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빠지는 주사로 ‘위고비’가 곧 나온다는데, ‘오젬픽’도 한국에 상륙한대요. 둘의 차이는 뭔가요?”
얼마 전 네이버의 한 커뮤니티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체중 감량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인데 작년부터 이런 문의 글이 부쩍 늘었다. 이 글에는 커뮤니티 회원들이 앞다퉈 댓글을 남겼는데, “오젬픽은 위고비보다 효과가 강력한 ‘마운자로’의 다른 이름”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남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27일 위고비를 승인하면서 이 약에 대한 관심이 크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젬픽과 위고비는 같은 성분의 약이다. 모든 의약품은 두 가지 이상의 이름을 갖고 있다. 그 약을 구성하는 성분명이 있고, 그 성분으로 시장에 출시한 ‘약 브랜드명’이 있다. 같은 성분이라도 어떤 병을 치료하는지에 따라 이름도 가격도 다른 셈이다.
오젬픽은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개발한 세마글루타이드라는 성분의 당뇨병 치료제다. 당뇨 치료 효과 못지 않게 체중 감량 효과가 좋아서 지난 2021년 미국에서, 이번에 한국에서도 비만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다. 이게 위고비다.
삭센다(성분명 리라글루타이드)도 당뇨병 치료제인 빅토자로 먼저 허가를 받았다. 삭센다, 빅토자와 위고비, 오젬픽이 다른 점은 주사 횟수와 체중 감량 효과다. 삭센다는 하루 한 번 주사를 맞고 6개월에 체중의 5% 감량하는 효과가 있다면, 위고비는 주1회 6개월간 체중의 15%가 빠진다.
마운자로(성분명 티제파타이즈)는 릴리가 개발한 당뇨병 치료제로, 더 큰 체중 감량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지만, 현재 비만 치료제로 임상 시험 중이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비만 치료제는 아니다.
비만 치료제의 역사는 오래됐다. 나비약으로 불리는 펜터민이 미 식품의약국(FDA)에 승인을 받은 것이 1959년이다. 오랜 역사의 검증된 약들을 놔두고, 전세계 내분비내과 의사들이 위고비에 열괄하는 건 이 약의 안전성 때문이다.
비만치료제는 식욕 억제제와 지방 흡수 억제제로 나뉜다. 지금까지의 식욕억제제는 중추신경계에 직접 작용해 중독성 등의 부작용이 확인됐다. 펜터민은 60년 넘게 판매됐지만, 사용이 극도로 제한된다. 지방 흡수 억제제들은 대변에 기름 성분이 눌어나서 속옷에 대변을 지리는 변실금 위험이 문제가 됐다.
위고비와 삭센다는 전혀 다른 기전이다. 이 약은 식욕을 떨어뜨리는 호르몬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 1) 바이오 의약품이다. 기존 식욕억제제가 뇌의 중추 신경을 직접 자극한다면 이 약은 췌장의 인슐린 분비 기전을 활용한다.
우리 몸은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면, 위에서 음식물을 천천히 소화시킨다. 위 속에 음식물이 있으면 뇌에서는 ‘그만 먹으라. 배 부르다’는 신호를 보낸다. 식욕이 떨어지면, 음식을 덜 먹고, 체중은 줄어든다. 이런 기전은 인슐린을 직접 주사하는 것보다도 안전하다. 인슐린은 잘못 과다 투여하면 저혈당 쇼크를 일으킬 수 있는데, GLP-1은 혈당에 따라서 인슐린을 조절하기 때문에 그런 위험이 없다.
체중 감량 효과도 뛰어나다. 위고비는 임상에서 체중의 15%를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키 170㎝에 78㎏의 과체중인 사람이 위고비를 한 주에 한 번 6개월 맞으면 58㎏, 즉 20㎏까지 살이 빠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약을 만능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오젬픽의 한 달 주사 값은 892달러(약 118만원). 위고비는 한달 약 값이 1350달러(약 178만원)로 가격이 비싸다. 약을 끊으면 체중이 원상 회복될 가능성도 크다. 한국인과 일본인에 대한 위고비 임상시험을 주도한 임수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를 인터뷰했다.
지난 2008년 추계 대한당뇨병학회에서 ‘젊은 연구자상’, 지난 2013년 내분비학회 최고상으로 꼽히는 ‘남곡 학술상’을 수상한 그는 비만 연구 권위자로 손꼽힌다. 곧 한국에 상륙하는 오젬픽, 아니 위고비는 어떻게 쓰이게 될까. 그를 최근 경기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작년 3월 ‘랜싯 당뇨병-내분비학(Lancet Diabetes & Endocrinology)’에 위고비 임상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임상은 어떤 사람들이 참가했나.
“체질량지수(BMI)가 27㎏/㎡이상이면서 고지혈증 등 비만 관련 동반 질환이 있는 환자가 임상 대상이었다. 일본인과 한국인을 대상으로 했다. 미국 유럽에서는 BMI가 30㎏/㎡이상이 임상 대상이었는데, 한국⋅일본인과 미국⋅유럽인은 체격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기준을 낮췄다.”
비만은 BMI로 판단한다. BMI는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인데, 임 교수팀의 기준(27㎏/㎡)을 보면 키 170㎝인 경우 몸무게 78㎏, 키 161㎝이면 몸무게 70㎏ 이상인 사람만 위고비 임상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임상 결과에서 남녀 차이, 한국인과 일본인 인종적 차이는 없었나.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다. 한국인과 일본인을 극동아시아인으로 분류하는데, (인종에서) 큰 차이가 없다.”
-위고비를 동물로 실험했을 때는 에너지 소비에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사람은 어땠나.
“그걸 항진(亢進) 효과라고 하는데 사람에게는 확인이 안됐다. 대신 식욕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으니 운동을 못하더라도 체중은 줄어든다.”
-위고비 임상에서 우려할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나. 미국 FDA는 갑상선암 가족력이 있는 환자는 복용을 주의할 것을 요구했다.
“부작용으로 구토, 설사, 복통 등이 있었는데, 그 정도는 기존 비만 치료제의 부작용과 비교하면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적다. 갑상선 질환 중에서도 수질암 환자에게만 금기이고 일반적인 갑상선 항진증 등에서는 큰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
갑상선암은 유두암과 여포암, 수질암, 미분화 암 등으로 나뉜다. 유두암이 전체 갑상선암 환자의 80~90%를 차지한다. 30대 젊은 여성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유두암은 진행 속도가 느리고 약물로 거의 완치된다. 수질암은 속질에서 발생한 암을 뜻한다. 체내 칼슘을 조절하는 C세포에 악성 종양이 생긴 경우다. 수질암은 암세포가 여러 곳에 퍼져 있고, 전이가 잘 되기 때문에 치료가 까다롭다. 유전적 영향이 크다.
-혹시 위고비가 ‘마른 비만’이라고 불리는 복부비만 환자에게도 효과가 있었나.
“마른 비만은 이 약을 쓸 수 없다. 이 약은 비만 기준 체질량 지수가 27㎏/㎡ 이상인 사람만 쓸 수 있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에게 처방하는 의사들은 잘못된 것이다. 임상에도 당연히 참가 못한다.”
-그래도 미국에서는 일론 머스크가 위고비를 맞고 체중을 줄여 큰 화제가 됐다. 결혼식을 앞둔 신부가 비만 치료제(삭센다)로 급히 다이어트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일론 머스크가 비만이 아닌데 처방받았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비만이라는 게 겉으로 보는 것과 다를 수 있다. 일부 병의원에서 GLP-1 의약품을 다이어트약으로 처방할 지 모르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기준에 맞춰서 처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임 교수의 말처럼 체중 감량 전의 일론 머스크의 사진을 보면 비만 치료제 처방 대상자로 보였다.
-릴리가 개발한 당뇨약 마운자로가 미국에서 비만치료제로 곧 허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위고비와 경쟁할 것 같은데,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보시나.
“더 좋은 비만치료제가 시장에 나올 예정이고, 이는 비만 환자에게 큰 희망이 될 것으로 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데, 뚱뚱하지 않은 사람에게 비만치료제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 그런 행동은 정부에서 권고하지 않고, 내분비내과 의사들도 그 점을 스스로 주의하고 있다.”
작년 미국에서 위고비가 ‘다이어트약’으로 인기를 끌면서 품귀 현상을 빚어 정작 오젬픽이 필요한 당뇨 환자들이 복용하지 못해 문제가 됐다. 이런 사회적 부작용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GLP-1은 미생물을 배양해서 생산하는 생물학적 의약품이기 때문에 생산 라인 확대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노보노디스크가 위고비 처방 급증으로 올해 실적 가이던스를 올려 잡았지만, 증권 시장에서는 기대가 크지 않은 것도 이 이유에서다.
-다른 당뇨병 치료제들은 비만치료제로 허가를 왜 못 받는 건가. SGLT-2 억제제(포시가)는 포도당 배설을 유도해 복부에 지방이 축적되는 걸 막아준다고 들었다.
“그건 그 약들이 비만치료제로 허가를 받을 만큼 체중이 빠지지 않아서 그렇다. SGLT-2 억제제는 체중이 3㎏ 정도 빠진다. 위고비는 전체 체중의 15%가 빠진다. 6개월 이상 장기 복용이 가능하고, 5% 이상 체중이 빠지면 비만 치료제로 효과가 있다고 본다.(삭센다가 이 요건을 충족한다.) "
-당뇨약으로 보면 GLP-1억제제가 훨씬 좋은 건가. SGLT-2 억제제의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
“비만약으로 쓴다면 비교할 수 있겠지만 당뇨 치료제로는 둘 다 좋은 약이다. 어떤 약이든 상관없다. 그리고 SGLT-2 억제제는 당뇨약이고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보험되는 약과 안되는 약을 가격으로 비교해서 되겠나.”
-한국에서도 비만이 사회적 문제 아닌가.
“한국에 비만한 사람이 많단 뜻인가? 서울의 길거리에서 비만한 사람이 어디 있나.”
-서울 길거리 얘기가 아니라, 저소득층에서 비만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들었다. 이건 문제가 맞지 않나.
“그런 측면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비만은 질병이고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 비만은 단순 의지만으로 쉽게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고도비만 환자는 더 어렵다.”
-그건 왜 그런가.
“일단 체중이 많이 나가면 운동을 지속하기가 어렵다. 식욕 조절도 쉽지 않다. 적정 체중인 사람도 안먹기가 어렵지 않나. 고도 비만인 사람들도 똑같이 힘들다. 고도비만이면서 소득이 적은 사람에 대해서 비만치료제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았으면 좋겠다. ”
-비만치료제는 보험이 안되나. 위장축소수술은 급여가 된다고 들었다.
“수술은 되는데, 비만약은 보험이 안된다. 심지어 60년 넘게 처방한 펜터민도 보험 처방이 안된다. 정부가 비만 치료제를 미용 시각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팬터민이야 부작용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이제 비만 의약품도 고혈압처럼 약 복용으로 식욕 조절이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비싸서 꾸준히 복용하기 힘들고, 저소득층은 접근조차 어렵다.”
임 교수는 저소득층이면서 고도비만인 사람에 한해서만이라도 비만치료제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비싼 비만치료제들이 여럿 출시되면서 비만이 앞으로 가난의 증거가 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복부 비만이 당뇨에서 암까지 유발하기 때문에 비만을 치료하면, 치매를 줄이고, 암 발병도 줄일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이런 점을 강조하면 되지 않을까.
“비만 치료제가 암까지는 아니도 심장질환도 줄인다는 연구는 있다. 다만 이건 오젬픽(당뇨병 치료제)을 쓴 경우에 대한 연구다.”
-화제를 전환해서 비만 분야를 연구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 한국인의 대사증후군의 특징과 그 원인에 대한 연구를 해 왔다.
“내 전공에서 한국인의 건강 증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고, 비만 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한국 사람은 서양인과 비교해 체격이 작고 비만이 심하지 않은데, 고지혈증과 같은 대사질환 유병률은 동일하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서양인과 비교해 한국 사람은 체중이 조금만 늘어도 고혈압 심장질환 같은 대사질환이 늘어날 것이란 가설 하에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 20세 이상 성인의 12%가 당뇨병을 앓고 있는데, 이는 미국과 동일한 수치다.”
임 교수와 인터뷰 내내 ‘비만’이라는 질병과 비만에 대한 사회적 오해와 맞서 싸우는 의사과학자의 고민과 고충이 느껴졌다. 임 교수는 저소득층이면서 고도비만인 사람에게는 비만치료제가 보험 적용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묻자 “우리나라는 뚱뚱하면 직장 채용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직업을 구하지 못하면, 돈을 벌지 못하고,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라고 설명했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으로 위고비에 대해 꼭 강조하고 싶은 말을 물었더니, 위고비 열풍이 가라앉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비만하지 않은 사람들, 체질량지수가 27㎏/㎡미만인 분들은 처방 받으려고 시도하지 마세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병원에 찾아왔다고 처방해 주는 의사가 있어서도 절대로 안됩니다. 비만약 처방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