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의료·엔지니어링·인공지능(AI)을 통합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부총장은 26일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에서 열린 '2026 글로벌 바이오 콘퍼런스(GBC)'에서 기조강연자로 나서 이렇게 말했다.

이 부총장은 대사공학에 시스템 생물학, 합성 생물학, 진화공학 등을 접목한 '시스템 대사공학' 분야를 개척해 온 국내 대표 바이오공학자다. 1994년 KAIST 교수로 부임해 현재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와 연구부총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연구자 가운데 처음으로 유럽미생물학술원(EAM) 펠로우로 선임되기도 했다.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부총장이 26일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에서 열린 '2026 글로벌 바이오 콘퍼런스(GBC)'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박수현 기자

대사공학은 미생물의 유전자를 바꿔 원하는 물질을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만들도록 설계하는 기술이다. 쉽게 말해 미생물에게 새로운 생산 능력을 부여해 '세포 공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생명체가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데 있다. 어떤 유전자가 어떤 단백질을 만들고, 그 단백질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하나하나 확인하려면 과거에는 연구자가 직접 실험해야 했다.

이제는 AI가 단백질의 서열을 보고 기능을 예측한다. 이 부총장이 AI를 연구에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이다. 당시에는 게이밍용 컴퓨터에 들어가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직접 조립해 딥러닝 모델을 돌렸다고 한다.

그렇게 개발한 것이 딥러닝 기반 효소 기능 예측 시스템 'DeepEC'다. 효소는 생명체 안에서 각종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단백질이다. 미생물을 원하는 물질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만들려면 어떤 효소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부터 정확히 알아야 한다.

연구팀은 DeepEC를 이용해 3400만개의 단백질 기능을 분석했다. 기존 표준 방법으로 같은 작업을 하면 150년이 걸리지만, DeepEC는 10일 안에 끝냈다.

이후 최신 AI 기술인 트랜스포머를 적용하자 정확도는 더 높아졌다. 이 부총장은 "가르쳐주지 않은 단백질의 기질 결합 부위와 보조인자 결합 부위까지 AI가 스스로 학습해 예측했다"며 "이를 통해 AI가 바이오 연구의 새로운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부총장 연구팀이 미생물을 이용해 생산한 '거미 실크'./한국과학기술원(KAIST)

AI가 분석한 단백질 기능은 실제 물질 생산으로 이어졌다. 플라스틱이 대표적이다.

이 부총장은 한국에 원유가 나지 않는 만큼 석유에 의존하는 화학소재 생산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대장균의 유전자를 재설계해 세포 안에 플라스틱을 쌓아두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미생물은 리터당 약 180g의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이 부총장 연구팀은 미생물 연구에서 나아가 의약품 부작용을 예측하는 데도 AI를 적용했다.

이 부총장은 "허가된 약물 2159개를 두 가지씩 함께 먹는다고 가정하면 조합은 약 230만가지에 이르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부작용은 46만가지 수준"이라며 "나머지 조합은 부작용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확인하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AI를 이용해 약물의 구조를 분석하고 113가지 유형의 부작용 가능성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부작용 위험이 예상되는 약 대신 비슷한 효과를 내면서 다른 구조를 가진 대체 약물을 찾는 방식도 제시했다.

이 부총장은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의 경우 허가 약물 2248개와의 상호작용을 분석한 결과 1600개에서 약물 상호작용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을 찾은 어르신들 모습./뉴스1

AI가 바이오 연구에 필요한 이유는 연구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이 부총장은 그 기술이 결국 '고령화'라는 인류의 더 큰 문제를 푸는 데 쓰여야 한다고 봤다.

이 부총장은 "현재 전 세계 치매 환자가 약 1억4000만명이고, 2050년에는 4억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고령화가 심해질수록 새로운 치료제와 의약품, 식품과 의료소재를 더 빨리 개발해야 하지만 생명체의 복잡한 체계를 인간의 연구 역량만으로 모두 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미생물을 활용하면 지금까지 만들기 어렵다고 여겼던 물질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앞으로는 바이오·의료·엔지니어링·AI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