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튀르키예 부통령이 직접 이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당시 영국에 살고 있었는데, 곧바로 튀르키예로 옮겨 일을 시작했다."무함메트 아브질 비루니셀테라피 대표
튀르키예가 한국 바이오벤처의 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CAR-T) 제조 체계를 국가 프로젝트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생산기술과 품질관리 체계, 공급망, 후속 연구개발까지 통째로 옮겨 자국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부통령이 먼저 움직였다. 주한 튀르키예 대사와 투자금융청도 힘을 보탰다. 파트너로 낙점된 곳은 혈액암 CAR-T 치료제 '림카토(Rimqarto)'를 개발한 큐로셀(372320)이다.
무함메트 아브질(Muhammet Avcil) 비루니셀테라피(Biruni Cell Therapy) 대표는 지난달 29일 조선비즈와 만나 "큐로셀의 제조 체계를 튀르키예에서 그대로 구현해, 이를 발판으로 고형암과 자가면역질환 치료제까지 함께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아브질 대표는 "튀르키예는 해마다 수십만명의 외국 환자가 찾는 의료관광 허브"라며 "CAR-T 치료까지 더해지면 중동과 유럽의 암 환자들이 찾는 새로운 치료 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비루니셀테라피는 튀르키예 민간 의료그룹 비루니의 세포·유전자치료제 계열사다. 아브질 대표는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에서 화학 박사 학위를 받고, 약물전달(DDS) 분야에서 20년 가까이 기술사업화를 이끌어온 인물이다.
비루니는 큐로셀과의 협력을 통해 최근 이스탄불에 76개실 규모의 CAR-T 전용 생산시설을 완공했다. 각 실의 온도와 습도, 공기 흐름을 개별 제어하는 첨단 무균시설로, 단일 CAR-T 생산시설 가운데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규모다.
현재는 유럽의약품청(EMA) 기준에 따른 제3자 검증이 진행 중이다. 비루니는 약 6주 뒤 결과가 나오면 곧바로 튀르키예 보건당국에 허가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162곳 살펴본 끝에 손잡은 큐로셀…"허가 경험이 결정적"
'CAR-T 품목 하나를 들여오는 대신 제조 체계를 통째로 가져온다'는 접근에는 첨단 의료 기술을 국가안보와 연결해 보는 튀르키예 정부의 시각이 깔려 있다. 튀르키예 정부는 바이오 산업을 국방 산업에 이어 두 번째 전략 육성 분야로 지정하고, 비루니에 법인세 감면과 고용 지원, 설비 투자 보조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정부가 비루니를 선택한 배경에는 그룹이 구축한 연구개발 생태계가 있다. 비루니는 자체 대학과 대학병원, 테크노파크를 기반으로 연구와 임상, 사업화를 잇는 구조를 만들었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본딴 테크노파크에는 현재 500여개 기업이 입주해 있으며, 동물실험센터와 임상시험센터도 갖춰져 있다.
비루니는 이 같은 역량을 바탕으로 CAR-T 파트너를 추렸다. 북미·유럽·아시아 162개 기업을 비교·분석한 결과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이 큐로셀이었다.
아브질 대표는 "큐로셀의 임상 2상 결과를 보고 이 회사가 자국 내 첫 CAR-T 치료제로 허가받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림카토는 지난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허가를 받았다.
임상 성과보다 높은 점수를 매긴 건 '경험'이었다. 아브질 대표는 "큐로셀은 GMP(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 시설을 구축했고, 허가 절차를 거쳐 실제 승인을 받아낸 회사였다. 그 경험이 가장 중요했다"고 말했다.
◇年 750명분 생산체제 구축…튀르키예 넘어 중동·유럽으로
생산시설 완공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부터는 규제의 시간이다.
변수는 선례의 부재다. 튀르키예 보건당국은 세포·유전자 치료제를 허가한 경험이 없다.
아브질 대표도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허가 절차를 관건으로 꼽았다. 다만 준비는 충분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과 튀르키예에서 생산한 제품의 품질 동등성을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 될 것"이라며 "그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비루니 직원들은 앞서 큐로셀 본사에서 3개월간 전 공정을 연수했다. 림카토가 튀르키예에서 허가를 받으면 큐로셀 직원들도 현지를 방문해 공정이 동일하게 구현되는지 확인할 예정이다.
목표는 내년 품목허가다. 이후에는 발칸 반도와 중동, 유럽 시장으로 진출할 구상이다. 가격은 시판 중인 글로벌 CAR-T 치료제보다 낮은 수준으로 튀르키예 정부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수요는 확인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해외에서 여덟 명이 치료를 요청하며 튀르키예를 찾았고, 그중 두 명은 현재 비루니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다"며 "생산능력도 향후 5~10년 내 부족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스탄불 시설은 연간 최대 750명분을 생산할 수 있다.
아브질 대표는 "허가가 나는 해부터 양사 모두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지금 시장 규모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튀르키예와 한국 모두 CAR-T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첫해 실적이 나와야 보다 정확한 추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처럼…"韓 바이오 소부장 해외 진출 기대"
비루니는 이번 프로젝트가 큐로셀 한 기업과의 협력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바이오 소부장 기업들도 튀르키예와 중동, 유럽으로 진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루니는 큐로셀이 국내에서 조달하는 장비와 소모품을 그대로 도입했다. 아브질 대표는 "튜브를 만드는 한 회사는 해외 납품 경험이 없어 우리가 직접 수출 절차를 도왔다"고 말했다.
그는 "CAR-T처럼 복잡한 치료제도 함께 만들 수 있다면 다른 바이오 제품도 충분히 협력할 수 있다"며 "앞으로 한국에서 파트너를 찾는 건 비루니만이 아닐 것이다. 다른 튀르키예 기업과 이웃 국가들도 같은 모델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튀르키예 정부도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타하 사란(Taha Saran) 튀르키예 투자금융청 한국지부장은 "1990년대 현대자동차와 20여개 한국 부품 협력사가 함께 튀르키예에 진출했던 것처럼 큐로셀과의 협력은 한국 바이오 공급망 전체가 새로운 시장으로 나아가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중동과 유럽 시장은 튀르키예가 강한 네트워크를 가진 곳"이라며 "한국과 튀르키예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수 있는 파트너"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