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차세대 항암제'로 불리며 기술수출 경쟁이 한창이었던 항체약물접합체(ADC)가 새로운 갈림길에 섰다는 진단이 나왔다. 얼마나 많이 개발하느냐가 아니라, 기존 ADC가 가진 한계를 누가 먼저 해결하느냐가 다음 경쟁의 핵심이라는 진단이다.
28일 서울 강남구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제4회 삼성서울병원·에임드바이오 항체약물접합체(ADC) 콘퍼런스'에서 남도현 에임드바이오(0009K0) 의장, 김용주 리가켐바이오(141080) 회장, 박태교 인투셀(287840) 대표,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298380) 대표, 이승주 오름테라퓨틱(475830) 대표는 지난 1년간 한국 ADC 산업의 저변이 빠르게 넓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남 의장은 "올해는 국내 제약·바이오 회사가 ADC를 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다만 산업이 커진 만큼 경쟁도 한층 치열해졌다. 이제는 ADC 하나를 만들었다고 사업성이 생기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 나은 표적을 찾고, 독성을 줄이고, 약물을 원하는 곳에 정확히 전달하는 기술을 갖춰야 한다. 동시에 ADC를 넘어 차세대 치료 기술로 어떻게 확장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ADC 경쟁 2라운드…독성 낮출 '링커·페이로드' 주목
현재 ADC의 가장 큰 한계는 독성이다.
ADC는 암세포를 찾아가는 항체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물을 연결한 치료제다. 이론적으로는 항체가 암세포를 찾아가 약물을 전달하기 때문에 정상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혈액 독성이나 다른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투약 용량을 충분히 높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용주 회장은 리가켐바이오가 보유한 대규모 임상 약동학(PK)·약력학(PD) 데이터를 활용해 약물의 체내 노출과 독성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작업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떤 약물이 효과가 있는지'를 보는 데서 나아가 어떤 조건에서 독성이 나타나는지를 데이터로 찾아내겠다는 것이다.
박태교 인투셀 대표는 "작동원리상 ADC는 표적항암제지만 현재 만들어진 ADC가 실제로 행동하는 방식은 세포독성 항암제"라며 "아직 기술이 제대로 발전하지 않아 그런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포독성 항암제는 빠르게 분열하는 세포를 광범위하게 공격하는 반면 표적항암제는 암세포에 나타나는 특정 단백질이나 유전자 변이를 겨냥한다.
ADC는 크게 항체, 링커, 페이로드로 구성된다. 항체는 암세포를 찾아가는 '유도 장치'이고, 링커는 항체와 약물을 연결해 적절한 시점에 약물이 떨어져 나가도록 하는 연결고리다. 페이로드는 실제로 암세포를 죽이는 항암 성분이다. 그동안 ADC 기술 경쟁은 이 세 가지 요소를 얼마나 정교하게 조합하느냐에 집중돼 왔다.
하지만 더 이상 이들 요소를 조합하는 것만으로 차별화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회장은 "약물을 항체에 결합하는 기술은 이제 누구나 할 수 있다"며 "그 자체로는 차별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ADC가 가진 태생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나마 최적화할 여지가 큰 링커와 페이로드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ADC 시장이 커지면서 이중항체나 두 종류의 항암 성분을 함께 싣는 '듀얼 페이로드' 등 다양한 기술을 결합하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가 대표적이다. 이상훈 대표는 "우리는 항체를 개발하다 이중항체와 ADC를 접목하게 된 회사"라며 "현재 이중항체가 종양 조직 깊숙이 침투하는 능력을 활용해 페이로드 전달 효율을 높일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신중론도 나온다. 박 대표는 "ADC용 항체와 링커, 약물, 링커와 약물의 조합까지 각각 최적화해야 한다"며 "여기에 이중항체나 다른 요소를 계속 얹어 모든 조합을 동시에 최적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너무 복잡하다"고 말했다.
이중항체가 암세포를 더 잘 찾아간다고 해서 ADC에 붙였을 때도 최적의 치료제가 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성공 가능성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 방향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ADC만으론 부족…"5년 뒤 필요한 기술 찾는다"
고민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ADC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김용주 회장은 최근 리가켐바이오의 시야를 ADC 밖으로 넓히고 있다며 "ADC가 가진 장점만 살리고 나머지는 다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는 약물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 회장은 "요즘 다양한 약물 전달 기술을 가진 회사를 많이 만나고 있다"며 "제형을 바꾸거나 새로운 전달체를 활용하면 약물의 체내 노출을 조절하고 독성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오름테라퓨틱은 ADC에 표적단백질분해(TPD) 기술을 결합한 DAC를 개발 중이다. 이승주 대표는 "항암제만 하다가 최근에는 다른 영역에도 기술을 적용하기 시작했다"며 "2019년 DAC를 하겠다고 했을 때도 왜 그런 기술을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지금 사람들이 '왜 하느냐'고 묻는 것 중에 5년 뒤에는 필요해질 기술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훈 대표는 그러기 위해선 외부 시장의 변화를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에이비엘바이오의 혈액뇌장벽(BBB) 통과 기술과 소형간섭리보핵산(siRNA) 연구도 그렇게 시작된 것"이라며 "글로벌 제약사와 논의하는 과정에서 기존 항체 기술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는 신호를 포착했고, 이를 새로운 연구 방향으로 연결했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에 필요한 것은 결국 돈이다. 리가켐바이오는 최근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약 5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지만 김 회장은 오히려 "쓸 곳이 너무 많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여러 ADC 임상을 진행 중이고 앞으로 임상에 들어갈 과제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임상을 해보면 정말 돈이 많이 든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약 2500억원의 현금을 보유 중인 오름테라퓨틱 역시 대부분을 새로운 페이로드 개발과 임상 연구에 투입할 계획이다. 이승주 대표는 "작년 말 전환우선주(CPS) 투자를 유치한 것도 당장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었다"며 "좋은 파도가 왔을 때 파도를 타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금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ADC 산업에 투자자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 회장은 "ADC의 제조·품질관리(CMC)는 '지옥'"이라며 "임상 의사와 투자자가 이런 논의에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