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들이 해외 짝퉁과 전면전(全面戰)을 벌이고 있다. 해외에서 K미용이 인기를 끌며 이른바 베끼기 제품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용 의료기기부터 주삿바늘, 보톡스(보툴리눔 톡신), 필러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해외에서 짝퉁이 높아지는 것은 그만큼 국내 브랜드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환자가 제조 경로가 불분명한 제품을 사용할 경우 자칫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기업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법적으로 대응하는 곳도 있다.
◇中 법원서 상표권 침해 금지 소송
휴온스그룹 계열사 휴온스메디텍은 '멀티 니들'(멸균 주사침) 가품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는 여러 바늘로 약물을 균일하게 투여하는 제품이다. 회사는 중국 기업 A사 등이 멸균 주사침을 교묘하게 따라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적발해 올해 초 중국 법원에 특허 침해 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휴온스그룹 관계자는 "검증되지 않은 제품은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휴온스메디텍은 의료기기 '더마샤인'도 중국에서 가품이 유통됐다. 이는 미용 주사 등을 시술할 때 약물을 피부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의료기기다. 회사는 중국 기업 B사가 이를 모방해 더마샤인 맥스라는 이름으로 유통하는 것을 알게 됐다. 더마샤인은 3세대까지 나온 제품이지만 마치 4세대 신제품이 나온 것처럼 영업했다고 한다. 휴온스메디텍은 B사를 상대로 상표권 침해를 막아달라는 소송을 작년 7월 중국 법원에 제기했고 올해 6월 1심에서 승소했다. 덕분에 중국에 유통된 의료기기 가품과 포장 박스를 폐기할 수 있었다.
메디톡스(086900)도 태국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메디톡스는 보톡스 '메디톡신'과 필러 '뉴라미스' 가품이 유통돼 이를 막아달라는 상표권 침해 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태국 대법원은 작년 11월 가품을 유통한 브로커 3명에게 징역형을 선고하고 불법 유통 업체엔 벌금형을 내렸다. 앞서 메디톡스는 2010년대 중반 태국에 진출했다. 시장 점유율이 오르자 현지에서 가품이 등장했고 급기야 태국 특별수사국(DSI)이 단속에 뛰어드는 일까지 벌어졌다. 메디톡스는 현지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자사 인지도를 악용한 사건"이라면서 "국내는 정품만 유통된다"고 밝혔다.
◇온도 민감한데… 보톡스 美 무단 반출
불법 유통도 문제가 심각하다. 대웅제약(069620)은 최근 보톡스 '나보타' 2바이알이 미국으로 무단 반출된 것을 확인했다. 나보타는 2014년 출시해 올해 6월까지 누적 매출 1조원을 기록한 효자 상품이다. 대웅제약은 내수와 해외를 구분해서 제품을 유통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 의료기관에 공급한 나보타가 회사와 무관한 제3자를 통해 미국으로 반출된 것을 현지 파트너사 제보로 알게 됐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제조 번호를 추적해 불법 유통된 의료기관을 특정한 뒤 거래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보톡스는 보툴리눔균(菌)에서 독성 단백질을 추출한 것이다. 피부에 주입하면 근육이 마비돼 잔주름이 일시적으로 펴진다. 보톡스는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따라 섭씨 2도~8도에서 보관해야 한다. 이 온도를 벗어나면 단백질 구조가 변하면서 보톡스 효과가 떨어지거나 염증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대웅제약은 자체 냉각 장치와 최대 168시간 온도를 유지하는 컨테이너로 보톡스 생산부터 환자 투여까지 관리한다는 입장이다.
파마리서치(214450)도 미용 주사 '리쥬란' 유통을 국내외에서 감시하고 있다. 리쥬란은 연어 DNA에서 추출한 생체 적합 물질을 피부 진피에 주사하는 것이다. 회사는 전문 업체와 협력해 모니터링하며 유통에 문제가 생기면 경고장을 날리거나 해외 당국이 단속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파마리서치 관계자는 "출처가 불분명한 제품은 원료와 제조 공정을 확인할 수 없어 품질과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했다.
◇베끼기 제품에 韓 기업 이미지 저하 우려
제약업계에선 해외에서 K미용이 주목받으며 기업들이 시장 방어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한국 문화 열풍을 타고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품이 시장 점유율을 앗아가고 업계 물을 흐리는 것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해외 가품이 국내 브랜드의 이미지를 실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의약품과 의료기기는 환자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가품은 제조 원료와 과정이 분명하지 않아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사후 추적도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가품을 정품처럼 오인하는 상황에서 자칫 품질 문제가 발생할 경우 기업 신뢰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의료기관에서 홀로그램 스티커 등으로 정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