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제약사 사노피가 연매출 27조원 규모의 블록버스터 아토피 치료제 '듀피젠트'를 이을 차세대 신약 개발 계획을 전격 철회했다. 임상 3상에서 기존 치료제를 뛰어넘는 차별성을 입증하지 못하면서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이 국내 기업들에는 '포스트 듀피젠트' 시장을 노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29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사노피는 최근 차세대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 후보물질 '암리텔리맙'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 신청 계획을 철회했다.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허가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었지만, 3상 결과 기존 치료제 대비 뚜렷한 차별성을 입증하지 못한 데다 출시 이후 시장 경쟁력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상업성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듀피젠트는 사노피와 미국 리제네론이 공동 개발한 세계 최초의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다. 사노피는 2030년대 초 듀피젠트 특허 만료에 대비해 암리텔리맙을 '넥스트 듀피젠트'로 육성해왔다. 이를 위해 2021년 영국 바이오기업 카이맙(Kymab)을 약 11억달러(한화 1조6000억원)에 인수하며 암리텔리맙을 확보했고,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개발해왔다.
현재 글로벌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 시장은 듀피젠트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노바티스의 '졸레어' 등이 경쟁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자체 연구개발뿐 아니라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해 차세대 면역질환 파이프라인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애브비는 지난 6월 면역질환 신약 개발사 아포지를 109억달러(약 15조9500억원)에 인수하며 시장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번 결정으로 사노피가 '넥스트 듀피젠트' 개발 경쟁에서 사실상 이탈하면서 국내외 후발 주자들에게는 시장을 공략할 기회가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빅파마들이 임상 성공보다 차별성을 중시하는 만큼, 국내 기업들도 결국 기존 치료제를 뛰어넘는 효능을 입증하는 것이 관건이다.
대표적인 기업은 유한양행(000100)이다. 2020년 7월 지아이이노베이션(358570)으로부터 도입한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 '레시게르셉트(GI-301)'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글로벌 2상이 진행 중인 레시게르셉트는 유한양행이 '넥스트 렉라자'로 육성하는 핵심 파이프라인이다.
유한양행은 지난달 유럽 알레르기 임상면역학회(EAACI)에서 발표한 레시게르셉트 임상 1b상 결과를 통해 기존 치료제보다 더 빠르고 지속적인 혈중 유리 IgE 억제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지아이이노베이션도 최근 인공지능(AI) 기반 이중융합 단백질 후보물질을 발굴하며 후속 파이프라인 확대에 나서고 있다.
에이프릴바이오(397030)는 지난해 미국 에보뮨에 약 6500억원 규모로 기술수출한 자가염증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APB-R3'를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로 글로벌 2b상을 진행 중이다.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 '누겔'을 개발 중인 샤페론은 지난달 공개한 글로벌 임상 2b상 결과에서 1차 평가지표인 습진중증도평가지수(EASI) 개선율이 위약군 대비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회사는 추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개발 전략을 검토할 계획이다.
듀피젠트 특허 만료를 앞두고 바이오시밀러 개발 경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삼성에피스홀딩스(0126Z0)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종근당(185750), 대웅제약(069620), 경동제약(011040) 등이 듀피젠트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개발에 뛰어들며 차세대 시장 선점에 나선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단순히 임상에 성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기존 치료제를 얼마나 뛰어넘을 수 있는지가 신약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기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