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SF 연구진은 뇌에 전극(붉은색 표시)을 이식하고 뇌신호를 포착했다. 자극기(아래 부분) 두 개로 열을 전달해 단기 통증과 만성 통증의 차이도 구분했다./Prasad Shirvalkar

만성 통증을 유발하는 뇌신호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소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이지만 앞으로 만성 통증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 의대의 프라사드 쉬르발카르(Prasad Shirvalkar) 교수 연구진은 23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신경과학'에 "환자 4명의 뇌에 전극을 이식해 만성 통증 신호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만성 통증은 뇌 인지 영역에서 나타나

3개월 이상 이어지는 만성 통증은 전 세계 인구의 30% 이상이 앓고 있지만, 뾰족한 치료법이 없는 상태이다. 통증은 워낙 개인차가 심해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통증을 억제하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하지만, 이는 늘 과다 복용 논란을 유발했다.

만성 통증의 원인은 관절염에서 암과 당뇨병, 뇌졸중, 자궁내막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특히 사고로 손이나 발을 잃은 사람들은 80% 이상이 심각한 통증을 호소한다. 절단된 부분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통증이 온다는 것이다. 가상의 손발에서 오는 고통이라고 해서 환상지통(幻想肢痛)이라고 한다.

쉬르발카르 교수 연구진은 뇌졸중이나 팔다리를 절단한 만성 통증 환자 4명의 뇌에 전극을 이식했다. 동시에 외부에서 전기신호를 주는 자극기도 쇄골 아래에 삽입했다. 통증 신호는 뇌에서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안와전두피질(OFC)과 감정을 처리하는 전대상피질(ACC)에서 나타난다고 알려졌다. 안와전두피질은 눈 뒤쪽에 있고, 전대상피질은 뇌 안쪽에 있다. 연구진은 두 영역이 단기적인 통증과 연관된 다른 뇌 영역보다 만성적인 불편함에 더 많이 관여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구진은 전극과 자극기를 이식하고 3~6개월 동안 환자 4명에게 하루에 여러 번 통증이 어느 정도인지 물었다. 동시에 전극을 이식한 두 가지 뇌 영역의 신호를 확인했다. 동시에 만성 통증과 급성 통증 신호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려고 자극기로 짧게 열을 전달해 급성 통증도 유발했다. 설문조사와 뇌 신호 기록은 인공지능에 학습시켜 환자가 느끼는 만성 통증의 양상을 파악하도록 했다.

분석 결과, 만성 통증은 안와전두피질과 더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대상피질은 급성 통증과 연결돼 있었다. 이는 기존 진통제가 발가락을 바늘로 찌르거나 뜨거운 물체가 피부에 닿을 때 나타나는 짧은 통증에는 잘 듣지만, 만성 통증에는 효과가 작은 이유를 부분적으로 설명 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뇌를 위에서 본 모습(위)와 옆에서 본 모습(아래). 전기신호를 주는 자극기도 쇄골 아래에 삽입했다. 노란색은 안와전두피질(OFC), 보라색은 전대상피질(ACC)이다. 연구진은 두 영역의 뇌신호를 비교했다./Prasad Shirvalkar

◇뇌 자극 치료의 효과 알아볼 수 있어

미국 하버드대 의대의 마르코 로지아(Marco Loggia) 교수는 뉴사이언티스트와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는 앞으로 과학자들이 만성 통증을 줄이기 위해 안와전두피질을 연구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것"이라며 "뇌에 전류나 자기장을 전달하는 치료법이 만성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되는지 해당 뇌 영역을 통해 시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파킨슨병처럼 운동능력을 잃는 퇴행성 뇌질환이나 우울증에 걸린 환자에게 뇌 깊숙한 곳에 전류나 자기장 자극을 전달하는 치료법이 쓰이고 있다. 이런 치료가 만성 통증 치료에도 효과가 있는지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번 연구는 만성 통증을 유발하는 뇌 신호를 처음으로 실제 환자에서 직접 감지한 성과이다. UCSF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가 만성 통증과 관련된 뇌 신호 형태를 밝혀내, 장차 뇌졸중 환자나 환상지통 환자를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만성 통증은 환자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나 객관화하기 어려웠다. 영국 던디대의 블레어 스미스(Blair Smith) 교수는 가디언지 인터뷰에서 "통증은 객관적 측정이 어려워 치료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이번 연구가 발전하면 통증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발생 원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쉬르발카르 교수는 "앞으로 만성 통증 환자가 전극과 자극기를 이식하면 일상 생활 속에서 사람마다 다른 뇌 통증 신호를 파악할 수 있다"며 "이런 정보를 이용하면 만성 통증 환자마다 다른 맞춤형 뇌 자극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가 환자 4명을 분석한 결과라는 점에서 일반화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UCSF 의대의 에드워드 창(Edward Chang) 교수는 뉴욕타임스지에 "이번 연구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쉬르발카르 교수 연구진은 약한 전류로 뇌를 자극해 통증을 치료하는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앞으로 실험 대상으로 20~30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참고자료

Nature Neuroscience, DOI: https://doi.org/10.1038/s41593-023-01338-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