라면 스마트폰에 스케줄러를 내려받아 놓고, 잊어버리고 또 새로운 스케줄러를 내려받는 일이 반복될 수도 있다.”
-정신 질환 치료는 왜 이렇게 어려운가.
“1970년대 영화인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본 적이 있나. 이 영화는 교도소에 가기 싫어 정신병을 가장해 병원에 입원한 반항아가 정신병동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전두엽 절제술’을 받고 식물인간으로 생을 마감하는 내용이다.
전두엽 절제술은 신경섬유를 녹여서 전두엽이 제 기능을 못하게 하는 수술이다. 뇌에서 정신 질환을 일으키는 것은 충동 등을 일으키는 변연계의 문제였는데, 건강한 전두엽을 잘라서 아예 사람이 기능을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수술이지만, 영화가 나온 1970년대까지 이 수술은 전세계 조현병 표준 치료였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약들도 50년 후에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전두엽 절제술은 포르투갈 의사 안토니우 모니스가 개발했다. 1935년 미국에서 침팬지 전두엽 신경을 절제하니 폭력성이 사라졌다는 동물 실험 연구 결과가 나온 이후 사람에게 적용했다. 모니스 박사는 63세 조현병 여성 환자의 두개골 양쪽에 구멍을 뚫고, 전두엽과 시상을 연결하는 신경섬유를 녹여서 없애버렸다.
뇌가 제 기능을 못 하니 폭력적인 환자들이 온순해졌다. 이 수술은 노벨생리의학상까지 받았고, 이 후에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것이 아닌 사람의 안구를 통해 수술 가위를 집어넣어 신경 섬유를 끊어내는 수술법까지 개발됐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누나인 로즈마리 케네디도 이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수술을 하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