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128940)이 독자 개발한 비만 치료 신약 '에페(EPPE, 성분명 에페글레나타이드) 출시를 앞두고 시장의 관심이 '공급 가격'에 쏠리고 있다.
비만 치료 패러다임을 바꾼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비만약 시장은 현재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와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가 독점하고 있다. 첫 국산 GLP-1 비만 치료제의 등장이 가격 경쟁을 촉발할지, 글로벌 제약사들이 실제 가격 대응에 나설지 주목된다.
◇에페 가격에 릴리·노보도 촉각
24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의 비만 신약 '에페'는 늦어도 연내 출시될 전망이다.
에페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혁신 신약을 우선 심사해 심사 기간을 단축하는 '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GIFT)' 대상으로 지정됐다.
절차를 고려하면 오는 10월쯤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회사 측도 "허가가 이뤄지는 대로 이르면 10월, 늦어도 연내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계와 증권가의 관심은 에페 출시 시점에 이어 국내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비만약 마운자로, 위고비보다 얼마나 낮은 가격에 출시될지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의약품은 급여 의약품처럼 보험 약가를 기준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가 아니다. 현재 비만 신약은 비급여라 환자가 약값을 전액 부담해야 하고, 의료기관이나 처방 조건 등에 따라 부담액이 다르다. 비만 질환 특성상 장기간 투약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월(月) 수만원의 가격 차이가 환자에겐 크게 다가올 수 있다.
국내 헬스케어 플랫폼에서 집계한 서울 지역 약국 내 '마운자로' 용랼별 1팩 평균 가격은 △2.5mg 30만500원, △5mg 39만4210원, △7.5mg 54만7100원, △10mg 54만6010원, △12.5mg 69만9730원, △15mg 70만1780원으로 조사됐다. 병원 진료비 평균가는 2만1570원이다. 위고비는 용량에 따라 월 20만원대 초반부터 40만원 안팎으로 형성돼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에페 가격이 마운자로 초기 투여 용량 가격인 월 30만원대의 절반 수준에 책정될 수 있다고 보는 관측이 있다. 반면 연구개발 투자 비용과 생산 원가, 수익성 등을 고려하면 10만원대는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비만약을 보유한 글로벌 제약사의 한국 법인도 한미약품의 전략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에페 가격과 시장 반응에 따라 위고비, 마운자로의 가격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에페 가격이 국내 시장을 넘어 기존 아시아 시장, 글로벌 비만약 가격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일라이 릴리, 노보 노디스크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약품도 가격 경쟁력을 주요 승부처로 삼았다. 해외에서 완제품을 들여오는 위고비·마운자로와 비교해 국내 생산 기반을 갖춰 가격과 공급 안정 측면에서 강점을 앞세워 시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한미약품은 아직 에페 공급 가격을 결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그룹 임원들 사이에서도 가격 전략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에페 출시 이후 경쟁사의 후속 대응도 함께 고려해야 해, 가격 전략이 외부로 일찍이 알려지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도 있다.
에페 출시를 계기로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의 전략 변화도 관전 포인트다. 업계 관계자는 "에페가 출시되면 결국 위고비, 마운자로도 가격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가격만큼 중요한 '치료 효과'
의약품 시장에서 경쟁력은 가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환자와 의료진이 약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기준은 치료 효과와 부작용이다.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대규모 처방 경험과 임상 데이터를 축적했다는 점에서 강점이 있다. 다만, 환자마다 체중 감량 효과가 다르고, 비용 부담과 신체 반응, 부작용 등으로 치료를 중단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한미약품은 한국인 환자 대상 임상 데이터에서 확인된 안전성과 치료 경험을 토대로 자신감을 드러냈다. 회사에 따르면, 국내 성인 비만 환자 44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3상에서 에페글레나타이드 투여군은 40주 후 기저치 대비 평균 9.75%의 체중 감소를 보였다. 투여군의 79%는 체중이 5% 이상, 약 절반은 10% 이상 줄었다.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는 대표적인 68주 임상에서 평균 14.9%,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티르제파타이드)는 72주 임상에서 용량에 따라 평균 16.0~22.5%의 체중 감소를 보였다. 각 치료제의 임상시험에서 투여 기간과 환자 구성 등 시험 조건이 달라 체중 감량 효과를 단순 비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미약품은 다른 비만약 임상 자료와 비교해 구토, 메스꺼움 등 위장관 이상 반응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가벼웠다고 설명했다. 에페에는 약효를 오래 유지시키기 위해 약물을 서서히 방출되도록 한 '랩스커버리' 기술이 적용됐다.
회사는 디지털 치료 솔루션과 결합하는 전략도 추진 중이다. 비만 치료가 단기간 체중을 줄이는 것을 넘어 장기적인 체중 관리와 생활습관 개선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겨냥한 것이다.
결국 에페의 시장 안착은 글로벌 대형 제약사가 선점한 국내 시장에서 의료진과 환자의 선택을 얼마나 빠르게 끌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GLP-1 비만약
GLP-1은 식사 후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뇌의 식욕 조절 중추에 작용해 포만감을 높이고 식욕을 줄인다. 동시에 위 배출 속도를 늦춰 음식이 위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혈당 조절을 돕는다. GLP-1 비만 치료제는 이런 GLP-1의 작용을 모방하거나 강화해 식사량을 줄이고 체중 감량을 유도하는 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