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본사 전경. /한미그룹 제공

한미약품(128940)이 체중 감량과 근육 보존을 동시에 노리는 차세대 비만 신약 후보물질을 로슈그룹의 자회사 제넨텍(Genentech)에 기술 수출했다. 선급금 약 2600억원을 포함한 총 계약 규모는 최대 3조원을 웃돈다.

한미약품은 제넨텍과 장기 지속형 UCN2(유로코르틴2) 유사체 'HM17321'의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24일 밝혔다.

공시 기준 총 계약 규모는 23억500만달러(약 3조1892억원)다. 이 가운데 한미약품이 받는 선급금(Upfront)은 1억9000만달러(약 2629억원)다. 나머지 21억1500만달러(약 2조9263억원)는 임상 개발과 허가, 상업화 등 단계별 조건을 충족할 경우 마일스톤으로 받는다. 제품 출시 이후에는 별도의 경상기술료(로열티)도 수령한다.

계약금과 이미 수령한 마일스톤은 반환 의무가 없다. 마일스톤은 임상 개발·허가·상업화 등 각 조건을 충족해야 받을 수 있다. 임상시험이나 품목허가에 실패하거나 연구·개발이 중단될 경우 계약이 종료될 수 있다.

계약에 따라 제넨텍은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HM17321의 연구·개발, 제조 및 상업화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갖는다. 한미약품은 현재 진행 중인 임상 1상을 완료한 뒤 임상 2상부터 제넨텍이 개발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번 계약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선급금 규모다. 한미약품이 지금까지 체결한 기술수출 계약 가운데 단일 후보물질 기준 선급금으로는 가장 큰 규모다. 계약 체결과 동시에 확보하는 계약 선급금이 기술 수출의 질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로 꼽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살 빼는 약 넘어 근육 보존까지 도전

HM17321은 위고비·마운자로 등 기존 GLP-1 기반 인크레틴(incretin) 계열 비만 치료제와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는 신약 후보물질이다. 한미약품은 체중 감량과 함께 근육 등 제지방을 보존하는 계열 내 최초 신약(First-in-Class)을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이 후보물질은 체내에서 에너지 대사 등에 관여하는 유로코르틴2(UCN2)를 본떠 만든 장기 지속형 물질이다. UCN2는 세포 표면의 CRF2 수용체에 결합해 에너지 대사에 신호를 전달한다.

핵심은 UCN2를 기반으로 CRF2 수용체를 선택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방은 줄이고 근육 등 제지방은 보존하는 방식으로 체성분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약효가 오래 지속되도록 설계된 것도 특징이다.

기존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는 뇌의 식욕 조절 중추 등에 작용해 포만감을 높이고 식사량을 줄이는 원리다. 강력한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이지만 체중이 감소하면서 근육을 포함한 제지방량도 함께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돼 왔다.

한미약품에 따르면 HM17321은 비임상 연구에서 체중과 지방량을 줄이면서 제지방량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효과가 확인됐다. GLP-1 계열 치료제와 병용했을 때에도 체중 감량과 체성분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이에 따라 향후 GLP-1 계열 치료제와 병용하거나 두 성분을 하나의 약에 담는 고정용량복합제(FDC)로 개발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한미약품 임상 1상 후 제넨텍이 2상 진행

한미약품은 HM17321을 비만뿐 아니라 제2형 당뇨병과 심혈관질환 등 비만과 연관된 대사질환 치료제로도 개발할 계획이다. 회사는 단순한 체중 감량을 넘어 지방을 줄이면서 근육과 대사 기능을 개선하는 '건강한 체중 감량(High-quality Weight Loss)'이 비만 신약 개발의 주요 목표라고 했다.

HM17321은 현재 임상 1상이 진행 중이다. 한미약품은 2025년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시험계획(IND)을 승인받았다. 현재 건강한 성인과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안전성·내약성, 약동학(PK), 약력학(PD) 등을 평가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임상 1상을 완료한 뒤 임상 2상부터 제넨텍이 개발을 이어갈 예정이다. 글로벌 제약사에 후속 개발을 맡기면서 HM17321의 글로벌 임상 및 상업화 속도도 빨라질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이번 계약이 비만·대사질환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 경험과 펩타이드 설계 역량이 결합된 결과라고 했다.

최인영 한미약품 부사장(미래성장부문장)은 "비만 치료의 패러다임은 단순한 체중 감량을 넘어 체성분 개선과 대사 건강 회복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HM17321의 차별화된 과학적 기전과 개발 잠재력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게 된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리스 L. 자이트라 로슈 기업사업개발 총괄은 "지방량을 선택적으로 감소시키는 동시에 근육량과 근기능을 개선하는 차별화된 치료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비만 및 대사질환 분야의 중요한 미충족 의료 수요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당 후보물질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GLP-1

GLP-1은 식사 후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뇌의 식욕 조절 중추에 작용해 포만감을 높이고 식욕을 줄인다. 동시에 위 배출 속도를 늦춰 음식이 위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혈당 조절을 돕는다. GLP-1 비만 치료제는 이런 GLP-1의 작용을 모방하거나 강화해 식사량을 줄이고 체중 감량을 유도하는 원리다.

☞유로코르틴2(UCN2)

유로코르틴2는 체내에서 에너지 대사와 혈당 조절 등에 관여하는 신호물질로, 신경펩타이드의 일종이다. 우리 몸의 여러 조직에서 만들어져 CRF2 수용체에 신호를 전달하며 스트레스 반응과 에너지 대사 등에 관여한다. HM17321은 유로코르틴2를 본떠 약효가 오래 지속되도록 만든 물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