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김재원 교수가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김명지 기자

국내 부인암 질환의 권위자인 김재원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는 올해 3월 미국에서 열린 미국부인종양학회(SGO)에서 참석했다가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경험을 했다. 자궁내막암 치료제로 허가받은 면역항암제인 젬퍼리(성분명 도스탈리맙)의 임상 3상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는데, 발표 후 진행한 질의응답에서 50대 후반의 백인 여성이 일어나 감사 인사를 했다.

자신을 ‘자궁내막암 생존자’라고 소개한 이 여성은 “효과 좋은 면역항암제를 개발해 준 연구진에게 감사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연회장을 채운 청중들은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김 교수는 “암 환자에게 신약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있었다”며 “해외 학회를 많이 다녔지만, 그 장면은 정말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자궁내막암은 자궁 몸통 중에서 내벽을 구성하는 자궁내막에서 생기는 암으로, 자궁경부암과 함께 대표적인 부인암이다. 암은 중증 질환이지만, 자궁 내막암 치료 자체는 어렵지 않다. 자궁내막암의 5년 생존율은 89.3%에 이른다. 수술만 적기에 하면 환자 10명 9명은 완치를 기대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절대 쉽게 넘어갈 암이 아니기도 하다. 자궁을 적출하는 수술을 해도 3~4기 말기 환자 4명 중 1명은 병이 재발한다. 이렇게 재발한 환자의 5년 생존율은 10% 미만이고, 생존 기간은 1년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자궁내막암은 말기(3~4기) 진단을 받거나, 재발하면 완치보다는 연명 치료에 집중했다.

특히 재발한 환자들은 독성이 강한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로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면서 치료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자궁내막암을 수술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재발한 암 환자를 안타깝게 보는 이유다. 그러나 최근 면역항암제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런 말기 재발 환자들도 완치를 바라볼 수 있는 희망이 열렸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국내 부인암 환자 수는 최근 급증하는 추세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지난 2021년 부인암을 진단받은 환자는 2만 3262명으로, 2017년 1만 7421명에서 약 33.5% 늘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작년까지 진단검사 횟수가 크게 줄었던 것 감안하면 올해는 이 병으로 진단받는 환자 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립암센터는 자궁내막암 환자 수는 2030년 7000명에서 2040년에는 1만4000명으로 10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해 같은 대학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올해 대한부인종양학회 회장으로 취임했으며, 지난해부터 아시아부인종양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김 교수를 만나 자궁내막암 치료의 최신 트렌드를 알아봤다. 다음은 김 교수와 일문일답.

-자궁내막암이란 어떤 질환인가.

“부인암은 자궁체부암, 자궁경부암, 난소암 세 가지로 나뉜다. 자궁체부암의 대부분은 자궁 체부(몸통) 중 내벽을 구성하는 자궁내막에서 생기는 암, 즉 자궁내막암이며 나머지는 근육 또는 결합 조직에서 생기는 악성 종양인 자궁육종이다. 과거에는 자궁경부암 환자가 많았는데, 최근 자궁내막암 환자가 빠르게 늘면서 자궁경부암 환자 수를 추월했다. 유럽 등 서구에서는 자궁내막암 환자 비율이 훨씬 높다.”

-유럽 서구에서 자궁내막암 환자가 많은 이유가 있나.

“비만한 사람이 많아서라고 추정한다. 비만세포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분비를 촉진시키는데, 에스트로겐은 자궁 내막을 자극해 암이 생기기 쉬워진다. 이 때문에 자궁내막암 발병률은 출산과도 연관이 있다. 임신과 수유를 할 때는 에스트로겐이 분비되지 않기 때문이다. 출산율이 높았던 과거에는 자궁내막암 발생률도 낮지만, 아이를 잘 낳지 않는 요즘에는 환자 수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 밖에 주요 위험요인으로는 유전, 이른 초경 및 폐경, 당뇨병 등 기타 질환이 있다.”

-어떤 증상일 때 자궁내막암을 의심해야 하나

“월경을 하지 않은 지 1년이 넘은 상태에서 질출혈이 있다면 일단 의심한다. 초음파 검사를 하게 되는데, 자궁 경부에 병변이 없으면 자궁안쪽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한다. 폐경한 여성의 자궁내막 두께는 5~6㎜인데, 내막이 이보다 더 두껍다면 조직검사를 하게 된다.”

-자궁내막암을 예방할 방법은 없나

“뚜렷한 예방법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질출혈 등 증상이 있을 때 검사를 받아 빨리 진단받는 것이 중요하다. 부정 출혈이 발생해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가 말기인 4기에야 발견하는 환자들도 있다. 증상이 있으면 곧바로 병원에 방문할 것을 강조한다. 자궁내막암 환자 10명 중 9명은 폐경 질 출혈을 경험한다.”

-질 출혈 말고는 뚜렷한 증상은 없나.

“복부∙골반 부위에 압박감이 느껴지고, 악취가 나는 노란 빛의 분비물이 나오면 자궁내막암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자궁내막암 검진은 국가암검진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왜 그런가.

“유방암이나 자궁경부암은 선별 검사라는 게 있어서 종양이 암으로 발전하기 전에 조직을 찾아 치료할 수 있지만, 내막암과 난소암은 그렇지 않다. 자궁내막암은 자궁 내부 조직을 떼서 검사하기 때문에 전체 건강검진을 하기 어렵다.”

-치료는 어떻게 하나

“자궁적출을 하게 된다. 자궁내막암은 연령대별로는 50대가 36.0%로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는 60대 (22.7%), 40대(19.9%) 순이다. 주로 폐경 이후에 주로 발병한다. 폐경한 여성은 출산 가능성이 없으므로 자궁 적출을 하게 된다. 자궁 적출은 자궁전체를 들어내는 수술이기 때문에 자궁경부암보다 수술 난이도가 낮고, 자궁근종 적출과 비슷한 쉬운 수술로 통한다. 수술 경과도 좋다. 자궁내막암 환자의 4분의 3이 초기에 발견되는데, 1기는 수술을 통한 완치율이 90%가 넘는다. "

-최근 20~30대 환자가 늘고 있다고 들었다. 앞으로 출산과 임신을 계획하는 환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임기의 자궁내막암 환자가 많지는 않다. 10명 중 1명 정도 되는데, 20~30대 여성 환자는 자궁 적출 대신에 호르몬 치료를 하게 된다. 석 달에 한 번씩 호르몬 치료를 하면서 병의 진행을 늦추는 방식이다. 이렇게 임신과 출산을 마친 후 필요하면 자궁을 적출하게 된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재발한 환자들이다. 수술 환자 4명 중 1명은 암이 재발하는데, 암이 재발해 전이된 환자의 5년 생존율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

-종양이 있는 자궁 자체를 적출해 냈는데, 암이 어떻게 재발한다는 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암 세포가 남아있는 경우다. 1기 자궁내막암은 가능성이 낮은데, 2,3,4기로 암이 많이 진행될수록 재발 비율이 높다. 항암제가 잘 들어도 재발하는 환자가 있다. 그래서 수술 이후에 정기 검진을 자주 받으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질 쪽에 암세포가 전이돼 재발하며 질 출혈이 있지만, 다른 위치로 전이돼 암세포가 자라면 종양이 육안으로 확인되기 전까지는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CT 영상을 찍고, 검사를 받아야 한다.”

다른 암은 종양 절제 수술을 하기 전에 암의 진행 상황을 평가한다면, 자궁내막암은 수술을 먼저 하고, 이후에 암 진행 상태에 따라 선택적으로 항암화학요법 및 호르몬 요법 등을 시행하게 된다. 암이 많이 진행됐거나 다른 장기로 전이돼 수술이 힘든 경우가 해당한다.

-재발하면 어떻게 치료하게 되나. 이제 적출할 자궁도 없는데.

“항암제 약물 치료를 먼저 하게 된다. 1차 치료제로 쓰이는 항암제가 잘 듣지 않고, 암 세포의 바이오 마커(표적)가 있는 재발 환자는 표적항암제인 렌비바(성분명 렌바티닙)와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를 함께 쓰는 병용요법이 2차 치료로 허가돼 있다. 그리고 작년 12월에 2차 치료제로 단독으로 쓸 수 있는 면역항암제 젬퍼리(성분명 도스탈리맙)가 국내 허가를 받았다.”

-재발한 환자에게 왜 면역항암제를 쓰게 되나.

“케미컬 항암제의 독성 때문이다. 모든 약은 ‘독성’이라는 게 있다. 화학요법은 암 세포는 물론 정상세포도 공격한다. 이를 세포 독성이라고 하는데, 독성이 누적되면 환자들의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다. 면역항암제는 자신의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게 하는 기전이기 때문에 독성이 적다. 하지만 면역항암제를 써도 또 재발하는 케이스도 있다. "

면역항암제를 면역관문억제제라고 부른다.면역의 길목을 막는 것을 차단한다는 뜻이다. 암세포가 우리 몸의 면역세포를 피해서 퍼지는 것은 ‘PD-L1′이라는 단백질 때문이다. 암세포는 이 단백질로 둘러싸여 있는데, 면역세포가 다가오면 거기 달라붙어 암세포를 공격하지 못하게 막는다. 면역항암제는 이 단백질(PD-L1)에 먼저 달라붙어서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도록 한다.

-자궁내막암에서 면역항암제를 많이 쓰나.

-국내에서 자궁내막암 1차 치료로 허가된 면역항암제는 아직 없다. 하지만 관련 연구가 다양하게 발표되고 있어 1-2년 사이에 허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차 치료로 키트루다와 젬퍼리가 허가를 받았지만, 둘 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 등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경우에만 약을 쓸 수 있다. 다만 젬퍼리는 개발사인 GSK가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EAP)’을 통해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EAP)은 어떤 제도인가.

“중환자나 응급 환자들이 허가 전 임상단계의 신약을 무료로 우선 처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제약사가 원한다고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사용 승인을 받아야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