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릭(복제약) 의약품 약가 인하를 앞두고 중소·중견 제약사들이 로펌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혁신형·준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을 받으면 약가가 최종 45%까지 내려가는 시점을 수년 늦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증 서류가 복잡하고 평가 기준도 까다로워 제약사들은 수천만원에 이르는 법률 자문료도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그래픽=정서희

정부는 올해 3월 제네릭·특허만료 의약품의 약가 산정률을 53.55%에서 45%로 낮추는 약가 개편안을 확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내년 4월부터 약가는 51%→49%→47%→45% 순으로 내려갑니다. 제네릭 중심으로 전문의약품(ETC) 사업을 키워온 중소·중견 제약사에는 적지 않은 타격입니다.

혁신형·준혁신형 인증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입니다. 정부는 혁신형에 49% 수준의 약가를 4년간, 준혁신형에는 47%를 3년간 유지할 수 있는 특례를 적용합니다. 제네릭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수익성 차이가 누적될 수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18일 혁신형 제약기업 신규 인증 공고를 내고 신청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마감은 오는 18일입니다. 복지부는 100여개사가 신청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보산진)에 따르면 의약품 제조업 등 관련 업종으로 분류되는 국내 제약사는 모두 296곳입니다.

HLB제약은 지난 5월 제출한 증권신고서에서 제네릭 약가 인하를 핵심투자위험으로 언급했다./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

하지만 서류 준비부터 만만치 않습니다. 인증신청서를 비롯해 의약품 매출액·연구개발비·수출액 확인서, 사회적 책임·윤리성 관련 확인서, 임상연구 현황 등 최소 8종을 내야 합니다.

특히 정성평가가 난관입니다. 리베이트 적발에 따른 감점 기준이 강화되면서 영업대행사(CSO) 관리 체계가 검증 대상이 될 전망입니다. 기존에 혁신형 인증을 받은 한 제약사 관계자는 "정량평가는 기준에 맞추면 되지만 정성평가 항목은 결국 논리 싸움이라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정량평가도 쉽지 않습니다. 직전 3개년 평균 의약품 매출이 1000억원 미만이면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이 9% 이상, 1000억원 이상이면 7% 이상이어야 합니다. 최소 연구개발비 기준도 기존 50억원에서 70억원으로 높아졌습니다.

연구개발비를 늘려도 매출이 더 빠르게 증가하면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은 떨어집니다. 이는 매출 성장세가 높은 중견 제약사에 특히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보산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중견 제약사 106곳의 매출은 31조원으로 전년보다 6.3% 늘었습니다. 대형 제약사 15곳(4.9%)과 중소 제약사 175곳(5.3%)보다 증가폭이 컸습니다.

연구개발비를 계산하는 방식도 까다롭습니다. 신청기업의 별도재무제표를 기준으로 해 자회사가 집행한 연구개발비는 모회사 실적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의료기기·건강기능식품·동물의약품 연구비도 제외됩니다. 인체용 의약품 연구개발 비용만 인정되는 겁니다.

처음 인증에 도전하는 중소·중견 제약사에는 적지 않은 부담입니다. 관련 전문인력이 부족한 곳도 많습니다.

혁신형 제약기업 세부 평가항목 배점표./보건복지부

최근에는 혁신형보다 문턱이 낮은 준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준혁신형은 의약품 매출이 1000억원 이상이면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 5% 이상, 1000억원 미만이면 7% 이상을 요건으로 합니다. 지난해 1500억원대 별도 매출을 기록한 HLB제약(047920)도 준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에 도전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로펌들은 서류 검토만 하지 않습니다. 연구개발비·임상·수출 실적을 따져 인증 가능성을 진단하고, 심사자료와 입증체계 구축도 돕습니다. 인증에 따른 약가 우대가 수익에 미치는 영향까지 분석해 주기도 합니다. 대형 로펌의 자문 비용은 최소 수천만원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전보다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신청을 준비하는 기업이 확연히 늘었다"며 기업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으로 배점표 해석을 꼽았습니다.

이 변호사는 "기준에 조금 못 미칠 경우 어떤 방식으로 보완할 수 있는지, 연구개발비는 공시한 것만 인정되는지 등 다양하게 묻는다"며 "직접 인증을 준비하는 기업들도 어떤 자료를 제출해야 인증에 도움이 되는지 문의한다"고 말했습니다.

준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을 두고도 제도 시행에 대비해 미리 접촉하는 기업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관련 공고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업계에서는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려던 약가 개편이 되레 '약가 방어' 비용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책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중소·중견 제약사 입장에서는 당장 약가를 지키기 위한 인증 준비에 비용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며 "혁신을 유도한다는 정책이 또 다른 규제 대응 비용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