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두 차례 승인을 거절했던 미국 바이오기업 리플리뮨(Replimune)의 흑색종 신약 병용요법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실제 임상적 유의성을 입증하기 위한 확증 임상시험은 아직 남아 있다.
리플리뮨처럼 기존 항암제와 새로운 물질을 결합하는 병용요법이 흑색종 치료의 새로운 전략으로 떠오른 가운데,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자사 신약 후보물질을 앞세워 빅파마 항암제의 병용 파트너로 속속 개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FDA는 최근 리플리뮨이 개발한 '투드리큐브'를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면역항암제 '옵디보'와 병용하는 요법으로 가속승인했다. 대상은 기존 면역항암제 치료를 받았지만 병이 다시 진행된 수술이 어려운 성인 흑색종 환자다.
흑색종은 멜라닌 세포에서 발생하는 피부암으로, 다른 피부암에 비해 전이 속도가 빠르고 항암제에 내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기존 면역항암제에 반응하지 않거나 치료 후 질병이 진행한 환자는 선택할 수 있는 치료제가 제한적이다. 이에 따라 최근 흑색종 신약 개발에서는 기존 면역항암제와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를 결합하는 병용요법이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
리플리뮨의 투드리큐브도 종양에 직접 주사하는 종양용해 바이러스 치료제로, 암세포를 공격하는 동시에 면역반응을 유도해 옵디보의 효과를 높이는 방식이다. 회사는 기존 항PD-1 치료에 실패한 진행성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투드리큐브와 옵디보를 병용한 임상에서 유의미한 반응률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승인이 투드리큐브의 치료 효과가 최종적으로 입증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속승인은 대리평가지표 등을 근거로 우선 허가한 뒤, 이후 확증 임상시험을 통해 실제 임상적 유익성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리플리뮨은 현재 투드리큐브와 옵디보 병용요법을 기존 치료법과 비교하는 3상 확증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도 흑색종 치료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미국 모더나는 고위험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메신저 리보핵산(mRNA) 기반 암 백신과 머크(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병용하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독일 바이오엔테크 역시 mRNA 기반 암백신 개발을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는 특정 환자군을 겨냥하거나 글로벌 제약사의 기존 항암제와 병용하는 방식으로 치료 공백을 파고들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은 한미약품(128940)이다. 한미약품은 흑색종 가운데서도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NRAS 유전자 변이 흑색종에 주목하고 있다. 경구용 표적항암제 '벨바라페닙'을 개발하고 있으며, 스위스 로슈의 자회사 제넨텍의 표적항암제인 '코비메티닙'과 병용하는 전략이다. 코비메티닙은 암을 유발하는 신호전달 경로를 차단하는 MEK 억제제다.
암세포의 성장과 관련된 NRAS 유전자 변이 흑색종은 일반적인 흑색종보다 종양의 침습성과 전이 가능성이 높고 전체 생존기간도 짧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외에서 NRAS 변이 흑색종을 직접 겨냥해 허가된 표준 치료제는 없다.
벨바라페닙은 앞선 글로벌 임상 1상에서 NRAS나 암세포 성장 신호를 조절하는 브라프(BRAF) 유전자 변이를 가진 고형암 환자에서 항종양 활성을 확인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NRAS 변이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후속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2027년까지 임상 2상을 마치고 2028년 조건부 허가를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지아이이노베이션(358570)도 기존 면역항암제의 한계를 보완하는 병용요법으로 흑색종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역시 MSD의 키트루다와 자사의 면역항암제 후보물질 'GI-102' 병용요법을 전이성 흑색종 환자에서 평가하는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앞서 미국 FDA로부터 임상시험 승인을 받은 데 이어 지난 4월 국내에서도 임상 2상 시험계획을 승인받으면서 글로벌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아이이노베이션은 앞선 병용 임상 2상에서 기존 면역항암제에 불응하거나 내성을 보인 신장암·흑색종 환자 4명에서 암세포가 30% 이상 감소하는 결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회사는 이를 바탕으로 2028년 FDA 가속승인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처럼 차세대 항암제 영역에서 기존 빅파마 항암제에 K바이오 신약을 더해 치료 효과를 높이는 시도가 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이 환자의 생존기간 연장 등 실제 임상적 유의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업계에서는 흑색종 치료제 시장의 경쟁이 앞으로 더욱 세분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키트루다와 옵디보 등 면역항암제가 표준치료로 자리 잡은 만큼 후발 신약은 기존 치료제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나 특정 유전자 변이 등 명확한 표적을 공략해야 한다"며 "앞으로는 기존 항암제와 새로운 신약을 결합해 치료 한계를 보완하는 병용요법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