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illy)' 커피가 맛있어서 주식을 샀다가 예상치 못한 이익을 거둔 투자자가 있다. 알고 보니 커피 회사가 아니라 비만치료제 '마운자로'를 출시한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Eli Lilly) 주식을 잘못 매수했던 것이다.
최근 민음사 박혜진 편집자가 한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한 이 일화는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단순한 해프닝처럼 들리지만, 비슷한 이름 때문에 기업을 혼동하는 일은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서도 낯설지 않다. 투자자뿐 아니라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같은 그룹 계열사로 오해하거나 사업 분야까지 착각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양'이다. 삼양라면과 불닭볶음면 등 라면을 생산하는 회사는 삼양식품(003230)이고, 삼양그룹은 화학과 첨단소재를 기반으로 바이오 사업을 핵심 성장축으로 육성하고 있다. 삼양그룹의 바이오 계열사인 삼양바이오팜은 항암제와 생분해성 수술용 봉합사, 독자적인 유전자 전달체 플랫폼(SENS) 등을 개발하고 있다.
같은 '삼양'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만, 두 회사는 지배구조와 사업 영역이 전혀 다른 별개의 기업이다. 그럼에도 실제 삼양그룹에 삼양식품 주주나 투자자들이 주가·실적 관련 문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삼성제약(001360)도 삼성전자(005930)와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등과 같은 삼성그룹 계열사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실제로는 전혀 무관한 기업이다.
두 회사는 실제 상표권 분쟁도 겪었다. 삼성그룹은 2015년 '삼성제약(SAMSUNG PHARM)' 상표가 삼성그룹의 저명한 상표와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며 등록무효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특허심판원에 이어 2020년 특허법원은 삼성제약이 약 85년간 해당 상호를 사용하며 독자적인 식별력을 확보했다며 삼성그룹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성제약은 1929년 설립돼 1938년 출범한 삼성그룹보다 먼저 '삼성'이라는 상호를 사용해 왔다. 법원은 일반 수요자가 '삼성제약'을 하나의 상표로 인식해 삼성그룹 계열사로 오인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 혼선은 빚어지고 있다. 또 증권사와 포털 증권 서비스에서는 삼성제약 관련 공시나 뉴스가 삼성전자 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종목 페이지에 자동 분류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현대바이오랜드(052260)와 현대바이오사이언스도 자주 혼동되는 사례다.
현대바이오랜드는 현대백화점그룹이 2020년 SK바이오랜드를 인수하면서 출범한 회사다.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 소재 사업이 주력이다.
반면 현대바이오사이언스는 현대전자에서 출발한 현대IBT가 IT 중심 사업에서 바이오 사업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며 사명을 변경한 기업이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두 회사 사이에는 직접적인 지분이나 경영 관계가 없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비슷한 이름이 반복되는 이유로 산업 특성을 반영한 작명 관행을 꼽는다. 차세대를 의미하는 '넥스트(Next)', 유전자를 뜻하는 '젠(Gen)', 생명과학을 의미하는 '바이오(Bio)', 치료제를 뜻하는 '테라퓨틱스(Therapeutics)' 등이 회사명에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자연스럽게 유사한 사명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국내·외에서도 유사 명칭을 둘러싼 상표권 분쟁이 잇따르고 있다.
리가켐바이오(141080)사이언스의 경우, 과거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라는 사명을 사용했지만, 덴마크 완구 기업 레고(LEGO)와의 상표권 분쟁에서 대법원 패소가 확정되면서 브랜드 위험 관리 차원에서 사명 변경에 나섰다.
레고켐바이오는 화합물 합성기법인 '레고케미스트리(LegoChemistry)'에서 이름을 따 사명을 정했지만, 레고 측은 '레고'라는 저명 상표의 식별력과 명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2023년 대법원은 다른 분야라도 유명 상표의 희석화 우려가 있다며 레고 측 손을 들어줬다.
미국 헬스케어 기업 애보트(Abbott)는 대표 의약품 브랜드 '듀파락(Duphalac)' 등에 사용해 온 '듀파(Dupha)'와 유사한 명칭을 쓴 인도 제약사와 상표권 분쟁을 벌였다. 인도 봄베이 고등법원은 올해 6월 '듀파크리트(Duphachrit)' 상표 등록 취소를 명령했다.
글로벌 시장에 다양한 의약품과 브랜드가 쏟아지면서 네이밍 전략도 기업 경쟁력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해외 의료진과 환자가 쉽게 발음하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국가별 상표권 등록 가능성과 기존 브랜드와의 혼동 가능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