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해외 임상시험을 근거로 미국 시장 진출을 추진하는 제약사들에 경고를 보냈다. FDA가 직접 실사하지 못한 기관에서 확보한 데이터나 연구 윤리에 의문이 제기되는 환경에서 나온 데이터를 중심으로 허가 전략을 짜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FDA는 해외 임상시험 기관에 대한 직접 실사를 늘리고, 특히 임상 1상과 초기 단계 연구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 임상시험 데이터의 출처와 연구 환경도 허가 신청 직전이 아니라 개발 초기부터 제약사와 확인할 방침이다.

미 식품의약국(FDA) 주요 부서장 4명이 2일(현지 시각) FDA 공식 채널인 'FDA 보이스'에 게재한 '임상시험 관리 기준(GCP)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글로벌 임상 연구 시대에 인체 대상자 보호와 최고 수준의 과학을 위한 FDA의 헌신'이라는 제목의 공동 사설 중 일부 발췌./FDA

FDA 주요 부서장 4명은 2일(현지 시각) FDA 공식 채널인 'FDA 보이스'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동 사설을 게재했다. 제목은 '임상시험 관리 기준(GCP)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글로벌 임상 연구 시대에 인체 대상자 보호와 최고 수준의 과학을 위한 FDA의 헌신'이다.

FDA는 사설에서 임상시험용 의약품의 허가 여부를 판단하려면 제약사가 제출한 임상 데이터가 신뢰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험 대상자의 권리와 안전이 보호됐는지, 독립적인 윤리 심사를 거쳤는지, 충분한 설명을 거쳐 자발적으로 동의를 받았는지도 확인 대상이다. 필요할 경우 임상시험 기관과 원자료, 동의서 등 관련 기록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FDA는 "보스턴이든 베이징이든"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며, 해외 기관이라는 이유로 실사 가능성이 낮아지거나, FDA의 접근이 제한돼도 같은 수준의 데이터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차단하겠다고 했다.

미국 메릴랜드주 화이트오크에 위치한 미 식품의약국(FDA) 본부./로이터 연합뉴스

앞으로 FDA는 임상시험 현장에 접근하지 못해 데이터를 검증할 수 없다면 허가 신청에 제출된 자료의 일부 또는 전부를 근거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조작되거나 유효하지 않은 데이터, 중복된 데이터가 발견될 경우 이를 제외할 수 있고, 남은 자료만으로 허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허가를 거부하거나 보류·취소할 수 있다는 게 FDA의 설명이다.

이는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법과 원칙을 글로벌 임상시험 환경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FDA는 밝혔다.

실제 감독도 강화한다. 해외 생물연구 모니터링(BIMO) 실사 인력을 확대하고 해외 현장 실사를 늘릴 예정이다. 특히 임상 1상과 초기 단계 연구, 연구자가 직접 주도하는 시험, 미국 밖에서 처음 사람에게 투여하는 임상시험 등에 대한 감독을 강화한다.

임상시험용 신약(IND)이나 임상시험용 의료기기(IDE) 절차 밖에서 해외에서 진행된 연구에 대한 검증도 강화한다. 그간 이런 연구는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미국 허가 신청에 활용할 수 있었다.

FDA는 초기 타당성 조사나 임상 1상에서는 지정학적 상황이나 인권 문제 때문에 시험 대상자의 동의가 정말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이뤄졌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봤다. 과거 감사에서 가짜 시험 참가자를 만들어내거나 건강 상태와 검사 결과를 조작하고, 이상반응을 숨긴 사례가 적발된 적도 있다고 밝혔다.

제약사와의 소통 시점도 앞당긴다. 지금처럼 허가 신청을 앞두고 임상 데이터의 출처나 IND·IDE 적용 여부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임상 개발 초기부터 관련 문제를 논의한다. FDA는 사전 임상시험계획신청(pre-IND)이나 공식 질의 절차 등을 활용해 제약사와 적극적으로 소통할 계획이다.

FDA는 향후 실사 결과에 대한 정보 공개도 확대하기로 했다. 해외 기관이나 연구자, 관련 문서에 접근하지 못했거나 실사 조건이 제한된 경우 제약사와 일반에 이를 알리는 방안도 검토한다.

카일 디아만타스 미 식품의약국(FDA) 국장 대행./FDA

사설 말미에서 FDA는 제약사에 임상 개발 초기부터 GCP와 시험 대상자 보호 원칙을 충족하고, FDA의 접근이 막히지 않는 환경에서 임상시험을 설계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FDA가 실사할 수 없는 기관의 데이터나 연구 윤리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는 환경에서 나온 데이터를 중심으로 미국 허가 전략을 세우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다.

이런 FDA의 움직임은 중국에서 글로벌 임상시험이 빠르게 늘어난 상황과 맞물려 주목된다. 미국 국가경제연구소(NBER)에 따르면 2010년까지만 해도 전 세계 임상시험의 8% 미만이 중국에서 진행됐지만, 2020년에는 연간 등록 임상시험 수에서 중국이 미국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에는 공화당의 존 물레나르, 벤 클라인 하원의원이 카일 디아만타스 FDA 국장 대행에게 서한을 보내 "중국 임상 데이터를 수용하는 것은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