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메신저 리보핵산(mRNA)이 암 치료의 영역으로 진격하고 있다.
19일(현지 시각) 미국 모더나와 머크(MSD)는 개인맞춤형 mRNA 암 백신 '인티스메란 오토진(intismeran autogene)'이 고위험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3상에서 암 재발과 전이를 억제하는 주요 목표를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개인맞춤형 mRNA 암 백신이 임상 3상에서 주요 목표를 달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소식에 이날 뉴욕증시에서 모더나 주가는 전날보다 176.97% 폭등한 174.3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MSD 주가도 12.6% 오른 152.2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mRNA 상용화 열쇠로 떠오른 '전달체'
제약바이오업계에선 코로나19 백신 수요 감소로 실적 부진에 빠졌던 모더나가 mRNA의 새로운 성장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모더나와 MSD의 '인티스메란 오토진'은 일반적인 예방백신과 다르다.
RNA는 DNA에 담긴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단백질을 만들거나 유전자의 작동을 조절한다. 이 가운데 세포에 특정 단백질을 만들라는 '설계도'를 전달하는 것이 mRNA다.
mRNA 기반 암 백신은 환자의 종양을 분석해 암세포의 고유한 돌연변이에서 신생항원을 찾고, 최대 34개의 신생항원을 표적으로 하는 mRNA를 환자별로 제작한다. 수술 후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와 함께 투여해 남아 있는 암세포를 면역체계가 공격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런 개인맞춤형 치료제가 상용화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환자의 종양을 분석하고 표적을 정한 뒤 mRNA를 만들고, 이를 몸속에서 작동할 수 있는 형태로 전달해야 한다.
결국 어떤 RNA를 만드느냐 못지않게 이를 원하는 세포까지 얼마나 정확하고 빠르게 보내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mRNA와 siRNA 등 RNA 치료제는 체내에서 쉽게 분해될 수 있어 RNA를 보호하고 원하는 세포 안까지 운반하는 전달체가 필요하다.
◇RNA 치료 승부처는 '전달'…국내 기업 기술 경쟁
이에 RNA 치료제 자체를 개발하는 것뿐 아니라 mRNA·siRNA 등 핵산을 보호하고 원하는 세포까지 전달하는 기술 경쟁도 커지고 있다.
삼양바이오팜(0120G0)은 개인맞춤형 mRNA 암 백신에 적용할 수 있는 전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자체 유전자 전달 플랫폼 '센스(SENS)'를 기반으로 한 '나노레디(NanoReady)'다.
쉽게 비유하면, 나노레디는 mRNA를 원하는 면역세포까지 실어 나르는 '택배' 같은 전달체다. 암세포의 특징을 담은 mRNA를 비장의 수지상세포에 전달하면, 이 세포가 T세포에 암의 특징을 알려 공격하도록 유도한다.
회사에 따르면 마우스에서 비장 수지상세포에 대한 선택적 전달과 강한 T세포 면역반응을 확인한 데 이어 비인간 영장류에서도 항원 특이적 T세포 면역반응을 확인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Journal of Controlled Release'에 게재됐다.
나노레디의 차별점은 전달체를 미리 만들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RNA가 없는 상태에서 전달체를 먼저 제조·보관하고 환자별 mRNA가 준비되면 결합하는 방식이다. 개인맞춤형 암 백신의 제조 시간을 줄이는 데 유리할 수 있다. 회사는 나노레디의 입자당 mRNA 적재량이 기존 LNP보다 약 20배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삼양바이오팜 관계자는 "나노레디가 다양한 mRNA 후보물질에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전임상 근거를 확보했다"며 "자체 mRNA 암 백신 후속 개발뿐 아니라 글로벌 기술이전과 신약 공동개발 등 플랫폼 사업 확대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에스티팜(237690)은 mRNA를 안정화하는 기술과 전달체를 함께 확보하며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자체 기술을 활용해 mRNA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을 확대하는 한편, AI를 활용한 mRNA 설계·최적화 기술 공동연구에도 나섰다.
◇RNA '간 밖'으로…뇌까지 겨냥
기존 RNA 치료제가 주로 간을 표적으로 개발돼 온 것과 달리, 업계에서는 뇌·근육·심장 등 간 밖 조직으로 RNA를 보내는 기술을 차세대 승부처로 보고 있다. 특히 혈뇌장벽(BBB) 때문에 약물 전달이 어려운 뇌는 대표적인 미개척 시장으로 꼽힌다.
올릭스(226950)는 최근 BBB를 통과하는 셔틀을 결합한 2세대 OASIS-CNS 플랫폼을 개발해, 피하 또는 정맥주사한 siRNA가 생쥐의 선조체와 해마 등 뇌 깊은 영역에서 표적 유전자를 억제하는 것을 확인했다. 일부 영역에서는 70~80% 이상의 억제 효과가 나타났다.
에이비엘바이오(298380)도 BBB 셔틀 플랫폼 '그랩바디-B'의 적용 범위를 siRNA로 넓히고 있다. 올해 공동연구에서 그랩바디-B와 siRNA를 결합했을 때 뇌뿐 아니라 근육·심장·폐 등 말초 조직으로의 전달 가능성도 확인했다. 약물을 어디까지 보낼 수 있느냐 자체가 하나의 플랫폼 경쟁력이 되고 있는 셈이다.
전달뿐 아니라 RNA 자체를 정밀하게 바꾸는 기술도 경쟁 축으로 떠올랐다. 알지노믹스(476830)는 RNA 치환효소를 이용해 질병을 일으키는 RNA를 잘라내고 원하는 RNA 서열로 바꾸는 '트랜스-스플라이싱'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일라이 릴리와 유전성 난청 치료제 공동개발을 위한 최대 13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으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모더나의 이번 임상 성공은 단순히 mRNA 암 백신 시장이 열린다는 의미를 넘어 RNA 신약의 경쟁 무대가 넓어지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RNA를 정밀하게 설계하는 것을 넘어 원하는 세포와 조직까지 정확하게 전달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역량이 국내 기업들의 경쟁 열쇠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