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규제자유특구 내 스마트팜에서 재배 중인 의료용 대마(CBD) 모습./염현아 기자

대마가 '마약'에서 의약품 원료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환각을 일으키는 성분과 함께 들어 있는 칸나비디올(CBD)은 뇌전증 치료제로 쓰이고 있으며, 암·알츠하이머병·파킨슨병 등 치료제 연구개발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6년째 이어진 실증 단계를 넘어 CBD 신약 개발과 원료 국산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의료용 대마는 대마 꽃에 들어 있는 환각 성분인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은 0.3% 미만 수준까지 낮추고, CBD 성분만을 추출한 의약품 원료를 말한다. CBD를 활용한 대표적인 치료제가 영국 제약사 GW파마슈티컬스가 개발한 뇌전증 신약 '에피디올렉스(Epidiolex)'다. 2018년 CBD가 주성분인 치료제로는 처음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았다.

시장도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기업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의료용 대마 시장은 2032년 1080억달러(약 158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현재 미국·캐나다·영국·독일·호주 등 주요 국가에서 의료용 대마를 허용하고 있으며, 일본도 2024년 관련 규제를 완화했다.

국내에서도 의료용 대마를 직접 재배하고 CBD 생산을 위한 실증이 이어지고 있다. 경북 안동 대마 규제자유특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의료용 대마의 재배부터 CBD 추출·원료 생산까지 실증할 수 있는 곳이다.

대마의 꽃에는 환각·중독을 일으키는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 성분과 치료 효과가 있는 CBD 성분이 들어 있다./염현아 기자

◇스마트팜에서 자란 '대마', 의약품 원료로 탄생

10일 오전 경북 안동시 임하면의 규제자유특구 내 대마 재배시설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철창 형태의 울타리와 출입 통제 장치였다. 흰색 재배용 가운을 갖춰 입고 출입 절차를 마친 뒤 안으로 들어갔다. 시설 곳곳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었다.

국내에서 대마는 마약류관리법에 따라 일반적인 재배와 유통이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이곳은 2020년 국내 유일한 의료용 대마 실증 특구로 지정돼 재배부터 원료 추출·생산 등 기술을 시험해 왔다. 지난해 경기도 연천군도 규제 샌드박스로 지정돼 CBD 재배가 가능해지면서 현재 국내에서는 안동과 연천 등 2곳에서만 재배가 허용된다.

경북 안동 규제자유특구 내 의료용 대마(CBD) 재배시설 입구./염현아 기자

안동 특구 내 CBD 재배 시설부지는 약 1만평(3만3002㎡)에 이른다. 하지만 지난해 3월 경북 지역을 덮친 대형 산불로 재배시설 상당수가 불에 타면서 지금은 대부분 빈 땅으로 남아 있다. 1년 6개월이 지난 현재 복구된 곳은 약 20평 규모의 스마트팜 재배시설과 3평 규모의 육묘 공간 정도다. 넓은 부지 곳곳에는 잡초가 자라고 있었다.

한때 이곳에서 CBD 재배에 참여한 업체는 10곳을 넘었다. 그러나 제도 마련이 늦어지면서 6년째 기술 실증이 이어졌고, 현재 남은 기업은 2~3곳 정도다.

육묘 공간으로 쓰이는 작은 컨테이너 안에는 화분에 심어진 대마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미국에서 들여온 종자를 발아시킨 뒤 생육 단계에 따라 화분을 옮겨가며 키우는 방식이다. 일정 정도 자란 대마는 바로 옆 스마트팜으로 옮겨져 온도와 습도 등 생육 환경을 조절하며 키운다.

대마가 충분히 자라면 꽃 부분을 수확해 건조한 뒤 안동바이오산업단지에 있는 네오켄바이오 연구소로 옮겨진다. 이곳에서 꽃에 들어 있는 성분을 분리해 고순도 CBD를 추출한다.

네오켄바이오는 2021년부터 안동 특구에서 의료용 대마 기술 실증에 참여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고순도 CBD 추출 기술을 바탕으로 특구에서 직접 재배한 대마를 원료로 CBD를 추출·정제하고 원료로 생산하는 전 과정을 구축했다.

특히 세계 최초로 개발한 밀폐형 마이크로웨이브(MW) 기반 CBD 추출 기술은 전자레인지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고주파 전자파를 이용해 대마에서 CBD를 추출하는 방식이다. 기존 열 추출 방식보다 추출 시간이 짧고 열에 따른 성분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스마트팜에서 수확해 건조한 대마 꽃을 기기로 추출하는 모습. CBD와 THC 등 여러 성분이 함께 추출되며, 이후 정제·증류 과정을 거쳐 THC 등 불순물을 제거하고 고순도 CBD를 생산한다./염현아 기자

◇'5년 실증' 넘어 '상업 생산'으로…GMP·CDMO 시설 구축

그동안 의료용 대마 연구는 실험실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의약품 개발을 위해서는 제조·품질관리기준(GMP) 시설에서 생산된 원료와 의약품으로 임상 연구를 진행해야 하지만, 관련 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식약처의 협조와 국회의 마약류관리법 개정안 발의 등으로 의료용 대마의 안전관리와 산업화를 위한 제도 개선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약 5년간의 기술 실증을 마친 업계의 다음 목표는 상업 생산이다. 네오켄바이오는 GMP 시설 건축허가를 받아 오는 10월 착공에 들어간다. 약 1500평(5031㎡) 규모로, 내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GMP 시설이 완공되면 소규모 시설에서 진행해온 의료용 대마 원료 생산을 의약품 개발·생산 체계로 확대할 수 있다. 생산시설 옆에는 완제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시설도 구축할 예정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과 CBD를 활용한 의약품의 개발부터 생산까지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김정국 네오켄바이오 사장은 "의료용 대마의 효능과 안전성은 이미 입증됐으며, 이제 엄격한 체계 안에서 이 원료를 국산화해 더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제약사들이 더 좋은 신약을 개발하고 더 많은 질환에 적용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콜마, HLB생명과학(067630) 등이 네오켄바이오와 협력하고 있다.

HLB생명과학도 CBD를 미래 신사업 가운데 하나로 보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강희범 HLB생명과학 R&D 신약연구소장은 "네오켄바이오로부터 고순도 CBD 성분, 즉 원료의약품(API)을 공급받아 뇌전증, 불면증, 파킨슨병 등 중추신경계(CNS) 질환과 항암, 염증성 장질환 등의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CBD 후보물질을 발굴해 치료 분야를 정하는 단계다. 이후 전임상을 거쳐 약동·약력학(PK·PD) 분석, 독성·안전성 평가 등을 순차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안동 규제자유특구 관제센터에서 사람과 차량의 출입을 CCTV로 24시간 관리하고 있다./염현아 기자

◇대마 뿌리마다 붙은 QR코드…전 과정 수백대 CCTV로 '철통 관리'

의료용 대마가 실제 의약품 생산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원료의 품질뿐 아니라 재배부터 추출, 제조, 유통까지 전 과정에 대한 엄격한 안전관리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수 조건이다.

안동 특구에서는 대마의 재배와 이동은 물론 시설에 출입하는 사람과 차량까지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대마는 단순히 울타리 안에 가둬놓는 방식으로 관리되지 않는다. 특구 곳곳에는 재배시설과 스마트팜 내부에도 CCTV가 설치돼 사람과 차량의 움직임을 관제센터에서 24시간 확인한다. 시설 출입부터 대마의 이동과 외부 반출까지 모든 과정에 통제 절차를 적용한다.

재배 중인 대마에는 뿌리 단위로 QR코드가 부여된다. QR코드를 확인하면 해당 개체의 재배 위치와 시작일, 검사 이력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대마 한 포기마다 재배부터 이동까지 이력을 추적할 수 있다.

관제센터 관계자는 "대마와 사람, 차량 등 모든 곳에 CCTV를 설치해 영상 관제 서비스를 운영하고, 블록체인 기반 이력 관리 서비스를 통해 대마의 재배부터 이동까지 전 주기를 관리하고 있다"며 "6년간 이곳 특구 밖으로 대마가 나간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