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는 '원전 활용 방사성동위원소 산업화'의 첫 상업화 품목으로 루테튬-177(Lu-177)이 낙점됐다.

Lu-177은 현재 글로벌 방사성의약품 시장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치료용 동위원소로 우리나라는 전량 수입에 의존해 왔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계획대로 추진되면 국내 첫 Lu-177 상업 생산이 이뤄진다.

한국수력원자력은 6일 조선비즈에 "기술 개발과 인허가 일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Lu-177을 먼저 상업화하는 것이 목표"라며 "이후 코발트-60(Co-60), 삼중수소(H-3), 헬륨-3(He-3) 등으로 품목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H-3는 중수로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물질로 현재도 포집하고 있으며, 앞으로 생산량을 늘린다는 구상이다. 포천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Lu-177 시장은 올해 34억3000만달러에서 2034년 147억달러 규모로 연 평균 19.9% 성장할 전망이다.

한수원은 현재 자회사 형태의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방사성동위원소 상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전체 생산 규모와 투자액, SPC에 참여할 민간기업 구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정부는 올해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내년까지 법인을 설립하고, 2028년 시범생산에 착수할 계획이다.

본격적인 상업 생산은 2031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관계자는 "상업화할 수 있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추가로 하나 더 검토하고 있다"며 "후보 물질과 활용 분야는 기술성과 시장성을 종합적으로 따져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생산에는 월성원전 중수로를 활용한다. 한수원은 "원자로에서 발생한 중성자를 원소에 쏘면(Irradiation) 원자가 바뀌면서 방사성동위원소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중수로는 일반 경수로와 달리 원전을 가동하는 중에도 원자로 내부에 원료 물질을 넣고 꺼낼 수 있다. 생산 시점과 생산량을 조절하기 쉬워 캐나다 등에서는 이미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 생산에 활용되고 있다.

월성원자력발전소 전경./한국수력원자력

◇전량 수입하는 Lu-177…국산 공급망 구축 시동

Lu-177은 노바티스의 전립선암 치료제 '플루빅토'와 신경내분비종양 치료제 '루타테라'에도 사용된다. 반감기가 약 6.6일에 불과해 생산부터 운송, 의약품 제조, 환자 투여까지 짧은 시간 안에 이뤄져야 한다.

국내에서 Lu-177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업으로는 셀비온(308430)퓨쳐켐(220100)이 꼽힌다. 두 회사는 모두 전립선특이막항원(PSMA)을 표적으로 하는 Lu-177 기반 전립선암 치료제를 개발하며 국내 첫 방사성의약품 치료제 출시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셀비온은 '177Lu-포큐보타이드'를 앞세워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조건부 품목허가를 신청한 상태다. 최근에는 임상 3상 시험계획도 제출했다. 퓨쳐켐은 'FC705'의 국내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며, 지난 5월 미국 임상 2a상 마지막 환자 투여도 완료했다.

전량 수입 구조는 국내 방사성의약품 기업에 부담이다. 정부가 Lu-177 국산화를 추진하는 이유다.

퓨쳐켐 관계자는 "현재는 환자 투여 일정이 확정된 뒤에도 원료를 주문해 공급받기까지 약 2주가 걸린다"며 "중간에 주문을 취소하기 어려워 비용 부담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Lu-177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가격도 쉽게 낮아지지 않는다"며 "현재 원료 가격 자체가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했다.

셀비온 관계자는 "현재는 미국과 유럽, 중동 등 복수의 공급처를 확보해 임상과 생산 일정에는 차질이 없다"면서도 "국내에서 상업적 공급이 시작되면 공급망 다변화와 운송 기간 단축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운송 시간이 줄어들면 방사성 붕괴에 따른 손실이 줄어 사용 효율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원료 확보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Lu-177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해 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운 기업도 있다"고 말했다.

퓨쳐켐 관계자도 "현재는 복수의 공급처를 확보해 문제가 없지만, 임상 초기엔 공급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분쟁 지역에서 들여오는 경우엔 항공 지연 문제도 있었다"고 했다.

업계는 이번 사업이 Lu-177 기반 치료제 상용화에 앞서 국내 원료 공급망을 구축하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퓨쳐켐 관계자는 "국내에서 원료를 생산할 수 있게 되면 치료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며 "해외 수출 과정에서도 국내 생산 인프라 자체가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는 국산 Lu-177이 생산되더라도 기존 해외 공급망을 곧바로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품질과 GMP(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 충족 여부, 규제기관 요구사항, 공급 안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증한 뒤 도입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셀비온 관계자는 "공급 가격과 품질, 공급 능력 등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만큼 경제적 효과를 현재 단계에서 산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품질과 관련해 한수원은 "국내외 제반 규정에 부합하는 품질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바티스의 전립선암 치료제 '플루빅토'./노바티스

◇원료만으론 부족…시장 경쟁은 이제 시작

일각에선 원료 공급이 안정된다고 해서 시장 경쟁력이 곧바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노바티스는 지난달 보건복지부와 방사성리간드치료(RLT) 생태계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고 국내 제조시설과 콜드체인 물류망, 투여 병원 확대, 연구인력 양성 등에 14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현재 Lu-177 치료제를 투여할 수 있는 국내 병원은 방사선 차폐시설과 핵의학 전문인력을 갖춘 약 10곳 수준이지만, 이번 협약으로 30곳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병원 인프라가 먼저 갖춰질 경우 플루빅토가 초기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이 크다.

건강보험 적용에서도 노바티스가 앞설 가능성이 있다. 플루빅토는 현재 건강보험 등재를 추진 중이며, 급여가 적용되면 암환자 산정특례를 통해 환자 본인부담률이 5% 수준으로 낮아진다.

이에 업계는 한수원이 향후 생산 품목을 악티늄-225(Ac-225)까지 확대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Ac-225는 Lu-177의 뒤를 이을 차세대 방사성동위원소로 꼽힌다. Lu-177보다 암세포 살상력이 높고 정상 조직 손상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초기 임상 결과가 있다. 셀비온과 퓨쳐켐도 Ac-225 기반 치료제 개발을 추진 중이다.

퓨쳐켐 관계자는 "Ac-225도 충분한 잠재력을 가진 동위원소"라며 "공급 안정성과 가격, 부작용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지만, 극복된다면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셀비온 관계자는 "Lu-177은 이미 글로벌 허가와 상업화 사례가 축적된 핵종으로 당분간 시장의 중심이 될 것"이라며 "Ac-225는 이를 대체하기보다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는 차세대 핵종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