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중복상장 규제 강화가 제약·바이오 업계의 지배구조 개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회사 기업공개(IPO)나 합병을 추진하던 기업들이 기존 계획을 재검토하거나 대안을 모색하는 모습이다. 특히 휴온스(243070)그룹과 알테오젠(196170)을 중심으로 중복상장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업계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23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자회사를 별도 상장하기보다 모회사와 합병하거나, 합병 과정에서 주주 보호 방안을 강화하는 등 금융당국의 중복상장 규제 기조에 맞춰 지배구조 개편 전략을 재정비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지난 6일 발표한 중복상장 가이드라인에는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가 이행해야 할 주주 보호 의무와 일반 상장보다 강화된 특례 심사 기준이 담겼다. 핵심은 모회사 일반주주의 권익 보호다.
금융당국은 자회사 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다만 자회사 상장의 필요성과 주주가치 보호 방안을 엄격히 심사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례로는 휴온스(243070)그룹이 꼽힌다. 휴온스그룹은 지주사 휴온스글로벌(084110)의 자회사인 휴온스랩을 휴온스에 흡수합병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우회상장에 해당해 모회사인 휴온스글로벌 주주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휴온스랩은 정맥주사(IV) 제형 의약품을 피하주사(SC) 제형으로 전환하는 '하이디퓨즈(HyDIFFUZE)'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연구개발 기업이다. 그룹은 해당 기술을 휴온스로 이전해 사업화를 본격화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휴온스글로벌 소액주주연대는 휴온스랩 가치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고 사실상 우회상장 성격의 거래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휴온스랩이 휴온스 자회사로 편입되면 휴온스글로벌이 보유한 핵심 자산 가치가 휴온스로 이전되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회사는 당초 이달 초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합병안을 의결할 예정이었지만, 중복상장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업계에서는 한국거래소가 관련 절차에 속도 조절을 주문하면서 회사가 일정을 연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휴온스그룹은 계획대로 임시주총을 열 계획이다. 관계자는 이날 "현재 임시주총 일정을 검토 중이며, 조만간 공시를 통해 안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합병이 자회사 상장은 아니지만 우회상장에 해당하는 만큼, 거래소가 주주 보호 절차의 적정성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임시주주총회에서는 합병의 필요성뿐 아니라 회사가 제시한 현물배당 등 주주환원 방안이 충분한지 여부도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알테오젠도 강화된 중복상장 규제의 영향을 받는 사례로 거론된다. 현재 알테오젠은 자회사 알테오젠바이오로직스 지분 62.89%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종속기업인 만큼 향후 IPO를 추진할 경우 금융당국의 강화된 중복상장 심사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알테오젠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개발을 담당하는 자회사다. 지난해 9월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아이럭스비'의 유럽 판매허가를 획득하며 상업화를 시작했고, 국내에서도 품목허가를 받아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글로벌 임상과 허가, 상업화를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사업 구조를 갖춘 만큼 별도 상장을 통한 기업가치 평가와 후속 개발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었다.
다만 중복상장 규제가 강화되면서 업계에서는 독자 IPO보다 합병 등 다른 지배구조 개편 방안이 거론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알테오젠은 현재 합병 등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결정하거나 검토 중인 사항은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업계에서는 정부의 중복상장 규제 강화 기조에 맞춰 일찍이 자회사를 모회사로 편입하는 움직임이 잇따랐다. 일동제약(249420)이 신약개발 자회사 유노비아를, HLB(028300)가 HLB사이언스를, 휴온스가 휴온스생명과학을 각각 흡수합병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 같은 지배구조 개편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자회사 IPO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주주 보호 방안이 거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사업적 필요성과 성장성만 입증하면 자회사 상장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일반주주가 어떤 방식으로 보호되는지가 심사의 핵심이 될 것"이라며 "합병이든 IPO든 기업들이 주주환원이나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함께 제시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