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기업이 자금 조달을 위해 유상증자에 나섰다가 주가가 급락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유상증자는 주식을 추가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기존 주주 지분이 희석될 수 있는 만큼 주가에 단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업들은 고(高)금리 시대 인수합병, 연구 시설 투자 등을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일부는 빚을 갚는 데 유상증자를 활용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유상증자 목적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3兆 유상증자에 주가 7% 하락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는 지난달 28일 유상증자로 3조원을 조달한다고 공시하며 주가가 전거래일보다 약 7% 빠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7월 스위스 기업 폴리펩타이드그룹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폴리펩타이드그룹은 비만, 당뇨 치료제 원료가 되는 펩타이드를 생산한다. 이 기업을 인수하기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게 삼성바이오로직스 입장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6월 말 기준 현금성 자산 2조200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유상증자로 3조원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고금리 시대 차입(借入)이나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할 경우 이자 부담이 커질 수 있어 유상증자를 선택한 것으로 전해진다. 회사는 보통주 227만주를 주당 132만2000원에 발행한다. 기존 주주에게 청약 권리를 부여한 뒤 실권주(기존 주주가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은 주식)가 발생할 경우 일반 공모에 나선다. 신주 배정 기준일은 다음 달 6일, 신주 상장일은 11월 30일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올해 2분기 말 기준 최대주주 및 특수 관계인 지분은 74.3%다. 삼성물산(43.06%), 삼성전자(31.22%), 삼성생명보험(0.03%) 등이 해당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소액주주 비율이 높지 않아 유상증자로 인한 부담이 크지 않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정유경 신영증권 연구원은 "최대주주가 유상증자에 전액 참여할지 여부가 투자 심리에 중요하게 작용할 전망"이라고 했다.
◇소액주주 반발에 기업들 진땀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뷰노(338220)도 314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밝히며 지난달 31일 주가가 전거래일보다 24% 넘게 빠졌다. 뷰노는 AI를 기반으로 심정지 발생 위험 등을 감지하는 의료기기를 갖고 있다. 뷰노는 기존 주식 수의 45%에 달하는 보통주 630만주를 주당 4980원에 발행할 예정이다. 유상증자 규모가 큰 데다 채무 상환을 위해 자금을 조달한다고 밝히면서 투자자들의 실망을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
뷰노는 유상증자로 확보한 자금 가운데 200원으로 영구 전환 사채를 상환할 계획이다. 114억원은 연구개발비 등으로 투입한다. 뷰노 관계자는 "오는 12월부터 영구 전환 사채 이자율이 조정되고 금리가 단계적으로 가산될 예정이라 그 전에 상환하기 위해 유상증자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뷰노는 오는 4일 간담회를 열고 주주들에게 이런 내용을 설명할 계획이다.
미용 주사 리투오를 보유한 엘앤씨바이오(290650)도 14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며 주가가 하락했다. 회사는 경기도 동탄에 생산 시설을 짓기 위해 유상증자에 나선다고 지난 7월 31일 공시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지난달 3일 주가가 전거래일보다 6% 넘게 하락했다.
엘앤씨바이오는 주주 보호를 위해 무상증자도 함께 진행한다. 기존 주주에게 돈을 받지 않고 보통주 1주당 신주 1주를 나눠주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콜옵션(특정 가격에 살 권리)을 행사해 15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취득하고 즉시 소각한다"면서 "전환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제거하고 주주 지분 희석에 대한 부담을 낮출 방침"이라고 했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은 유상증자로 (차입 등보다) 비교적 저렴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면서 "기업 가치 개선을 위해 투자하는 경우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애초 증자 목적과 다르게 자금을 투입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