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공백으로 1년 넘게 멈춰 있던 차세대 암 치료용 방사성동위원소 악티늄-225(Ac-225)의 국내 생산 사업이 내년 재개된다.
전 세계 수요의 30분의 1밖에 생산되지 않는 희귀 동위원소를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되면 연구기관의 임상연구와 기업의 방사성의약품 신약 개발에 필요한 원료 수급난도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허가 받고도 멈춘 1년…내년 하반기 첫 생산 목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방사선의학 전문 기관인 한국원자력의학원은 지난해 5월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사이클로트론(입자가속기) 기반 Ac-225 생산 허가를 받았다. 2018년 생산 검토를 시작한 지 7년 만이었다. 당초 같은 해 말 첫 생산이 목표였다.
하지만 이후 사업은 1년 넘게 제자리걸음을 했다. Ac-225 생산시설 보강과 장비 도입에 필요한 약 20억원의 예산이 지난해 국회 심의 과정에서 후순위로 밀리며 확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당 예산은 Ac-225 생산을 위한 방사선 차폐시설과 안전설비를 구축하는 데 쓰일 예정이었다. Ac-225는 라듐-226(Ra-226)에 양성자빔을 쏴 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Ra-226의 밀봉 용기를 개봉하면 라돈 가스와 감마선이 발생하는 만큼 납 차폐시설과 유해가스 모니터링 장비를 새로 설치해야 한다.
사업은 올해 상반기 관련 예산이 반영되면서 다시 추진 동력을 확보했다. 의학원은 내년 상반기 공사와 시험 생산을 거쳐 하반기 정기 생산에 나설 계획이다.
납 조달과 가스 모니터링 장비 구매를 동시에 진행하면 공사 기간은 한 달 안팎으로 예상된다. 다만 조달 절차가 변수다. 납과 장비 모두 조달청을 통해야 해 직거래보다 시간이 걸린다.
이교철 원자력의학원 방사성동위원소(RI)응용부장은 "모든 공정을 병렬로 진행하면 1분기 안에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사 이후에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시설변경허가를 다시 받아야 한다. 이 부장은 "허가 소요 기간도 변수"라며 "허가만 나오면 2분기에 테스트 생산, 하반기에 정기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생산 규모는 이론상 한 차례에 환자 3~4명을 치료할 수 있는 1~2mCi 수준이 될 전망이다. 의학원은 정기 생산이 시작되면 월 두 차례 생산 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의학원은 생산량을 이보다 10~15배 늘릴 수 있는 고체 표적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현재는 라듐을 액상으로 녹여 빔을 쏘는 방식이라 변환 효율이 낮다.
이 부장은 "의학원이 이미 보유한 특허를 활용해 2028년 중 고체 표적 장치를 제작하면, 2029년께 증산이 가능할 것"이라며 "상업 공급도 염두에 두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식은 아직 결정된 게 없다"고 했다.
◇세계는 'Ac-225 확보전'…국내 임상·신약개발도 숨통
Ac-225는 알파선을 방출하는 방사성동위원소다. 암세포에만 방사선을 전달하는 표적 방사성동위원소 치료(TRT)의 핵심 원료로 사용되며 전립선암과 신경내분비종양 등 난치암 치료 분야에서 차세대 동위원소로 주목받고 있다.
문제는 공급이다. 전세계 연간 수요는 약 1850GBq에 달하지만 실제 생산량은 2024년 기준 67GBq에 불과하다. 수요의 30분의 1 수준이다.
생산된 물량은 미국과 유럽 등 임상이 활발한 국가에 우선 공급되면서 국내 연구기관과 기업들은 필요한 시기에 원료를 확보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돼 왔다.
의학원은 현재 SK바이오팜(326030), 퓨쳐켐(220100) 등과 Ac-225 기반 방사성의약품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연구에 필요한 원료는 이들 기업이 대부분 미국과 독일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 부장은 "국내 생산이 시작되면 수입 비용 부담이 줄고 연구 일정도 훨씬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는 해외 공급이 끊기면 공동연구 일정도 함께 밀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료 수급 여건이 개선되면 Ac-225 기반 방사성의약품 연구개발에 대한 진입장벽도 낮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급난이 심화되자 글로벌 기업들도 생산능력 확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빌 게이츠가 설립한 미국 원자력 기업 테라파워는 지난 3월 약 6억7400만달러(약 9600억원)를 투자해 미국 필라델피아에 Ac-225 생산시설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 생산이 시작되면 환자 치료 접근성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국내에서는 일부 임상시험을 제외하면 Ac-225 기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사실상 없다.
이 부장은 "아직 국내 Ac-225 치료 수요가 충분히 파악되지 않아 연간 공급 규모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현재는 Ac-225 치료를 시행하는 의료기관이 많지 않아 생산 초기에는 국내 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생산이 안정화되면 수요를 반영해 생산 횟수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