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4년 만에 제네릭 의약품(복제약) 약가 산정체계를 손질했다. 복제약 중심의 산업 구조를 혁신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취지다. 이번 개편은 국내 제약사의 생존 전략은 물론 환자의 약값, 필수의약품 공급 체계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산업·의료 현장에 미칠 영향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제네릭과 특허 만료 의약품 약가 산정률을 현행 53.55%에서 45%로 조정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국민건강보험 약가제도 개편안'이 8월 1일 본격 시행된다.

8월 1일부터 복제약(제네릭)에 적용되는 건강보험 약가가 새 기준에 따라 인하된다. 정부는 제네릭 난립을 막기 위해 약가(藥價) 산정 기준을 강화하는 대신, 연구개발(R&D)과 품질관리, 공급 안정성에 투자하는 기업에는 약가를 우대하기로 했다.

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번 약가 개편안은 제네릭 기본 약가 산정률을 기존 53.55%에서 45%로 낮추는 게 핵심이다. 건강보험에 등재된 기존 의약품 중 인하 대상 품목에 대해선 2036년까지 10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내린다. 이와 함께 혁신형·준혁신형 제약기업과 수급 안정 기여 품목에는 약가 우대 혜택을 부여한다.

이번 제도 개편이 국내 제약사의 성장 공식을 바꿀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번 개편이 제네릭 의약품이 난립하는 구조를 정리하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복제약 비중이 높은 중소 제약사에는 생존을 좌우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종혁 중앙대 약대 교수는 "정부는 국내 제약사의 신약 개발을 촉진하는 한편 외국계 제약사의 신약 도입을 강화하려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한국은 외국에 비해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이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약가 인하로 남는 재원을 외국계 신약 도입에 투입할 수 있다"면서 "국내 제약사는 수익성이 저하돼 각자 살 길을 찾아야 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복제약 난립 손질…13개 넘으면 약가 더 깎는다

그동안 많은 국내 제약사들이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을 복제한 제네릭 사업에 치중해 왔다. 신약보다 개발비 부담이 적고 시장 진입이 쉽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에선 '제네릭만으로도 먹고 산다'는 말이 있었다.

실제 하나의 성분에 수십~수백 개 제품이 몰리기도 했다. 한 예로 고지혈증 치료제 성분인 '아토르바스타틴'은 현재 137개 업체가 동일 성분 제네릭 356개 품목 허가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약가 제도 손질에 '혁신해야 산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업계에선 제네릭 품목 사업 중심의 영세 제약사가 문을 닫거나 제약사 간 인수합병을 하는 식의 구조조정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런 구조 탓에 기업들이 제품 차별화보다는 영업 경쟁에 몰두하고, 중장기 성장 동력과 직결되는 신약 연구개발(R&D)에는 소극적으로 투자하는 흐름을 고착화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정부도 약가 체계를 손질해 국내 제약사들의 혁신을 유도하고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를 앞세웠다. 이날부터 같은 성분의 제네릭이 13개를 넘으면, 새로 시장에 진입하는 제품의 약가를 단계적으로 낮추는 계단식 약가 인하도 적용된다.

업계에선 정부의 약가 제도 개편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이 동시에 나왔다. 다만, 과도한 제네릭 난립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가 있다.

한 의약품 유통 기업의 임원은 "국내 환자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내수용 제네릭 의약품이 난립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독일 등 해외처럼 제네릭을 한정적으로 허가 승인해 원천적으로 관리한다면, 제약사들의 글로벌 신약 개발 역량 제고, 의약품 관리감독 용이 등의 과제도 순차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의견을 냈다.

그래픽=정서희

◇신약 개발에 '당근'…혁신기업 키운다

정부는 제네릭 약가를 낮추는 대신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기업에는 차등 보상을 강화했다. 혁신형 제약기업이 새로 건강보험에 등재하는 제네릭은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의 최대 60%, 준혁신형 제약기업은 50% 수준의 약가를 인정받는다.

기존 등재 품목도 일반 제약사보다 높은 산정률을 일정 기간 적용받고, 사용량 증가에 따른 약가 인하 부담도 일부 완화된다. 국산 원료의약품을 사용한 국가필수의약품이나 수급 안정에 기여하는 품목에도 별도 약가 우대를 적용한다.

정부가 이 같은 차등 보상 체계를 도입한 것은 제네릭 판매량보다 신약 개발과 R&D 역량을 갖춘 기업을 키우겠다는 취지다. 약가를 단순히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를 유도하는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미다.

업계는 이번 개편으로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이 단순한 정부 인증을 넘어 기업의 수익성을 좌우하는 핵심 경쟁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제네릭이라도 혁신형 인증 여부에 따라 적용받는 약가 수준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대표적으로 한미약품(128940), 유한양행(000100), 대웅제약(069620), JW중외제약(001060), HK이노엔(195940) 등은 자체 신약과 개량 신약을 성장축으로 육성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국내 제네릭 판매 비중보다 신약 매출, 기술수출, 해외 사업 비중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어 약가 개편에 따른 충격을 상대적으로 흡수할 여력이 있다는 평가다.

셀트리온(068270), 삼성바이오에피스 등 바이오시밀러 기업이나 알테오젠, 리가켐바이오(141080), 에이비엘바이오(298380) 등 기술수출 중심 바이오 기업은 이번 제도와 관련해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다. 이들 기업의 핵심 수익원은 국내 제네릭 보험약가가 아니라 해외 바이오시밀러 판매와 기술이전 계약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도 14년 만에 전면 개편했다. 의약품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 기준을 높이고, 공급망 안정화 기여도를 평가 항목에 새로 반영하는 등 인증 기준을 강화했다. 정부는 약가 우대와 인증제 개편을 연계해 연구개발 투자와 신약 개발 중심으로 산업 체질을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일러스트=챗지피티

◇복제약 회사들은 비상…생존 시험대

복제약 비중이 높은 국내 중소 제약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회사들은 당장 대안이 없다는 반응이다.

특히 중소 제약사들은 복제약 판매로 매출을 올렸는데 약가 인하로 비용 절감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한 중견 제약사 관계자는 "작년과 동일하게 약을 팔아도 실적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고민이 깊다"고 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내부 인력이나 품목에 대한 구조 조정 압박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국내 전통 제약사 83곳의 2024년 영업이익률은 5.1%에 불과하다. 이는 약가 인하 영향을 받지 않는 바이오 의약품 위탁 개발 생산(CDMO)과 비급여 비중이 높은 기업을 제외한 수치다. 의약품을 팔아도 손에 쥐는 이익이 미미한 상황에서 신약 개발을 위한 투자를 확대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 제약사는 사업 다각화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신풍제약(019170)은 동물 의약품과 의료기기 제조업을 올해 3월 사업 정관에 추가하며 반려동물 시장 진출을 예고했다.

이른바 '무늬만 제약사'를 물갈이할 기회라는 시각도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어떤 제약사는 공동 생동으로 복제약 허가를 받고 생산과 영업은 위탁하며 물을 흐리고 있다"면서 "현금을 보유하면서도 연구개발에 투자하지 않는 기업도 상당한데 오히려 약가 인하를 기점으로 산업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밝혔다.

공동 생동은 여러 제약사가 공동으로 생동성 시험을 진행하고 복제약 품목 허가를 받는 것이다. 제품을 출시한 뒤 외부에 영업을 맡기고 처방에 따른 판매 수수료를 떼주는 식으로 근근이 사업을 영위하기도 한다. 앞으로는 수익성이 높은 의약품에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품목은 위탁 영업(CSO) 수수료를 낮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복제약 난립으로 인한 불법 리베이트 관행을 근절할 기회라는 의견도 있다. 복제약은 효과와 가격이 엇비슷해 결국 영업이 매출을 좌우한다. 영업 경쟁이 치열해 의사와 약사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특정 의약품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관행이 비일비재했다. 이는 의약품값을 부풀리고 국민에게 전가한다는 문제가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결국 복제약 리베이트가 더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정부가 주는 것"이라면서 "현장에서 이런 관행이 축소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권혜영 목원대 보건의료행정학과 교수는 "제약사 입장에선 가격이 낮아진 만큼 오히려 사용을 늘리기 위해 의료진에게 리베이트 관행을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약가를 인하해도 건보 재정 절감 효과가 없을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