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홍균 서울대병원 암진료부원장이 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암병원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서울대 암병원 제공

중입자 치료는 탄소 이온을 가속시켜 암세포를 정밀 타격해 종양을 제거하는 치료법이다. 기존 양성자 치료에 사용되는 수소보다 무거운 탄소를 빛의 속도 만큼 가속시켜 종양 부위에 쏴 암세포를 파괴한다. 탄소 빔이 매우 큰 에너지를 가진 상태로 암세포에만 도달해 정상세포의 손상도 적다. 항암제나 방사선으로 치료가 어려운 악성종양을 앓는 암 환자에게 유용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중입자 치료를 위한 가속기는 일본,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대만, 중국 등 6개국 15곳에 설치돼 있다.한국에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국내 최초로 중입자가속기를 도입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지난달 28일 60대 전립선암 2기 환자를 대상으로 첫 중입자 치료를 시작했다. 고정형에 이어 회전형 치료기도 곧 가동해 치료 대상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서울대병원도 2017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이어 정부의 중입자가속기 구축 사업을 주관할 의료기관으로 선정됐다. 정부와 부산 기장군, 서울대병원이 예산을 공동 투입하는 이 사업은 지난 2019년 5월 서울대병원 이사회 의결로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우홍균 서울대 암진료부원장은 서울대에서 실질적으로 이 사업을 이끌고 있는 총괄 책임자를 맡고 있다. 이달 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암병원에서 만난 우 부원장은 다소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중입자가속기 사업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사업이 시작된 지 4년이 지났지만 치료기가 들어설 건물 공사는 아직 첫 삽을 뜨지 못했다.

우 부원장은 “순항할 줄 알았던 중입자가속기 구축 사업은 정부 심의·검토에 제동이 걸렸다”고 말했다. 공사에 들어가기 전에 기본설계, 중간설계, 세부설계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각 단계별로 검토 받는 데에만 8~9개월이 소요됐다. 지난해 8월에 마친 세부설계는 조달청과 기재부를 거쳐 지난달에야 최종 승인이 났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부산 기장에 짓는 기장암센터는 2024년에 완공돼 2025년 문을 열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2년 이상 미뤄져 2027년 하반기 개원할 예정이다.

우 원장은 늦어진 만큼 제대로, 다르게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우선 중입자가속기 성능부터 차별화하기로 했다. 기장암센터가 도입하는 장비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과 같은 일본 도시바의 제품이지만 좀더 고도화한 기술을 적용해달라고 요청했다.

표적이 될 종양 크기가 625㎠에서 1200㎠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골육종처럼 크기가 큰 종양도 한 번에 치료가 가능하고 치료 시간도 그만큼 단축될 것으로 보인다. 단위 시간당 나오는 선량률도 2배로 올려 치료 시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세계 최초로 탄소 이온빔에 헬륨 이온빔도 함께 사용된다. 성질이 다른 두 개의 빔을 따로 가속시켜 순차적으로 치료하는 방식이다. 우 원장은 “생물학적, 물리학적 분포를 봤을 때 이들 이온빔을 조합해 치료하면 효과가 더 좋다”고 말했다.

우 부원장은 “완벽한 플랜이라고 생각했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다”며 “이미 2년 이상 늦어졌으니 그만큼 제대로, 다르게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재 기장암센터 중입자가속기 구축 사업은 어느 단계에 있나.

“상세설계를 끝내고 시공사를 선정해 공사에 들어가야 한다. 센터 건물은 2016년에 이미 완공돼 기본적인 설비는 있다. 문제는 정작 중입자가속기 설비는 아직 들어오지 못했다. 고정형 장치와 아파트 16층 높이의 회전형 장치가 들어와야 하는데, 회전형 장치가 들어올 건물은 새로 지어야 한다. 일본에서 들여오는 기기여서 전압도 바꿔야 하는데, 이 작업도 여의치 않다.”

기장암센터 조감도 / 서울대병원 제공

-기장암센터의 중입자 치료는 어떻게 이뤄지나.

“탄소 이온빔과 헬륨 이온빔을 조합해 치료하는 방식이다. 탄소를 먼저 가속시켜서 종양 부위에 쏘고, 그 다음 가속시킨 헬륨을 쏜다. 두 개를 잘 조화시키면 탄소만 쏘는 것보다 임상적으로 도움이 된다. 물리적인 분포에 생물학적 요소를 가미해서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성질이 다른 이온을 조합해 치료하는 게 더 효과가 낫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현재 독일 하벨베르크에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결과는 2027년 개원 전에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횟수는 일본 국립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NIRS)의 프로토콜을 보면 초기 폐암의 경우 작은 종양은 한 번에 끝내기도 한다. 초기 간암도 두 번에 끝낸다. 전립선암도 4번 정도로 나와 있다. 크기에 따라 최대 16번까지 한다.”

-기장암센터는 어떤 환자에 집중할 것인가.

“우린 쉬운 건 안 하고 싶다. 늦은 만큼 제대로 쓰고 싶은 마음이 크다. 어렵게 도입했으니 기존 치료로는 안 되는, 다른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해야 되지 않겠나.

악성종양을 딱 정해서 이것만 하겠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기가 크고 치료가 어려운 육종암, 비편평세포암을 먼저 해보고 싶다. 췌장암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연간 몇 명을 치료할 것인가.

“더 잘해야 된다는 생각은 있지만 무리해서 더 많은 환자를 치료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우리 병원에게 중입자 치료 사업은 수익사업이 아니다. 사업팀은 1년에 1000명을 치료하자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600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기를 최대한 돌리면 할 수는 있지만, 장비 성능을 유지하면서 안전하게 필요한 사람에게만 제대로 하려고 한다.”

-국내 환자들은 중입자 치료를 받기 위해 일본이나 독일로 원정을 가야 했다. 물론 그때보다 비용이 줄었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은 없나.

“안타깝지만 건강보험 논의는 전혀 안 되고 있다. 양성자 치료도 국내 도입돼 건보가 되기까지 10년 가까이 걸렸다. 현재 중입자 치료는 준비·계획 단계부터 환자 몸에서 제대로 이뤄질지 검증하는 시험, 본 치료, 이후 검증까지 반복적인 과정을 모두 포함해 5000만~6000만원 정도로 예상된다. 물론 비싼 가격이다. 병원 수가심의위원회를 거쳐야 하지만 최대한 낮추려고 한다.”

-중입자치료의 부작용은 없나.

“기존 방사선 치료, X선 치료보다 부작용이 적은 건 확실하다. 다만 ‘꿈의 치료기’로 불린다고 해서 부작용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X선에 의해 생기는 부작용은 중입자 치료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가장 큰 부작용은 2차 암 발생인데, 일본 NIRS가 연구한 결과 2차 암 발생률은 중입자 치료가 훨씬 낮은 것으로 나왔다.”

-2027년까지 4년 남았다. 앞으로 남은 허들은 무엇인가.

“지금 계획으로는 2026년까지 건물 공사가 끝나고, 빔이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하는 검수 작업이 완료돼야 한다. 2027년부터는 환자 모형으로 에너지와 전류를 측정하는 검사가 이뤄져야 한다. 실제 개원은 2027년 하반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가장 큰 걱정은 시공사 선정이다. 입찰공고를 오는 6월에 낼 생각인데, 사업 규모가 200억원이 채 안 된다. 메이저 건설사가 들어올 수 있도록 설득하는 작업이 남아 있다.”

-중입자 치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시작으로 기장암센터, 서울아산병원 등 국내에 중입자 가속기가 계속 도입될 전망이다. 우리도 서둘러 환자 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다만 중입자 치료가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꿈의 치료기’로 알려져 있는데, 환자들이 과도한 희망을 가질까봐 우려된다. 중입자 치료는 환자의 특성, 암종, 진행 정도에 따라 가능 여부가 결정된다. 꼭 필요하고 가능한 환자에게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