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우시앱텍 시설 앞.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국방부가 중국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우시앱텍(WuXi AppTec)을 '중국 군사기업'으로 지정한 데 대해 미국 법원이 일단 제동을 걸었다.

미 국방부가 우시앱텍과 중국 정부·군의 관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증거를 잘못 해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이번 결정의 주요 취지다.

12일 외신과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미국 워싱턴DC 연방법원은 최근 우시앱텍이 국방부의 '1260H 지정'에 대해 제기한 소송에서 예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본안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국방부가 해당 지정을 근거로 추가 조치를 하지 못하도록 명령한 것으로, 우시앱텍의 중국 군사기업 지정을 최종 취소한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당분간 1260H 지정을 '집행·이행하거나 그에 따른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게 됐다.

재판부 판단의 핵심은 우시앱텍의 주장을 단순히 받아들인 것을 넘어 미 국방부의 판단 과정 자체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또 미 국방부의 1260H 지정으로 우시앱텍이 입은 피해가 추후 소송에서 구제받더라도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봤다.

실제 우시앱텍은 지정 이후 업무 중단과 프로젝트 취소, 경쟁 CDMO로의 프로젝트 이전 등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이 같은 피해가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온 뒤에는 되돌리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시앱텍은 법원 결정 이후 "현재 사업 운영은 완전히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고객과 환자에게 필요한 의약품을 지원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9년 만에 방중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14일 오전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美 국방부 "中 정부·군과 연계" vs 우시앱텍 "명백한 실수"

미 국방부는 지난 6월 우시앱텍을 1260H 리스트에 포함했다. 이 명단은 미국 국방부가 중국 인민해방군(PLA) 등 중국의 군사·국방산업과 연계된 것으로 판단하는 기업을 지정하는 것이다.

국방부는 우시앱텍과 중국 정부기관 사이의 간접적인 소유 관계를 문제 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국무원 산하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SASAC)와의 관계, 중국의 국방산업 정책을 담당하는 국가국방과학기술공업국(SASTIND)과의 연계 등이 근거로 거론됐다. 인민해방군과의 관계도 국방부가 제기한 의혹 가운데 하나다.

우시앱텍은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회사는 중국 정부나 군 관련 기관의 소유·통제를 받거나 이들과 계열 관계에 있지 않으며, 중국 인민해방군에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국방산업 기반이나 '군민융합' 프로그램과도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우시앱텍은 당시 미국 국방부의 지정이 "명백한 실수"라고 반발하며 6월 말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법원 결정에서도 재판부가 국방부가 우시앱텍과 중국 정부·군의 관계를 판단하면서 관련 증거를 잘못 해석했을 가능성을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법원이 우시앱텍의 주장을 최종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향후 본안 소송을 통해 국방부의 1260H 지정이 적법했는지에 대한 최종 판단이 내려질 예정이다.

일러스트=ChatGPT

◇1260H 지정, 생물보안법과 맞물려

우시앱텍이 1260H 지정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이유는 미국의 중국 바이오 규제가 생물보안법(Biosecure Act)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바이오산업을 겨냥하고 있는 생물보안법은 국가안보상 우려가 있는 특정 바이오기업이 제공하는 장비와 서비스를 미국 연방정부가 조달하거나 계약하는 것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2024년부터 중국 바이오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왔다. 미 의회 안팎에선 우시앱텍과 자매회사인 우시바이오로직스(WuXi Biologics)가 그 대상 기업으로 꼽혀왔다.

우시바이오로직스는 우시앱텍에서 2017년 분사한 바이오의약품 CDMO 기업이다. 미국 제약사들을 주요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어 향후 미국의 규제가 우시 계열사 전반으로 확대될 경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거론돼 왔다.

이번 법원 결정으로 우시앱텍은 적어도 당장 1260H 지정에 따른 추가적인 불이익에서는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다만, 미국의 중국 바이오산업 견제 정책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다. 그간 미국이 우시앱텍과 우시바이오로직스 등 중국 CDMO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글로벌 제약사들이 생산과 연구개발 물량을 다른 공급자로 옮길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이런 시각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롯데바이오로직스 등 국내 CDMO 기업이 그 물량을 일부 흡수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왔는데, 이번 미 법원의 제동으로 우시앱텍의 미국 사업이 당장 위축될 가능성은 낮아졌다. 국내 기업이나 중국 기업, 또 CDMO사에 생산을 맡기는 글로벌 고객사 모두 불확실성이 생긴 격이다.

업계에선 미국이 중국 바이오산업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려는 기조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어서, 향후 본안 소송 결과와 생물보안법의 구체적인 적용 범위에 따라 국내 CDMO 업계의 기회가 다시 커질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