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한미약품그룹 본사. /한미약품그룹

최근 한미약품(128940)그룹 송영숙 회장의 자산·자금 사용 의혹을 제기한 김태호 전 큐어세라퓨틱스 대표가 과거 한미그룹과 사업 협력을 추진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김 전 대표가 운영하던 큐어세라퓨틱스는 한미그룹 측에 투자 유치와 연구개발 장비 구매를 요청했지만,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7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김태호 전 대표가 운영한 큐어세라퓨틱스(현 폐업)는 2023년부터 한미약품 연구소 등에 회사 소개서와 투자 제안서를 전달하며 투자 유치와 사업 협력을 추진했다.

김태호 전 큐어세라퓨틱스 대표는 지난달 한 주간지에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의 법인카드 사용 의혹 등 한미그룹 자산·자금 사용과 관련한 내용을 제보하며 의혹을 제기한 인물이다.

그는 30년 전인 1996년 한미약품 무역부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약 3년 6개월간 근무했다. 입사 초기에는 당시 무역부 책임자였던 임종호 전 한미약품 부사장(당시 부장) 아래에서 근무했고, 이후 비서실로 자리를 옮겨 약 1년간 근무한 뒤 1999년 회사를 떠났다.

임종호 전 부사장은 한미그룹 창업주 고(故) 임성기 선대 회장의 형의 아들이자, 임종윤 코리그룹 회장의 사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한미약품 퇴사 이후 김 전 대표가 설립한 큐어세라퓨틱스의 관리본부장을 지냈다.

복수의 한미그룹 직원에 따르면 큐어세라퓨틱스는 2023~2024년 당시 한미그룹 관련 부서, 연구진과 수차례 기술 검토를 진행했다. 기술 검토는 임종호 전 부사장의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검토에 참여했던 한 연구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2024년 2월 김 전 대표와 직원들이 직접 참석해 기술 발표를 했지만, 경쟁 기술과 비교했을 때 차별성이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검토 결과 투자 대상이 아니라는 의견을 회사에 전달했고, 이후 협력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취지의 내용을 공식 이메일로 회신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큐어세라퓨틱스는 한미약품과 접촉을 이어갔다. 여러 직원들에 따르면, 당시 투자 검토가 끝난 뒤에도 임 전 부사장과 큐어세라퓨틱스 실무자는 한미그룹 측에 큐어세라퓨틱스가 보유한 연구개발 장비를 구매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한미그룹은 해당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알고 있는 한 연구원은 "기술 경쟁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은 회사가 투자에 이어 연구개발 장비까지 구매해 달라고 요청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며 "회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다"고 말했다.

한미그룹 측은 투자와 장비 구매 모두 진행하지 않았다. 이후 큐어세라퓨틱스는 폐업했다. 온라인상에 이 회사 폐업일은 2024년 12월 31일로 나와 있다.

한미그룹 창업주 고(故)임성기 회장 가족과 대주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그래픽=정서희

한미그룹은 창업주 고(故) 임성기 회장 타계 이후 수년째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시장에서는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손을 맞잡았던 '4자 연합(신동국·송영숙·임주현·라데팡스)' 내 균열이 생긴 가운데, 제3자인 김 전 대표가 송 회장 관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하는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언론사 제보에 이어 제보 배경과 의혹에 대해 직접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7일 오전에 열겠다고 했다.

김 전 대표는 최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김 전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한미그룹의 전직 임원이 같이 움직이면 좋겠다고 한 것이 계기가 됐다"며 "갈등 관계에 있던 사람들을 중재하려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회장은 임성기 회장의 고향 후배로 2020년 임 회장이 타계하자 '구원 투수'를 자처하며 때로는 형제 측과, 때로는 모녀 측과 번갈아 손을 잡으며 세력을 키워왔다. 그사이 지분도 계속 늘렸다. 신 회장은 2024년 모녀 측과 손잡으며 경영권 분쟁을 매듭지었지만, 올해 들어 모녀와도 600억원대 소송에 돌입하며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후 그간 캐스팅보트로 꼽혀온 차남 임종훈 대표가 어머니·누나와 '가족 연합'을 형성하면서, 가족 측 우호 지분이 현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측을 넘어섰다. 그러자 신 회장이 다시 지분 확대로 맞대응했다. 한때 차남과 손을 맞잡았던 창업주 장남 임종윤 회장과 그의 배우자 홍지윤 씨 등 7인과 주식매매계약을 맺고 신 회장에게 지분을 넘기기로 한 것이다.

신 회장은 지주사 한미사이언스(008930) 보통주 360만4799주를 약 1727억원에 장외 매수할 계획이라고 지난달 공시했다. 신 회장의 장외 매수는 이날(7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되며, 취득 단가는 주당 4만7920원이다.

김 전 대표는 전날 언론에 배포한 입장문에서 "제보는 특정인을 비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미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위한 것"이라며 "제보 내용이 허위라면 법적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또 "제보자의 동기나 신상을 문제 삼기보다 제보 내용의 사실관계를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그룹 관계자는 "제보자가 한미를 비판하려는 만큼, 자신도 사익을 취하려 한 건 없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며 "불법적으로 취득한 불명확한 자료라는 점이 확인된다면 법적 책임은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