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그룹 창업자 임성기 회장 가족과 대주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조선비즈

법원이 고(故) 임성기 한미그룹 창업주의 장녀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008930) 주식에 대해 100억원 규모 가압류 결정을 내렸다.

한미그룹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체결된 '4자 연합'의 의결권 공동행사 약정과 관련해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측이 제기한 가압류 신청을 인용한 것이다.

다만 이번 결정은 채권 보전을 위한 임시 조치인 가압류 단계의 판단으로, 임 부회장의 위약벌 책임이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향후 본안 소송에서 4자협약 위반 여부와 책임 범위가 다뤄질 전망이다.

6일 신동국 회장 측에 따르면 법원은 지난달 29일 신 회장이 임 부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한미사이언스 주식 가압류 신청을 인용했다. 신 회장 측은 임 부회장이 4자협약상 의결권 공동행사 의무를 위반했다며 100억원 규모의 위약벌 청구권 보전을 위해 가압류를 신청했다.

2024년 임 부회장과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 신 회장, 킬링턴 유한회사(라데팡스파트너스)는 한미사이언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4자 연합을 구성하고 각자가 보유한 주식의 의결권을 공동 행사하기로 약속했다.

쟁점은 임 부회장이 당시 보유 지분으로 제시한 한미사이언스 지분 9.15% 가운데 2.7%다.

신 회장 측은 임 부회장이 해당 지분을 에쿼티퍼스트와 매매하고 일정 기간 이후 되살 수 있는 환매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거래하면서, 환매 전까지 의결권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이후 에쿼티퍼스트가 해당 지분을 시장에 매각하면서 임 부회장이 지난해와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해당 지분의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했고, 이는 4자협약에서 정한 공동 의결권 행사 의무 위반이라는 게 신 회장 측 주장이다.

신 회장 측에 따르면 법원은 가압류 결정 과정에서 4자 연합이 각자가 가진 지분에 대한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형성됐다는 점을 고려했다.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4자 간 합의가 이뤄질 경우 각자가 보유한 지분 전체를 합의된 방식으로 행사해야 하며, 이 같은 의무가 협약의 핵심이라는 취지다.

◇창업주 별세 후 바뀐 한미 지분 구도

이번 결정은 임성기 창업주 별세 이후 이어져 온 한미그룹 지배구조 변화와 맞물려 나온 것이다.

한미그룹은 임 창업주 별세 이후 상속세 재원 마련 과정에서 지분 구조가 크게 변했다. 신 회장은 임 창업주의 고향 후배이자 고교 동문으로 알려졌으며, 상속 과정에서 시장에 나온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꾸준히 매입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신 회장은 임성기 회장 장남인 임종윤 코리그룹 회장, 차남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대표 등 형제 측과 손잡고 송영숙 회장·임주현 부회장 모녀 측과 경영권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이후 신 회장은 형제 측과 결별하고 송 회장·임 부회장 측과 이른바 '4자 연합'을 구성하면서 한미그룹 경영권 분쟁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4자 연합 내 관계가 변화하면서 주요 주주 간 지분 구도도 다시 재편됐다.

임종훈 대표는 보유 지분 일부를 송 회장·임 부회장 측 우호 세력에 넘기며 모녀 측과의 협력 구도를 강화했다. 반면 임종윤 회장은 보유 중이던 한미사이언스 지분 일부를 신 회장 측에 넘기며 다시 협력 구도를 형성했다.

이에 신 회장은 지난달 한미사이언스 주식 약 1727억원어치를 추가 매입하기로 하면서 지분 확대에 나섰다. 주요 주주 간 연대와 지분 이동이 이어지면서 한미그룹 지배구조는 다시 재편되는 양상이다.

◇에쿼티퍼스트 지분 향방…의결권 구도 변수

이번 가압류 결정으로 에쿼티퍼스트에 넘어간 한미사이언스 지분의 향방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공시에 따르면 에쿼티퍼스트는 임 부회장으로부터 2.7%, 임종훈 대표로부터 3.44%, 송 회장으로부터 0.46% 등 총 6.6% 규모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매입했다. 대신 일정 기간 이후 주식을 되살 수 있는 환매권을 부여하는 구조였다.

신 회장 측은 에쿼티퍼스트가 해당 지분을 대부분 시장에 매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에 창업주 일가 측 우호 지분으로 거론됐던 일부 물량이 실제 의결권 경쟁에서는 제외될 수 있다는 게 신 회장 측 주장이다.

다만 의결권 행사 가능 여부는 명확한 해석과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임종훈 대표가 나우아이비캐피탈에 매각한 지분과 공익재단 보유 지분 역시 어느 쪽 우호 지분으로 분류할 수 있는지를 두고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4자 연합을 둘러싼 법적 공방은 양측에서 이어지고 있다. 신동국 회장 역시 송영숙 회장·임주현 부회장·킬링턴 유한회사 측이 제기한 600억원 규모 위약벌 청구 소송의 피고로 재판을 받고 있다. 해당 사건의 1심 선고기일은 오는 10월 1일로 잡혀 있다.

향후 관련 소송 결과와 주요 주주들의 지분 변동이 경영권 구도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신 회장 측은 "이번 가압류 결정으로 4자 연합에 본질적 균열이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이 전문경영인 중심 체제와 준법경영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