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바이오팜(326030)이 최대 1조1000억원을 투자해 뇌전증 신약 후보 물질 '오파칼림'을 도입한 이유는 기존 제품인 세노바메이트가 특허 절벽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세노바메이트는 전체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효자 품목이지만 오는 2032년 특허가 만료된다. SK바이오팜은 세노바메이트 뒤를 이어 안정적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차세대 품목이 필요한 상황이다.
SK바이오팜이 거액을 들여 확보한 오파칼림은 현재 임상 2·3상이 진행 중이다. 초기 임상 단계가 아닌 데다 이르면 3년 뒤 시판을 계획할 수 있다는 점에서 SK바이오팜이 연매출의 70%에 달하는 금액을 계약금으로 지출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경쟁사도 뇌전증을 보다 빠른 일정으로 개발하고 있다는 점은 변수로 꼽힌다.
◇매출 90% 차지하는 세노바메이트 2032년 특허 만료
SK바이오팜은 미국 뉴욕 증권 거래소 상장사인 바이오헤븐으로부터 뇌전증 신약 후보 물질 오파칼림 등을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지난 26일 공시했다. 계약금 4억달러(5532억원), 개발과 허가 단계에 따른 마일스톤(기술료) 등을 포함한 최대 계약 규모는 7억9500만달러(1조996억원)다. SK바이오팜의 작년 연결 매출 7067억원, 영업이익 2039억원과 비교하면 계약금 규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SK바이오팜이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는 이유는 후속 성장 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SK바이오팜은 기존에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를 미국에서 엑스코프리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세노바메이트는 오는 2032년 핵심 물질 특허가 만료된다. 보통 특허가 만료되면 복제약이 쏟아지며 시장에서 영향력을 뺏길 수 있다. 제형 변경이나 적응증 확대 등으로 수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SK바이오팜 입장에선 세노바메이트 단일 품목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품목을 도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바이오헤븐의 오파칼림이 낙점된 것도 이런 계산과 맞물린 것으로 분석된다. 오파칼림은 현재 성인 부분 발작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2·3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르면 올해 연말까지 첫 번째 임상 주요 지표가 나오고 2028년 두 번째 임상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SK바이오팜은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미국 식품의약국(FDA) 품목 허가를 신청한 뒤 2029년 오파칼림을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파칼림의 물질 특허는 2039년까지다.
개발이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세노바메이트 특허가 만료되기 전 후속 제품으로 시장을 방어할 수 있는 것이다. SK바이오팜 입장에선 방사성 의약품 등 다양한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 SK바이오팜 관계자는 "이사회 결의를 통해 이 같은 오파칼림 투자 방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본부장도 전사적인 전략 방향을 담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쟁사보다 FDA 허가 신청 늦어질듯
뇌전증은 뇌 특정 부위에 있는 신경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흥분해 반복해서 발작하는 질환이다. 뇌전증 같은 중추신경계(CNS) 질환은 환자마다 유형과 원인이 다양해 신약 개발이 어려운 분야로 꼽힌다.
SK바이오팜은 작년 연말 미국 뇌전증학회에서 바이오헤븐 관계자를 만난 것을 계기로 오파칼림 도입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물 실험과 임상 자료를 검토한 뒤 각종 실사를 거쳐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파악됐다.
신약 개발은 그러나 100%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사업이다. 난관을 뚫고 FDA 허가와 시판에 성공해도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 현재 글로벌 제약사 제논 파마슈티컬스는 뇌전증 치료제 후보 물질 아제투칼너를 개발하고 있다. 올해 3분기 FDA에 허가를 신청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SK바이오팜보다 개발 일정이 빠른 것이다.
SK바이오팜은 대신 오파칼림이 기존 치료제보다 안전하다는 점을 앞세워 시장을 파고든다는 계획이다. 뇌전증 치료제는 장기간 복용해야 하는 만큼 부작용이 적은 의약품에 의료진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기존 세노바메이트를 중증 환자에게 처방했다면, 오파칼림을 초기 환자에게도 처방할 수 있도록 미국 법인 인력 150여 명을 활용해 직판할 예정이다.
바이오 업계는 올해 연말 발표될 오파칼림 임상 지표에 주목하고 있다. 제논 파마슈티컬스와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효과가 있으면서도 부작용이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승민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위약(가짜 약)과 비교했을 때 발작 빈도가 얼마나 줄었는지, 어지럽거나 졸리거나 피로감 같은 이상 반응으로 치료를 중단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