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LB(028300)가 20년 넘게 개발한 간암 신약 '리보세라닙'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 재도전을 위한 첫 관문을 넘었다. 중국 파트너사 항서제약의 리보세라닙 원료 생산시설이 최근 FDA 점검에서 '자발적 개선 권고(VAI)' 판정을 받으면서다.

VAI는 일부 개선이 필요하지만 즉각적인 행정 제재는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할 때 부여되는 등급이다. 세 번째 허가 불발의 직접적인 원인이 일단 해소됐다는 의미다.

그러나 허가 절차는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섰다. 완제 생산시설 실사 결과와 재신청 전략, 자금 조달, 생산기지 다변화, 늦어진 사이 달라진 미국 간암 치료제 시장까지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진양곤 HLB그룹 이사회 의장./HLB그룹

시장의 반응도 여전히 냉랭하다. HLB 주가는 세 번째 최종보완요구서(CRL·FDA가 승인을 보류하며 보완을 요구하는 공문) 수령 소식이 전해지기 전날인 지난 9일 종가 5만2200원에서 22일 2만8300원까지 약 46% 하락했다.

진양곤 HLB그룹 이사회 의장은 계열사 주식을 잇달아 매입하며 주가 방어에 나서고 있다. 진 회장은 지난 20일 HLB테라퓨틱스(115450) 주식 3만4081주를 매수한 데 이어 20~21일에는 HLB제넥스(187420) 5만428주, HLB파나진(046210) 5만8000주를 장내에서 사들였다. 올해 들어 계열사 주식만 110만주 이상을 50차례에 걸쳐 매입했다.

원료는 해소, 완제는 아직…허가 변수 '여전'

리보세라닙 허가신청서(NDA)에는 항서제약의 원료 생산시설인 '진차오 시설'과 완제 생산시설인 '동진 시설'이 포함돼 있다. FDA는 허가 심사 과정에서 신청서에 포함된 제조시설의 제조·품질관리 기준(cGMP) 충족 여부도 함께 점검한다.

세 번째 CRL은 진차오 시설에서 확인된 cGMP 관련 지적사항이 원인이 됐다. 회사 측은 "미국 연방규정에 따르면 CRL에는 FDA가 확인한 모든 결함을 명시해야 한다"며 "이번 CRL에는 진차오 시설 외 다른 결함은 적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변수는 남아 있다. 동진 시설이 최근 FDA의 실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통상적인 절차를 고려할 때 최종 결과가 10월 전후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HLB는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이번 CRL에는 동진 시설과 관련한 결함이나 보완 요구는 포함되지 않았다"며 이번 실사가 허가 절차와는 별개의 일반 cGMP 점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완제의약품은 원료의약품보다 공정이 단순해 지적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오는 편"이라며 "앞서 두 시설에 발부된 지적사항 통지서(Form 483·FDA가 점검에서 문제를 발견했을 때 해당 업체에 보내는 문서)에도 일부 공통점이 확인된 만큼 동진 시설 역시 어렵지 않게 보완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진 시설이 VAI 이상 판정을 받으면 HLB는 재신청 절차에 속도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중대한 위반을 의미하는 '공식 조치 필요(OAI)' 판정을 받을 경우 추가 보완과 재실사가 불가피해지면서 허가 일정도 다시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항서제약은 오는 24일까지 FDA에 시정·예방조치(CAPA) 계획을 제출할 예정이다.

◇재신청 시점이 관건…허가보다 먼저 다가온 자금 압박

이 때문에 HLB는 재신청 시점을 두고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진차오 시설의 VAI 결과를 반영해 먼저 재신청할지, 동진 시설 실사 결과까지 확인한 뒤 한 번에 제출할지가 관건이다.

진차오 시설 결과만 반영해 재신청하면 허가 심사 착수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 반면 동진 시설 실사 결과까지 확보한 뒤 재신청하면 일정은 다소 늦어질 수 있지만, 제조시설 관련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는 HLB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FDA와 재신청 범위 및 절차를 협의해야 하고, 제조시설을 보유한 항서제약과도 일정 조율이 필요하다. 회사 측은 "현재 FDA 및 항서제약과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적자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허가 지연은 회사의 재무 부담을 키울 수 있다. HLB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839억원, 영업손실 1069억원, 당기순손실 2415억원을 기록했다. 2024년에도 영업손실 1185억원을 냈다.

생산 거점 다변화를 위해 HLB제약을 통해 추진 중이던 자금 조달 계획에도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HLB제약 주가는 지난 9일 종가 1만2240원에서 22일 8000원까지 약 35% 하락했다. 현재 주가 수준이 유지될 경우 실제 조달 규모도 당초 계획(1200억원)보다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024년 첫 번째 CRL 당시 HLB생명과학이 유상증자를 통해 당초 계획의 절반 수준만 조달했던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HLB제약 로고./HLB제약

◇세 번의 CRL이 남긴 숙제…"제조 리스크 줄이려면 투자해야"

HLB는 조달 자금 중 550억원을 향남 신공장 건설에 투입할 계획이다. 회사는 리보세라닙이 중국에서 10년 이상 판매되며 항서제약의 제조 공정이 충분히 검증된 만큼 미국 시장 초기에는 기존 생산시설을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향후 국내와 아시아 시장으로 판매 지역이 확대되면 생산 거점을 분산해 공급 안정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전략은 HLB가 받은 세 번의 CRL 모두 항서제약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며 필요성이 더 커졌다.

특히 이번 실사는 항서제약의 다른 의약품을 대상으로 한 일반 cGMP 실사였던 만큼 HLB는 실사 진행과 Form483 발부 사실도 사전에 공유받지 못했다. 회사는 이번 일을 계기로 리보세라닙과 직접 관련이 없는 규제기관 실사까지 정보 공유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생산 거점 다변화 전략이 계획대로 추진되려면 충분한 투자 재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회사는 "현재 추가 자금조달 계획은 없다"며 "유상증자도 예정된 일정대로 진행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시장도, 후속 파이프라인도 '시간과의 싸움'

리보세라닙의 미국 시장 진입이 늦어지는 사이 간암 치료제 시장의 경쟁 구도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리보세라닙·캄렐리주맙' 병용요법은 간암 1차 치료제로 지난 2023년 글로벌 임상 3상에서 전체생존기간(OS) 개선 효과를 입증했다. 그러나 허가가 세 차례 무산되는 동안 로슈의 '티쎈트릭·아바스틴' 병용요법과 아스트라제네카의 '임핀지·임주도' 병용요법 등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후발주자인 HLB 입장에서는 시장 진입이 늦어질수록 기존 치료제와 경쟁해야 하는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후속 파이프라인 운영도 변수다. HLB는 지난해 12월 미국 릴레이 테라퓨틱스로부터 담관암 치료제 '리라푸그라티닙'의 글로벌 개발·상용화 권리를 도입했다. 최대 4억2500만달러(약 6300억원) 규모의 계약으로, FDA의 허가 여부는 오는 9월 결정될 예정이다.

회사는 리보세라닙 재신청과 리라푸그라티닙 허가 심사가 서로 다른 규제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만큼 대응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리보세라닙 허가가 장기화될 경우 두 후기 개발 단계 파이프라인의 개발과 상업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만큼 재무적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