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034730)그룹이 제약·바이오를 미래 핵심 성장축으로 육성하고 있지만, 그룹 내 바이오 사업을 이끄는 4개 회사의 성장 속도는 엇갈리고 있다. SK 계열의 SK바이오팜(326030)과 SK팜테코가 신약과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에서 성장 기반을 다지는 반면, SK디스커버리(006120) 계열의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와 SK플라즈마는 실적 개선과 신규 성장동력 확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최근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본부장의 역할 변화도 주목받고 있다. 최 본부장이 바이오 사업뿐 아니라 SK의 성장 전략 업무까지 맡으며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히 특정 바이오 계열사의 경영 확대나 승계 문제로 해석하기보다, 향후 SK그룹이 분산된 바이오 사업을 어떤 방식으로 성장시킬지에 주목하고 있다. 계열사별 성과 차이가 커지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래픽=정서희

◇SK·SK디스커버리로 나뉜 바이오 4사…엇갈린 성장 성적표

SK그룹의 제약·바이오 사업 역사는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SK는 1987년 중앙연구소에 생명과학연구실을 설립하고 섬유·석유화학에 이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신약 개발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후 1993년 SK에너지 대덕연구소에 신약연구개발팀을 만들며 사업을 본격화했다. 그룹의 첫 제약·바이오 계열사인 SK케미칼은 동신제약과 삼신제약 등을 인수하며 관련 사업의 맏형 역할을 맡았다.

현재 그룹 내 바이오 사업은 SK바이오팜(신약), SK바이오사이언스(백신), SK케미칼(합성의약품), SK팜테코(CDMO), SK플라즈마(혈액제제)로 전문화돼 있다.

이들 계열사는 크게 SK와 SK디스커버리라는 두 지주회사 축으로 나뉜다.

SK바이오팜·SK팜테코는 그룹 지주사인 SK 계열이다. SK는 SK바이오팜 지분 64.04%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SK팜테코는 SK의 100% 자회사다. SK의 최대주주는 지분 17.9%를 보유한 최태원 회장이다.

반면 SK바이오사이언스와 SK플라즈마는 SK디스커버리 계열에 속한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2018년 SK케미칼의 백신사업부를 물적분할해 설립됐으며, SK디스커버리가 지분 40.9%를 보유하고 있다. SK디스커버리는 SK플라즈마 지분 77.24%도 보유 중이다. 최대주주는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으로 지분 40.72%를 갖고 있다.

문제는 최근 두 축의 사업 성과가 뚜렷하게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최태원 회장이 SK바이오팜·SK팜테코를 중심으로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는 반면, 최창원 부회장이 이끄는 SK디스커버리 계열 바이오 기업들은 성장 돌파구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SK바이오팜은 중추신경계(CNS) 신약을 중심으로 성장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의 미국 판매가 확대되는 가운데, 최근 미국 바이오기업으로부터 최대 1조1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통해 뇌전증 신약 후보물질 '오파칼림'을 도입하며 파이프라인도 넓혔다.

SK팜테코는 한때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매각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최근 매각 작업을 보류하고 사업을 이어가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SK그룹의 재무구조 개선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데다 매각 가격을 둘러싼 이견이 이어진 가운데,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 성장으로 펩타이드 사업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미국 일라이 릴리의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원료를 생산 중인 만큼 펩타이드 CDMO 사업 확대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매각보다 그룹 내 자회사로 육성하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반면 SK디스커버리 계열 바이오 기업들은 실적 개선과 신규 성장동력 확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과 백신 위탁생산으로 코로나 특수를 누렸지만, 이후 2023년 적자 전환해 2년 연속 1000억원대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실적 개선의 열쇠는 2024년 말 인수한 독일 CDMO 기업 IDT바이오로지카다. 다만 인수 통합 비용과 고정비 부담이 이어지면서 아직 실적 개선 효과는 제한적이다.

IDT의 생산시설 가동률을 끌어올리는 것도 과제다. 지난해 생산 실적은 70배치로 전년보다 34% 늘었지만 전체 생산능력 147배치 대비 가동률은 47.6%에 그쳤다. 대규모 생산능력을 확보했지만 이를 수익으로 연결하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평가다.

혈액제제 전문기업 SK플라즈마도 새로운 성장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2015년 SK케미칼에서 혈장분획제제 사업부를 떼어내 설립된 법인으로, 알부민·면역글로불린·혈액응고인자 등 '필수의약품'을 만든다. SK플라즈마는 지난해 기업공개(IPO)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중복상장 우려 등이 제기되면서 상장 추진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혈액제제는 사람의 혈액을 원료로 해 채산성이 낮아 바이오에서 크게 관심받는 분야도 아니고

2024 미국뇌전증학회

◇'오너 3세' 최윤정, 바이오 넘어 SK 지주 성장 전략으로…역할은 확대

이런 가운데 최태원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본부장의 역할 변화에도 관심이 쏠린다.

최 본부장은 미국 시카고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대에서 생명정보학 석사 과정을 밟은 바이오 전문가다. SK바이오팜에서 기업 전략과 사업 추진을 담당하며 인수합병(M&A), 기술도입, 오픈이노베이션 등을 직접 챙겨왔다.

2024년부터는 그룹의 '성장 지원' 업무를 맡아 미래 신사업 발굴에도 관여하고 있다. SK 성장지원담당 임원까지 겸직하며 역할을 그룹 차원으로 넓혔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에는 SK바이오팜 개별 사업보다 지주회사 차원의 성장 전략과 신규 사업 발굴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오 전문가로 SK바이오팜에서 경영 경험을 쌓기 시작했지만, 장기적으로는 SK의 미래 사업 전반을 이끄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최 본부장의 역할 확대를 곧바로 SK그룹 바이오 사업의 통합이나 재편과 연결 짓기는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재계 관계자는 "최윤정 본부장이 바이오 전문성을 갖고 있는 것은 맞지만 최근 역할은 바이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SK의 성장 전략 전반을 보는 역할로 넓어지고 있어 향후 바이오 사업을 맡게 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장기적으로 SK그룹 바이오 사업의 조정 가능성은 계속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각 계열사가 서로 다른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지만 일부 영역에서는 사업 중복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분야가 CDMO다. SK팜테코는 합성의약품과 펩타이드 원료의약품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고, SK바이오사이언스는 IDT바이오로지카 인수를 통해 백신과 바이오의약품 CDMO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세포유전자치료제(CGT) 분야 역시 양측의 사업 영역이 일부 겹친다.

실제로 SK바이오사이언스가 IDT바이오로지카 인수를 추진할 당시 시장에서는 이미 CDMO 사업을 운영하던 SK팜테코와 중복 투자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후 SK팜테코 매각설이 불거진 배경 중 하나로도 계열사 간 사업 조정 필요성이 거론됐다.

현재로서는 각 계열사를 하나로 묶거나 특정 회사가 다른 계열사의 사업을 넘겨받는 방안을 논의하기는 이르다. SK와 SK디스커버리가 각각 독립적인 사업 포트폴리오와 경영 전략을 갖고 있어 단순한 계열사 이동만으로 향후 사업 재편을 전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계열사 간 성과 격차가 계속 확대될 경우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SK바이오팜은 신약 사업을 확대하고 SK팜테코는 펩타이드 CDMO 성장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는 반면, SK바이오사이언스와 SK플라즈마가 실적 부진과 투자 부담을 이어간다면 각 사업을 그대로 유지하기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조정 필요성이 커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SK그룹이 바이오를 미래 성장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방향은 분명하지만 현재처럼 사업 주체가 나뉜 구조에서 각 회사가 모두 독자적인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며 "누가 누구의 사업을 맡느냐보다 그룹 차원에서 어떤 사업에 투자하고 어떤 영역에서 시너지를 낼 것인지가 결국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SK그룹 바이오 사업의 향방은 특정 인물의 역할 변화보다 각 계열사의 성과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성장성이 확인된 사업에는 투자를 확대하고, 성과가 부진하거나 사업이 중복되는 영역은 조정하는 방식의 선택과 집중이 향후 불가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