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로 맞던 만성질환 치료제 시장에 '먹는 약'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주사제 중심으로 형성된 치료 영역에 경구제를 잇따라 선보이면서 환자들의 치료 선택지가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18일 의료계와 제약업계에 따르면 스위스 제약기업 노바티스의 만성 자발성 두드러기(CSU) 치료제 '랩시도'(Rhapsido·성분명 레미브루티닙)가 이르면 다음 달 국내에 출시될 예정이다.

랩시도는 지난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경구용 BTK(브루톤 티로신 키나제) 억제제다. 2세대 항히스타민제 치료에도 증상이 조절되지 않는 성인 CSU 환자에게 사용한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9월, 유럽에서는 올해 4월 허가를 받아 국내보다 먼저 시장에 진입했다.

그래픽=Chat GPT DALL-E

◇주사 대신 알약…만성 자발성 두드러기 치료제 시장 변화

CSU는 뚜렷한 원인을 찾기 어려운 두드러기가 6주 이상 반복되는 질환이다.그동안 항히스타민제를 1차 치료제로 사용해 왔다. 증상이 충분히 조절되지 않는 환자에게는 항체 의약품인 졸레어(성분명 오말리주맙) 등 주사제가 주요 치료 선택지로 활용돼 왔다.

졸레어와 랩시도는 성분과 작용 방식이 다르다. 졸레어는 알레르기 반응에 관여하는 면역물질인 IgE를 표적하는 항체 치료제다. 반면 랩시도는 BTK라는 단백질의 작용을 억제해 염증 반응을 차단하는 경구 치료제다. 졸레어가 4주에 한 번 피하주사하는 방식인 데 비해 랩시도는 하루 두 차례 복용한다.

졸레어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경쟁에 들어간 것도 시장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셀트리온(068270)의 '옴리클로'는 국내에서 허가받은 첫 오말리주맙 바이오시밀러로, 유럽에서도 출시됐다.

기존 주사제 시장에 바이오시밀러가 진입해 경쟁이 치열해지는 한편, 제약사들은 새로운 작용 방식이나 투여 방법을 앞세운 치료제를 내놓으며 차별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미 시장에는 미국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소틱투'(성분명 듀크라바시티닙)처럼 하루 한 번 복용하는 경구 TYK2 억제제도 나와 있다. 소틱투는 건선 치료제로 시작해 건선성 관절염으로 적응증을 넓혔다.

편두통 치료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미국 제약사 애브비의 '아큅타'(성분명 아토게판트) 등 먹는 CGRP 치료제가 주사형 항체 치료제와 함께 경쟁하는 시장이 형성됐다. 아큅타 역시 편두통 예방 치료에서 급성 치료로 사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지난 7월, 미국 FDA가 승인한 사노피의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사클리사 에스세나(Sarclisa Escena). 항암제 최초로 온바디 인젝터(OBI)를 통한 투여와 의료진 직접 주사가 모두 가능한 혁신 치료제다. /사진=사노피 홈페이지

◇주사도 더 짧고 간편하게

글로벌 제약업계에선 먹는 약으로 바꾸거나, 주사를 맞더라도 투여 시간·횟수를 줄이는 식으로 환자의 치료 부담을 낮추려는 제형 경쟁이 확산하고 있다.

알테오젠(196170)의 제형 기술을 적용한 미국 머크(MSD)의 항암제 '키트루다' 피하주사 제형이 대표적이다. 의료진이 정맥에 약물을 주입하는 대신 피부 아래에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주사 기기 자체를 바꾼 사례도 있다.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는 다발골수종 치료제 '사클리사'(Sarclisa, 성분명 이사툭시맙)의 피하주사 제형 '사클리사 에스세나(Sarclisa Escena)'를 개발해 지난 7월 미국 FDA 허가를 받았다.

이 제형은 피부에 부착한 기기가 약물을 자동으로 피하에 주입하는 '온바디 인젝터'를 이용해 투여할 수 있다. 미국에서 온바디 인젝터로 투여하는 첫 항암 치료제다.

키트루다 SC가 정맥주사를 피하주사로 바꾼 것이라면, 살클리사 에스세나는 여기에 '자동 주입 기기'까지 결합한 방식이다. 환자가 병원에서 장시간 주사를 맞아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스위스 제약사 로슈의 안과 치료제 '서스비모'는 눈 안에 약물을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임플란트를 삽입해 투여 횟수를 줄인 장기지속형 제형이다. 습성 황반변성 환자는 기존 매달 주사를 맞는 대신 6개월마다 한 번 약물을 보충하면 된다.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도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가 각각 경구 치료제를 내놓으며 주사 중심의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시장에 먹는 약을 추가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진입으로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빅파마들이 새로운 작용 원리(기전)와 제형을 앞세우는 차별화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만성질환은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만큼 환자의 복약 편의성이 약물 선택과 치료 효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