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이 떳떳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최대주주가 된다는 것은 회사의 주인이 된다는 뜻이지, 회사를 믿고 투자한 사람들의 신뢰를 등지고 얻는 자리가 아닙니다.
성장은 재무제표로만 증명되지 않습니다. 이 회사를 믿고 주식을 산 사람들, 이 회사의 약을 믿고 먹은 사람들. 그들이 회사를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결국 그 회사의 진짜 체력입니다. 위기 때마다 오너 일가만 안전했던 회사를, 사람들은 오래 신뢰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주식 토론게시판에 한 주주가 올린 글이 뭇 공감을 얻고 있다. "타이밍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주가 급락기를 노린 '체리피킹식 편법 증여'다." 일양약품 얘기다.

정유석 일양약품 대표는 오는 30일 부친인 정도언 전 회장으로부터 보통주 170만주(지분 8.70%)를 증여받아 최대주주에 오른다. 오너 3세 중심의 경영권 승계가 사실상 마무리되는 셈이다.

최근 국내 제약주가 크게 하락하는 가운데 오너 일가의 지분 증여가 잇따르고 있다. 모두 법적으로 문제 없는 거래지만, 주가가 낮을수록 증여세 부담도 줄어드는 현행 제도가 기업가치보다 승계비용 절감을 우선하는 유인이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손민균

◇분식회계 사태로 주가 급락…증여세 줄었는데 주주환원 '아직'

일양약품(007570)은 지난해 금융당국으로부터 회계처리기준 위반 제재를 받았다.

2014년부터 약 10년간 중국 합자법인 두 곳을 연결 종속기업으로 분류해 순이익과 자기자본 등을 과대 계상한 사실이 적발됐고, 증권선물위원회는 과징금 부과와 감사인 지정 3년, 대표이사 해임권고 및 직무정지 등을 의결했다.

이후 한국거래소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에 착수하면서 약 6개월간 주식 거래를 정지했다. 올해 3월 거래가 재개됐지만 주가는 회복되지 못했다. 28일 기준 일양약품 주가는 8270원으로, 거래정지 직전 종가 1만4600원 대비 43% 넘게 하락한 상태다.

증여는 바로 이 시점에 이뤄졌다. 공시일인 지난 6월 30일 종가(7870원)를 기준으로 하면 이번 증여 규모는 약 134억원이다. 최고세율 50%를 단순 적용하면 증여세는 약 67억원으로 추산된다.

주가가 급락하기 전 수준이었다면 세 부담은 120억~130억원 안팎에 달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단순 계산으로 약 60억원의 세 부담이 줄어든 셈이다.

이 수치는 회사의 주주환원 규모와 비교된다. 일양약품의 지난해 배당 총액은 약 29억원이다. 2023년과 2024년 모두 30억원에 미치지 못했다.

회사는 현재 자사주 활용 방안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일양약품 관계자는 "자기주식은 관련 법령에 따른 유예기간인 오는 9월까지 소각하거나, 주주총회 승인을 거쳐 계속 보유 또는 처분하는 방안 등이 가능하지만 현재까지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또 중국 사업 확대가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투자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통화일양보건품유한공사 청산 과정에서 확보한 약 254억원을 중국 법인(일양약품 길림유한공사)에 대한 투자에 우선 배정할 방침이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선택…세무업계 "주가 낮을수록 유리"

비슷한 사례는 최근 제약업계에서 잇따르고 있다.

명인제약(317450) 창업주 이행명 회장은 지난 5월 두 딸에게 총 96만주의 지분을 증여했다. 당시 주가는 상장 직후 고점 대비 절반 이하로 떨어진 상태였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 창업주 강덕영 회장도 다음 달 장남 강원호 대표에게 80만주를 추가 증여할 계획이다. 증여가 마무리되면 강덕영 회장은 기존 15.61%에서 10.58%로 지분율이 낮아지고, 강원호 대표는 13.09%에서 18.12%로 지분율이 높아지며 최대주주가 된다.

삼진제약(005500) 조의환 전 회장 역시 최근 오너 2세에게 지분을 증여하는 계획을 공시했다. 조규석 대표와 조규형 부사장에게 각각 13만5000주씩이다. 이번 증여가 완료되면 조의환 전 회장의 지분율은 기존 6.30%에서 4.28%로 낮아지는 반면 조규석 대표와 조규형 부사장의 지분율은 각각 3.19%에서 4.20%로 확대된다.

세무업계에서는 현행 상속·증여세법상 주가 하락기에 상장주식을 증여할 경우 절세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최근 제약업종 주가가 많이 하락했고, 오너 승계 시기와 맞물리면서 증여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한 세무 전문가는 "상장주식은 증여일 전후 2개월씩 총 4개월간의 평균 주가로 평가하기 때문에 주가가 낮을수록 증여세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라며 "다만 일반적으로는 비상장주식에서 이런 절세 전략이 많이 활용되고, 상장주식 증여 사례는 상대적으로 드문 편"이라고 설명했다.

◇'주가 누르기' 막는다…국회·정부, 상증세법 손질 착수

국회도 이 구조적 공백을 인식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핵심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8배 미만인 상장주식에 대해 시가 대신 비상장주식 평가 방식(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함께 반영)을 적용해 과세 하한을 설정하는 것이다. 주가를 아무리 낮춰도 회사의 실질 자산가치 기준으로 세금이 부과되면, 절세 효과가 사라진다는 논리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 법안에 힘을 실었다. 지난 15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어떻게든 협조를 얻어서 속도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반론도 있다. PBR 0.8배를 일률 기준으로 삼을 경우 업종별 특성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목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 대표는 최근 토론회에서 "PBR이 0.8배가 되면 0.81배에 맞추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이에 정부는 PBR을 단일 기준으로 적용하는 방안 대신, 복수의 지표를 활용하는 방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적용 대상은 이달 말 세제개편안 발표로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