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Chat GPT

국내 증권 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가운데 바이오·의료기기 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바이오·헬스 업종 전반의 주가 부진으로 기존 주주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는 데다, 강화된 상장폐지 제도 도입으로 코스닥 시장 퇴출 바람까지 불고 있어서다.

퇴출 압박이 커진 일부 기업들은 주식 병합과 전환사채(CB) 리픽싱(전환 가액 조정), 유상증자 등 잇단 생존 전략을 내놓고 있다.

상장 유지와 자금 조달을 위한 조치인데,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 희석과 오버행(overhang, 잠재적 매도 물량) 확대 등의 부작용 우려도 나온다. 결국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연구개발(R&D) 데이터 입증·실적 성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 바이오 '동전주' 탈출 안간힘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날까지 '주식병합 결정' 공시를 낸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는 총 257곳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11곳) 대비 약 23배 급증했다. 주식병합은 여러 주식을 하나로 합쳐 발행주식 수를 줄이고 주당 가격을 높이는 자본 구조 조정 방식이다.

특히 최근 제약·바이오, 헬스케어 기업들의 주식병합 결정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조아제약(034940)경남제약(053950), 케이엠제약(225430), 화일약품(061250)에 이어 샤페론(378800)시지메드텍(056090)이 5대1 주식병합을 결정했다. 압타머사이언스(291650)도 2대1 주식병합을 추진 중이다. 시장에선 이달부터 한층 강화된 상장폐지 제도가 시행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시가총액 200억원 미만인 상태가 30거래일 연속 지속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관리종목 지정 이후 90거래일 동안 연속 45거래일 이상 시가총액 기준을 넘지 못하면 즉시 상장 폐지된다. 또 종가 기준 1000원 미만 상태가 30거래일 연속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이후 90거래일 동안 45거래일 이상 1000원을 회복하지 못하면 상장폐지 심사 대상에 오른다.

즉, 주가가 1000원을 밑도는 소위 '동전주'에 대한 퇴출 압박이 커지자, 동전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 중 하나로 '주식병합' 카드를 꺼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식병합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명목상 주가만 높일 뿐 기업가치 자체를 바꾸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거래 재개 후 주가가 다시 하락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금융투자 및 바이오업계에선 코스닥 투자심리 위축과 주가 부진이 이어질 경우 관리종목 지정과 상장폐지 위험에 직면하는 바이오주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코스피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된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코스닥 지수와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뉴스1

◇주가 하락에 줄줄이 전환가액 조정

주가 하락으로 전환가액 조정(CB 리픽싱)에 나선 사례도 늘고 있다. 이는 바이오 기업들의 자금조달 환경이 악화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CB 리픽싱은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하락하면 계약에 따라 전환가액을 낮춰 전환권의 가치를 유지하는 장치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조건으로, 기업은 투자 유치를 위해 이 같은 조항을 두는 경우가 많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한달 간(6월 15일~7월 15일) 시가 하락(변동)에 따른 전환가액 조정 공시를 낸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은 총 14곳으로 집계됐다.

신테카바이오(226330), 메디포스트(078160), 메타바이오메드(059210), 알엔티엑스(123010), 이엔셀(456070), 프로젠, HLB펩(196300), 네오이뮨텍(950220), 아리바이오LAB, 진원생명과학(011000), 이수앱지스(086890), 프레스티지바이오로직스(334970), 라메디텍(462510), 퓨쳐켐(220100) 등이다.

메디포스트와 이엔셀은 최근 계약상 최저 조정한도까지 전환가액을 낮췄다.

메디포스트는 500억원 규모 CB의 전환가액을 1만7981원에서 1만2587원으로 낮추면서 전환가능 주식 수가 약 43% 증가했다. 이엔셀도 225억원 규모 CB의 전환가액을 1만4295원에서 1만1436원으로 조정해 전환가능 주식 수가 약 25% 늘었다. 신테카바이오도 시가 하락에 따라 전환가액을 3720원에서 3473원으로 조정하면서 전환가능 주식 수가 약 7% 증가했다.

하지만 우려도 있다. 전환가액이 낮아지면 같은 금액으로 더 많은 주식을 받을 수 있어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가 희석된다. 이에 향후 전환청구권 행사로 주식이 시장에 대거 풀릴 경우 주가에 하방 압력을 가하는 오버행 가능성도 잠재돼 있다. 즉, 주가 하락에 따른 리픽싱이 다시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될 수 있는 셈이다.

7월 1일 서울 여의도 콘레드호텔에서 코스닥 시장 30주년 기념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왼쪽에서 네 번째), 이억원 금융위원장(왼쪽에서 다섯 번째)이 참석해 기념사를 진행했다. /권우석 기자

◇ 고육책 부메랑 우려…코스닥 승강제 유예 호소도

최근엔 금리 정책 불확실성과 함께 투자 유치 환경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리 인상 시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투자 심리가 위축돼 주가가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은 주가가 낮아질수록 메자닌 발행 조건이 불리해지고, 기존 투자자들의 지분 희석 우려까지 커지면서 신규 투자 유치도 어려워질 수 있다. 업계 일각에선 중동 전쟁 장기화와 인플레이션 우려 등을 고려해 코스닥 승강제 도입 시기를 늦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바이오 회사 대표는 "바이오 기업들의 소외가 심화하는 가운데 상장폐지 요건 강화와 코스닥 승강제 등 새로운 규제까지 더해져 자금조달 부담이 한층 커지고 있다"며 "금융 당국이 코스닥 승강제 도입 시기를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투자 심리가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제도 환경까지 팍팍해지면 중소 기업들의 어려움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선 국내 제약·바이오 업종의 '옥석가리기'가 심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잇따른다. 데이터와 실적 입증에 따라 개별 기업의 주가 향방이 엇갈릴 수 있다는 의미다.

정재원 iM증권 연구원은 "제약사 중심인 코스피는 실적 기반의 성장 스토리를 증명해 주가가 상승하는 논리가 적용되는 한편, 바이오텍 위주의 코스닥은 글로벌 제약사와의 기술 이전, 공동 개발 파트너십 체결 등 기업이 보유한 파이프라인의 잠재 가치와 네러티브가 판단의 기준점"이라고 짚었다.

그는 "올해 상반기 반도체 기업로 투자 심리가 쏠리면서, 코스피 제약사들의 실적이 성장했음에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코스닥의 경우 개별 기업에서 주가의 상승 네러티브를 이끌던 주요 논리에서 이슈가 발생하면서 시장 우려가 가중되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정 연구원은 "결국 데이터가 입증된 제약·바이오 기업들에 대해서 시장은 반응을 하고 있다"며 데이터 입증과 실적 성장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