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형 인제학원 이사장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에서 서울백병원 폐원 안에 관한 이사회를 마친 뒤 병원을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서울백병원을 운영하는 인제학원 이사회가 지난 20일 서울시의 만류와 내부 구성원의 반대에도 끝내 '폐원'을 결정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최대 3000억원으로 추정되는 이 병원 부지의 상업적 가치가 폐원 결정의 주된 이유로 지목되지만, 의료계 한편으로는 '병원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각계의 반대에도 이사회가 만장일치로 폐원을 결정했겠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서울백병원 경영난은 하루이틀된 얘기가 아니다. 이 병원은 2000년대 초반부터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려 왔다. 21일 인제학원에 따르면 서울백병원의 의료수익은 2004년 73억 원 적자를 기록한 이후 지난해까지 20년 동안 단 한 번도 흑자 전환을 하지 못했다. 지난해 적자는 161억 원에 달했고, 누적 적자는 1745억 원까지 늘었다.

인제학원 이사회는 투자은행(IB) 등 외부 전문기관으로부터 2011년, 2013년, 2019년 3차례 컨설팅을 받고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 오히려 역효과였다. 경영 효율화를 목적으로 가동 병상 수를 줄이고, 수익성이 좋은 외래 건강검진 센터 중심으로 재편하는 방안을 모색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병상 숫자를 줄이면 병상 가동률이 올라가면서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병상을 줄이면 줄일수록 병상 가동률은 오히려 떨어졌다. 병상을 줄이고 인력을 감축하고, 인턴 수련도 받지 않았더니 불편함을 느낀 환자들은 오히려 주변 병원으로 빠져나갔다.

비용을 감축하는 방법으로 지난 2015년 적자 규모를 48억 원까지 줄였지만 거기까지였다. 서울백병원은 병상 가동률을 보면 병상수가 276개였던 2017년 79.1%였던 것이 병상 숫자를 155개로 줄인 2022년 48.7%까지 떨어졌다.

서울백병원 경영효율화 현황/ 인제학원 제공

서울 도심이라는 위치를 활용해 외래 환자를 유치하려고 건강검진 및 예방 의학을 강화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오히려 외래 환자 숫자는 점점 쪼그라들었다. 지난 2017년 1만 8658명이었던 월평균 외래환자 수는 올해 3~5월 1만 1818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경영진의 개선 노력도 뚜렷하지 않았다. 서울백병원은 지난 2016년 경영정상화 태스크포스팀(TFT)을 가동했으나, 7년 동안 단 21차례 회의를 하는 데 그쳤다. 이 기간에 4명의 병원장이 교체됐다.

의료계에서는 명동 한복판이라는 위치가 병원 영업에는 오히려 단점이 됐을 것으로 봤다. 추가 병동을 설립하거나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확장해야 하는데, 비싼 땅값에 발목을 잡혔을 것이란 뜻이다. 이 병원은 지난 2018년 건강증진센터·소화기내시경센터·심장센터를 확장·이전했지만, 흩어져 있던 사무실을 한 층으로 모으는 데 그쳤다.

의료계에서 병원 수익은 '식당'에서 나온다는 얘기도 있지만, 서울백병원에는 편의시설을 갖추기도 역부족이었다. 수익 사업을 하려면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병상을 빼고 편의 시설을 넣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전경.

외래환자를 유치하기엔 주차 공간도 부족했다. 임직원이 386명, 입원환자가 100여 명인데, 본관의 주차타워는 118대에 불과했다. 전날(21일) 폐원 의결을 위해 열린 이사회 참석차 병원을 찾은 임원들도 주차 공간이 부족해 대로변에 차를 주차해야 했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같은 대형병원과 경쟁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인제학원 이사회는 여러 차례의 컨설팅 결과 이 부지는 종합병원은 물론이고 요양병원이나 검진센터 등 의료기관 사업을 해서는 적자를 피할 수 없는 구조이며 매각 등 적극적인 경영정상화 방안이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인제학원의 '폐원 로드맵'이 원활히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서울시가 도심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서울백병원의 도시계획시설(종합의료시설) 결정 추진을 검토한다고 발표했기 떄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 병원 부지는 병원 등 의료시설로만 쓰일 수 있다.

서울백병원/인제학원 제공

하지만 반대로 서울시가 민간 소유인 서울백병원의 폐원을 막아설 명분도 부족하다. 지난 2004년 중앙대 필동 병원에 이어, 이대동대문병원(2008년) 중앙대 용산병원(2011년) 제일병원(2021년) 등 서울 도심 종합병원들이 경영악화를 이유로 줄줄이 폐원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차로 30분 거리에 빅5병원들이 있는데, 공공의료 기능을 이유로 폐원을 막아서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주변 1차 의료기관을 활성화하고 대형병원으로 빠르게 이송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증 응급환자 관리에 도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