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약개발 기업들이 글로벌 제약사와 대기업 출신 인사를 잇달아 영입하며 해외 사업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 연구개발(R&D) 중심의 조직 구성에서 벗어나 글로벌 임상과 인허가, 사업개발(BD), 상업화까지 경험한 인력을 확보해 해외 시장 진출의 실행력을 높이려는 움직임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바이오 기업들 사이에서는 해외 사업 경험을 갖춘 글로벌 인재 영입이 잇따르고 있다. 국내 바이오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기술특례 상장 기업들의 자금 조달 여건도 악화하면서 국내 시장만으로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지자, 해외 임상과 기술이전,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호성 메디포스트 신임 대표이사, 이영성 프로티나 신임 임상개발본부장, 손주희 지씨셀 신임 사업개발실장

◇글로벌 임상·허가 본격화…R&D 전문가 확보

해외 임상과 인허가를 추진하는 기업들은 글로벌 신약 개발 경험을 갖춘 인재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후보물질을 후기 임상부터 허가와 상업화 단계까지 이끌 전문성을 확보하고, 미국 식품의약국(FDA), 유럽의약품청(EMA) 등 주요 규제기관을 상대로 한 개발 전략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메디포스트(078160)는 지난 2일 민호성 전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부사장을 사장으로 영입했다. 향후 임시주주총회와 이사회 의결 등을 거쳐 민 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고 기존 오원일 대표와 각자대표 체제로 전환할 예정이다.

현재 메디포스트는 해외 상업화 확대가 주요 과제로 꼽힌다. 국내 최초 줄기세포 치료제인 '카티스템'은 허가 후 10년 넘게 판매되고 있지만 연간 매출이 200억원 안팎에서 정체돼 있다. 국내 시장에서 성장 한계가 뚜렷한 만큼 일본과 미국을 중심으로 해외 시장을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회사는 일본 임상 3상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하반기 일본 규제당국에 품목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허가를 받으면 내년 말부터 현지 파트너사인 테이코쿠제약을 통해 판매를 시작한다는 전략이다. 미국에서도 최근 임상 3상 첫 환자 등록과 투약을 완료했으며, 미국과 캐나다 70여 개 기관에서 환자 300명을 대상으로 허가용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각자대표 체제에서는 국내와 해외 사업의 역할도 나뉠 전망이다. 오 대표가 카티스템과 의약품 제조·품질관리 기준(GMP)센터, 제대혈, 건강기능식품 등 국내 사업을 맡고, 민 사장은 글로벌사업본부와 미국·일본 법인, 캐나다 위탁개발생산(CDMO) 관계사 옴니아바이오를 총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임상과 사업개발, 글로벌 상업화 전략이 민 사장의 핵심 역할이 될 전망이다.

이처럼 글로벌 임상과 상업화가 본격화하면서 개발과 허가를 직접 이끌어본 실무형 전문가 영입이 늘고 있다.

프로티나(468530)는 골관절염 치료제 후보물질 'PRT-101'의 글로벌 임상과 허가를 이끌 전문가로 셀트리온(068270)유한양행(000100) 출신 이성영 전무를 최근 영입했다.

이 전무는 국립암센터와 셀트리온, 유한양행 면역항암제 전문 자회사 이뮨온시아(424870) 등을 거치며 24년간 임상개발 업무를 담당했다. 셀트리온에서는 특정 항체의약품의 88개국 승인 작업을 수행했으며, 싱가포르와 상하이 등 해외 지사에서도 근무했다. 지난 7월까지 약 4년간 이뮨온시아에서 면역항암제 후보물질 '댄버스토투그' 등 주요 파이프라인의 개발을 이끌었다.

임상 프로토콜 설계부터 통계분석계획서(SAP), 임상결과보고서(CSR), 허가 신청에 필요한 국제공통기술문서(CTD) 작성까지 임상과 허가 과정 전반에 대한 경험을 갖췄다. 프로티나에서는 PRT-101의 글로벌 임상 및 허가 전략을 총괄할 전망이다.

PRT-101은 손상된 연골의 재생과 통증 개선을 목표로 개발 중인 골관절염 치료제다. 기존 치료제가 주로 통증 완화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연골 생성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직접 조절하는 방식이다. 프로티나는 현재 진행 중인 전임상을 마친 뒤 내년부터 기술이전과 글로벌 사업화에 집중할 계획이다.

◇기술수출·빅파마 협업 노린다…글로벌 BD 인력 영입

기술수출과 글로벌 제약사와의 파트너십 확대를 위해 사업개발(BD) 역량을 강화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기술이전 협상과 해외 파트너 발굴, 투자자 대응 등 실제 사업 확장에 필요한 경험을 갖춘 인재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다.

GC녹십자(006280) 자회사 지씨셀(144510)은 지난달 롯데바이오로직스 출신 손주희 사업개발실장을 영입했다. 손 실장은 동아쏘시오홀딩스(000640)그룹에서 R&D 전략과 사업개발을 맡은 데 이어 롯데바이오로직스에서 글로벌 사업개발 전략을 담당했다.

지씨셀에서는 해외 기술이전과 전략적 파트너십, 신규 사업 발굴 등을 담당한다. 상업화 제품인 '이뮨셀엘씨주'의 추가 기술이전과 자체 CAR-NK 플랫폼의 글로벌 파트너십 확대가 주요 과제로 꼽힌다.

지씨셀에서는 해외 기술이전과 전략적 파트너십, 신규 사업 발굴을 담당한다. 상업화 제품인 '이뮨셀엘씨주'의 추가 기술이전과 자체 CAR-NK 플랫폼의 글로벌 파트너십 확대도 주요 과제다. CAR-NK 세포치료제는 암세포를 인식하는 키메라항원수용체(CAR)를 자연살해(NK)세포에 결합한 차세대 면역항암제다.

지씨셀과 롯데바이오로직스 간 인력 이동도 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제임스박 전 지씨셀 대표가 2024년 말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로 자리를 옮긴 뒤 이듬해 지씨셀에서 함께 글로벌 사업개발을 담당했던 전지원 상무를 롯데바이오로직스 전략기획부문장으로 영입했다. 이후 롯데바이오로직스 출신 인사가 다시 지씨셀로 이동하면서 양사 간 글로벌 사업 인력 교류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왼쪽부터) 이승원 큐로셀 상무, 김건수 대표, 김원석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조수희 임상개발센터장이 14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염현아 기자

기술수출과 해외 파트너 발굴에 더해 기업설명(IR)과 사업전략 역량을 갖춘 인재 영입도 이어지고 있다.

국산 첫 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CAR-T·카티) 치료제 '림카토'의 시장 출시를 앞둔 큐로셀(372320)도 이달 초 리가켐바이오(141080)에서 BD와 IR을 맡아온 정대영 상무를 전략커뮤니케이션 총괄 임원으로 영입했다.

정 상무는 리가켐바이오에서 IR팀 부장과 IR·BD팀 수석매니저, 팀장을 거쳐 지난해 말 임원으로 승진했다. 올해 초에는 기술사업전략센터장을 맡아 IR과 사업개발, 기술사업 전략 전반을 담당했다.

큐로셀의 이번 영입은 연구개발 중심 기업에서 상업화 단계로 넘어가는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난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허가를 받은 림카토는 급여 적정성 평가 후 약가협상과 급여 고시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해외 사업개발도 확대하고 있다. 큐로셀은 최근 튀르키예 비루니그룹과 림카토 현지 공동개발에 착수했다. 현지 허가와 상업화를 공동으로 추진하고 CAR-T 제조 및 품질관리 관련 기술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국내 출시를 넘어 해외 시장 진입을 본격화하면서 기술사업과 파트너링 경험을 갖춘 인력의 역할도 커질 전망이다.

국내 바이오 기업들은 후보물질 발굴과 초기 임상에서는 성과를 내고 있지만, 후기 임상과 글로벌 허가, 기술이전 협상, 상업화 과정에서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같은 공백을 메울 글로벌 개발·사업개발 전문가 영입이 잇따르고 있다.

한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과거에는 기술력을 입증해 기술수출을 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제는 직접 글로벌 임상을 진행하고 상업화까지 염두에 두는 기업이 늘고 있다"며 "글로벌 규제기관과 빅파마를 상대로 협상해본 경험과 해외 네트워크를 가진 인력 확보가 향후 기업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