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 환자의 생존기간을 두 배로 늘린 혁신 신약이 등장했다. 미국 바이오기업 레볼루션메디신(Revolution Medicines)이 개발한 '라손큐(Rasonque·성분명 다락손라시브)'다.
레볼루션메디신은 26일(현지 시각)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기존 치료를 받은 전이성 췌장선암 환자의 치료제로 라손큐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FDA는 당초 심사 기한보다 6개월 이상 앞당겨 상용화 허가를 내렸다.
라손큐는 그동안 약물로 공략하기 어려웠던 RAS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경구 치료제(먹는 약)다.
임상시험 3상에서 전체생존기간(OS)을 두 배로 늘리는 결과를 냈다. 지난 5월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는 무진행생존기간(PFS) 역시 두 배로 늘어난 결과가 공개돼, 당시 발표 현장에서 청중들의 기립박수가 나오기도 했다.
췌장암은 초기 증상이 뚜렷하지 않아 발견이 늦고 다른 장기로 전이되는 경우가 많아 대표적인 난치암으로 꼽힌다.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국내 췌장암의 5년 상대생존율(암 이외의 사망 요인을 보정한 생존율)은 17.0%에 그치며, 원격전이된 경우에는 2.4%에 그친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에 따르면 췌장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10%대,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된 경우에는 3% 안팎이다.
이 약이 주목받는 이유는 췌장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RAS 단백질을 직접 겨냥한다는 점이다.
RAS는 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조절하는 단백질이다. 하지만 암세포에서 RAS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면 세포가 계속 증식하도록 신호를 보내 암의 성장과 진행을 촉진한다. 특히 췌장암에서는 RAS 계열에 속하는 KRAS 유전자 변이가 매우 흔해 중요한 치료 표적으로 꼽힌다.
문제는 단백질의 구조적 특성 때문에 기존 방식으로 RAS의 기능을 차단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회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과 다른 방식의 약물 설계를 적용했다.
라손큐가 RAS 단백질과 '사이클로필린 A(cyclophilin A)'라는 단백질의 결합을 유도해 RAS의 기능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RAS와 사이클로필린 A가 결합하면 RAS가 암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촉진하는 신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게 된다. 쉽게 말해 암세포의 성장 신호를 보내는 RAS를 다른 단백질에 붙잡아 기능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회사는 라손큐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동시에 후속 RAS 억제제 개발에도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회사에 따르면, 또 다른 RAS 억제제 후보물질인 졸돈라시브(zoldonrasib)는 지난 6월 췌장암을 대상으로 3상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이 외 여러 암종을 겨냥한 RAS 억제제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앨런 샌들러 레볼루션메디신 최고개발책임자(CDO)는 ASCO에서 "우리의 접근법에 대해 매우 확신하고 있다"며 "현재 시점에서 다른 많은 기업보다 앞서 있다는 점에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라손큐 30일치 약값은 3만9800달러(약 5500만원)다. 1년으로 환산하면 47만7600달러(약 6억6000만원)에 달한다. 이날 미국 언론사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장조사업체 전망을 인용해 라손큐가 다른 암에서도 효과를 입증할 경우 연간 매출이 200억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보도했다. 라손큐는 현재 미국에서만 품목허가 승인을 받은 상태다.
한편, 나스닥에 상장된 이 회사 주가는 올해 1월 2일 79.02달러에서 8월 26일 215.44달러로 올라, 올 들어 약 173% 급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