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폐원 안 의결을 위한 이사회가 열리는 20일 오후 서울 중구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에서 이세중 이사가 직원들의 항의를 받으며 이사회장으로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저는 서울백병원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서울백병원 폐원안이 인제학원 이사회에 상정된 20일 오후 서울 중구의 병원 로비에서 만난 서모씨(여 60대)는 "중구 주민이 줄고, 그래서 병원을 찾는 환자가 줄어서 병원을 닫는다고 들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 중구에 거주하는 서씨는 20년 전 이 병원에서 신장 이식 수술을 받고, 통원 진료를 받고 있다. 서씨는 이 병원이 폐원하면 통원 치료를 받을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한다. 서씨는 "병원의 적자를 보전해 줄 방법이 없느냐"고 말했다.

이날 오후 병원 진료 접수대가 있는 로비는 환자들 대신 폐원 반대 피켓을 든 직원들과 보건의료연대 등 노조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병원 의료진들은 정문을 막은 시위대에 "환자 통로를 막지 말아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지난 1941년 서울 중구 명동 '백인제 외과병원'으로 처음 문을 연 서울백병원은 이달 초 병원 폐원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병원을 찾는 주민들이 줄었고, 병원 노후화로 인근 환자들마저도 서울대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등 시설이 현대화된 대학병원으로 쏠리면서 경영이 악화했다. 병원의 적자는 지난 2004년부터 20년간 1745억원에 이른다는 것이 재단 측 설명이다.

하지만 이 소식이 알려지자, 간호사 등으로 구성된 병원 의료진과 노조, 서울시와 중구보건소 등이 폐원 대신 대안 모색을 요구했다. 서울시는 이날 오전 현재 상업용인 서울백병원 부지를 의료시설로만 쓸 수 있도록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서울백병원 부지는 의료시설로만 쓰일 수 있다. 인제학원이 병원을 폐원하고 매각한다고 해도 이 부지에는 병원만 지을 수 있단 뜻이다.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폐원 안 의결을 위한 이사회가 열리는 20일 오후 서울 중구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에서 직원들이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김명지 기자

서울시는 병원 폐원이 서울 도심의 필수 의료 공백과 공공의료 기능 부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노만규 서울시 교육문화계획팀장은 "인제학원이 서울백병원 폐원을 결정하기 전에 중구청이나 서울시와 협의하는 과정이 전혀 없었다"며 "서울 시내 공공 의료를 책임지는 병원 폐원을 재단 이사회가 갑자기 결정해 버리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병원이 위치한 중구청에서 도시계획시설 결정안을 제출하면 열람공고 등 주민 의견을 청취한 뒤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즉각적인 절차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노 팀장은 "도시계획시설 지정은 신속하게 진행하면 몇 개월 안에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백병원이 명동 번화가 바로 앞이라 부지의 상업적 가치가 크다는 것도 재단이 폐원을 추진하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교육부는 지난해 6월 '사립대학 기본재산 관리 안내' 지침을 개정하고 사립대학 법인이 교육에 활용하지 않는 토지나 건물 등은 수익용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했다. 명동 일대 부동산 가치는 2000억~3000억원에 이른다.

앞서 중구청은 지난 14일 서울백병원에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진료 기능 유지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내 병원 운영을 계속할 것을 요청했다. 중구는 공문에서 "병원은 필수 의료 기능을 해왔고, 중구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공공의료 역할을 충실히 담당해 왔다. 병원이 중구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역할을 함께 하기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서울백병원 직원들은 고용 불안감을 호소했다. 서울백병원이 폐원하면, 해당 교직원을 형제 병원으로 전원 고용 승계한다고 밝힌 상태다. 이날 병원 로비에서 피켓시위 중인 간호사는 "일산백병원과 상계백병원도 서울백병원과 마찬가지로 경영 상황이 썩 좋지 않은 것으로 들었다"며 "고용 승계가 된다는 재단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병원 노조가 참여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지난 19일 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폐원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노조는 의료수익과 의료 외 수익이 얼마나 발생했는지,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손실보상금은 얼마나 받았는지, 학교법인 경영정상화를 위해 얼마를 투자했는지 학교법인 인제학원이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백병원 폐원을 반대하는 교수협의회는 "서울백병원의 폐원은 서울백병원의 위기가 아니라 법인의 위기"라고 주장했다. 협의회는 기자간담회에서 서울백병원의 수익이 병원에 재투자되지 않고, 상계·일산·부산·해운대 등 형제 병원 건립에 사용됐고, 서울백병원을 키우지 않은 법인의 잘못된 전략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재단 이사진들은 적잖이 당황한 분위기다. 앞서 재단은 지난해 12월 경영컨설팅 업체로부터 "해당 입지에서 더 이상 의료 관련 사업은 모두 추진 불가하며, 의료기관 폐업 후 타 용도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자문 결과를 받았다. 재단은 이사회에서 상정안이 통과되면 오는 8월 말 폐원할 로드맵도 완성한 상태였다. 서울백병원 관계자는 "서울백병원의 누적적자가 십수 년째 이어지고 있다"며 "이사회에서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