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의 해외 진출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신약 후보물질을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수출하거나 제네릭(복제약)을 앞세워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최근에는 글로벌 제약사가 보유한 오리지널 의약품 사업을 직접 인수해 판매와 허가, 생산까지 사업 전반을 운영하는 사례가 등장했다.

그 첫 사례가 보령(003850)이다. 보령은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의 항암제 '탁소텔' 글로벌 사업을 인수하고 올해 6월 관련 절차를 마무리했다. 이에 따라 한국을 비롯해 중국, 독일, 스페인 등 19개 국가·지역에서 탁소텔의 판권과 유통권, 허가권, 생산권, 상표권 등 사업 전반을 확보했다.

보령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탁소텔 관련 매출이 실적에 반영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탁소텔은 지난해 전 세계에서 약 7000만유로(약 1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오리지널 항암제다.

보령 예산캠퍼스의 항암제 생산시설./보령

탁소텔(성분명 도세탁셀)은 유방암과 비소세포폐암, 전립선암, 위암, 두경부암 등 다양한 고형암 치료에 사용되는 세포독성항암제다. 도세탁셀은 세계보건기구(WHO) 필수의약품 목록에 등재된 성분으로, 면역항암제와 표적항암제가 확산된 이후에도 병용요법의 핵심 약제로 활용되고 있다.

다만 세포독성항암제는 제조 난도가 높다. 생산 과정에 고도의 안전 설비와 전문 인력이 필요하지만 수익성은 상대적으로 낮아 일부 글로벌 제약사가 생산을 축소하면서 공급 불안이 반복되고 있다.

보령은 이런 시장 변화에 주목했다. 수요는 꾸준하지만 공급 능력을 갖춘 기업은 줄어드는 만큼, 자체 생산 역량을 바탕으로 글로벌 공급망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같은 전략의 기반에는 오리지널 의약품 생산 내재화 경험이 있다. 보령은 앞서 글로벌 제약사의 항암제 '젬자'와 '알림타', 정신질환 치료제 '자이프렉사'의 국내 사업을 인수한 뒤 생산기술 이전과 자체 생산 체계 구축을 추진해 왔다.

특히 알림타는 생산기술을 자체 시설로 이전한 뒤 제형을 개선했고, 최근에는 대만 로터스에 공급하며 해외 사업으로 확장했다. 보령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탁소텔 역시 단계적으로 생산을 내재화할 계획이다.

현재는 탁소텔 생산기술 이전(Tech Transfer)을 진행 중이다. 국가별 인허가 일정에 따라 공급 시점은 달라질 수 있지만, 기존 오리지널 의약품의 생산 전환 경험을 고려하면 약 2년 안팎이 소요될 것으로 회사는 보고 있다.

생산 거점은 유럽연합(EU) 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EU-GMP) 인증을 받은 예산캠퍼스다. 보령은 이곳을 탁소텔의 글로벌 생산·공급 거점으로 육성하는 한편, 항암제 생산 역량을 기반으로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도 확대할 방침이다.

이번 인수는 단일 품목 확보에 그치지 않는다. 보령은 탁소텔을 시작으로 오리지널 항암제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CDMO와 자체 신약 '카나브 패밀리'의 해외 사업을 함께 키워 글로벌 사업 기반을 넓힌다는 전략이다. 회사는 2030년까지 글로벌 제품 판매와 CDMO 사업을 통해 연간 수출 매출 2000억원 이상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