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들의 영업 외주화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제약사와 의약품 판매 위탁사(CSO)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약값과 수수료, 영업 효율성에 더해 CSO 관리 책임과 규제 강화까지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약사와 CSO 모두 새로운 사업 전략을 짜야 할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8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와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지난 2일 출범한 '제1차 제약산업 혁신 민·관 협의체'에서 의약품 판매 위탁사(CSO) 관리·감독 강화 방안을 주요 안건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협의체는 CSO 관리 방안 개선과 N차 위탁 통제 강화, 제약사의 책임 강화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협의체에는 복지부 제2차관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을 공동위원장으로 관계 부처와 업계, 전문가, 공공기관 등 21명이 참여한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 5월 제약사들의 CSO 위탁계약 현황을 제출받는 등 실태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CSO에 대한 자격 조건을 강화하는 방안과 재위탁 차수를 제한하는 방안, 원청인 제약사의 CSO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며 "CSO의 제약사에 대한 보고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페널티가 추가될 가능성이 있어, 제약사가 CSO 전환을 주저하게 될 여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제약사로서는 CSO를 활용해 영업 조직을 줄이는 데 따른 비용 절감 효과와 함께 CSO를 관리하지 못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책임과 페널티까지 고려해야 하는 셈이다.
CSO는 제약사로부터 의약품 판촉 영업을 위탁받아 의료기관 등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업체다. 제약사는 자체 영업 조직을 운영할 때 발생하는 인건비와 차량·사무실 등 고정비를 줄이는 동시에 CSO가 보유한 영업망을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의원급 시장처럼 거래처가 많고 지역별로 흩어진 시장을 공략하는 데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외주화가 곧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CSO 수수료는 통상 처방액의 40% 안팎으로 거론된다. 지난 5월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답변서에 따르면, 평균 수수료율이 37%로 집계됐고, 일부는 50%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최근 평균 수수료율을 40~45% 수준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일부 품목에서는 수수료율이 이보다 훨씬 높은 사례도 나타난다. 과거 공개된 CSO 수수료 자료를 분석한 결과 품목별 최고 수수료율이 50~70%에 이른 사례도 있다.
약가 인하가 본격화하면서 제약사들의 부담이 커졌다. 약값이 내려가면 제품에서 확보할 수 있는 매출과 이익이 줄어드는데 CSO 수수료가 기존 수준으로 유지되면 품목별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실제 제약사들은 CSO 수수료율을 낮추고 있다. 대웅바이오는 올해 일부 품목의 CSO 수수료율을 기존 40%에서 35%로, 38%에서 35%로 낮추는 등 수수료를 조정했다.
약가 인하 품목뿐 아니라 원가 상승 등을 이유로 수수료율을 낮춘 품목도 있다. HLB제약(047920)도 지난 8월 약가 인하 시행에 맞춰 CSO에 영업을 맡긴 100여개 품목의 수수료율을 1%포인트 낮췄다. 회사 측은 높은 원가율과 판매관리비 등을 고려해 수익성을 개선하려는 조치로 설명했다.
반대로 약가 인하를 앞두고 처방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높은 수수료를 지급하는 사례도 있다. 약가 인하로 매출 감소가 예상되는 제약사와 높은 수수료를 요구하는 CSO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품목별 수수료율의 격차도 커지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처럼 약가와 수수료 부담이 겹치면서 제약사들의 전략도 엇갈리고 있다.
종근당(185750)은 올해 초 의원급 시장을 중심으로 일부 품목의 CSO 전환을 추진했다. 애초 4월부터 일부 품목의 CSO 영업을 시작하는 방안이 거론됐지만 이후 전환 시점을 잠정 연기했다. 약가 정책 등을 고려해 전환 시점과 조건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신풍제약(019170)은 보다 공격적으로 CSO 전환에 나섰다. 의원급 의료기관 담당 조직을 해체하고 해당 영업을 CSO에 맡겼으며, 올 5월 말까지 의원 영업 담당자 120여명이 회사를 떠나 CSO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종합병원급 영업은 자체 조직이 맡는 방식이다.
일동제약(249420)은 직영과 CSO를 병행하는 전략을 택했다. 매출 비중이 높은 기존 의원 거래처는 자체 영업 조직이 맡고, 거래 규모가 작거나 신규 확보가 필요한 의원급 거래처에 CSO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병원 시장은 CSO 대상에서 제외하고 기존 영업 조직도 유지한다.
보령(003850)도 일부 품목의 영업을 CSO에게 맡기면서 핵심 제품에 자체 영업력을 집중하는 전략을 취했다. 지난해 5월부터 병의원 대상 전문의약품 50여개 품목을 CSO 체제로 전환하고, 매출과 수익성이 낮은 제품군의 영업·마케팅 비용을 효율화하는 한편 카나브 등 자체 제품에 역량을 집중했다.
반면 JW중외제약(001060)은 지난해 5월 세레콕시브·도네페질·에페리손·발사르탄 등 비주력 제네릭 40여개 품목의 영업을 CSO에게 맡겼지만 1년여 만에 철수하기로 했다. 수익성과 영업 효율성 측면에서도 기대한 성과가 없었다는 내부 평가가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제약사로선 과거에는 자체 영업 조직을 유지할지 CSO로 전환할지를 놓고 고민했다면 이제는 어떤 품목과 거래처를 어느 정도까지 외주화할지를 더 촘촘하게 따져야 하는 시기가 됐다.
CSO도 셈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재위탁 차수를 제한하고 CSO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면 영업망을 여러 단계로 확장하는 방식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 제약사의 관리·감독 책임과 CSO의 보고 의무가 강화되면 영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준법 비용도 늘어날 수 있다. CSO의 불법 리베이트 등 영업 문제도 정부가 관리를 강화하려는 배경으로 꼽힌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CSO 시장 자체가 위축되기보다는 제약사별 외주화가 선별·세분되고, 경쟁력이 낮은 CSO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