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회사의 연구개발(R&D) 행사에는 특정 매체만 오시기로 돼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참석이 어려우시니 양해 바랍니다."
최근 한 바이오 기업의 행사 참석을 위해 담당자에게 연락했다가 들은 답변이다. 행사 규모가 작아 참석 인원을 제한할 수는 있다. 하지만 특정 언론사만 초청하고 다른 매체의 취재를 제한하는 방식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 아쉬웠던 것은 이 기업이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국내 바이오 업계의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미국 일라이 릴리와 기술 협력 계약을 체결했고, 세계 1위 뷰티기업 로레알과도 공동 연구와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기술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정작 시장과 소통하는 문은 스스로 좁히고 있었다.
특히 이 기업이 개발하는 리보핵산(RNA) 치료제는 일반 투자자에게 아직 생소한 분야다. 기존 합성의약품이나 항체 치료제가 접근하기 어려웠던 표적을 공략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로 평가받지만, 기술 자체가 복잡하다. 기업이 충분히 설명하지 않으면 시장은 그 가치와 한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바이오 산업이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기술만큼 중요한 것은 시장의 신뢰이고, 신뢰는 결국 소통에서 시작된다.
바이오는 대표적인 정보 비대칭 산업이다. 신약 개발에는 10년 이상이 걸리고, 대부분의 투자자는 R&D 과정을 직접 검증할 수 없다. 기업이 어떤 데이터를 확보했는지, 임상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기술수출 계약의 실질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는 기업의 설명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래서 바이오 산업에서는 연구개발 못지않게 정확하고 투명한 정보 공개가 중요하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기술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데 소통의 문은 오히려 더 좁아지고 있다. 특정 언론만 정보를 먼저 접하고 나머지는 배제되는 방식은 시장 전체의 이해를 넓히기보다 정보 비대칭을 더욱 키운다. 결국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일반 투자자와 대중이다.
더욱이 지금 바이오 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신뢰 회복이 절실한 시기다. 업계에서는 아직도 '삼천당제약(000250) 쇼크'라는 말을 자주 한다. 주가가 부진한 이유를 묻기만 하면 "이게 다 삼천당 영향이죠"라는 답을 쉽게 듣는다. 과장된 실적 전망과 확인되지 않은 개발 소식이 투자자 신뢰를 크게 훼손했고, 그 후유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올해 상반기에만 13조원 규모의 기술수출을 성사시키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예전 같지 않았다. 한미약품(128940)의 대형 기술수출, 오스코텍(039200)의 미국 바이오텍 계약, 알테오젠(196170)의 특허 분쟁 승소도 과거처럼 주가를 크게 끌어올리지는 못했다.
물론 반도체로의 자금 쏠림과 금리 부담, 중동 전쟁 등 외부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기업의 발표 자체보다 데이터와 근거를 더 중시하게 된 변화 역시 시장이 냉정해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이제 투자자들은 '기술수출'이라는 단어보다 계약금 규모와 마일스톤의 실현 가능성, 임상 단계, 상업화 가능성을 먼저 살핀다. 시장이 성숙해진 만큼 기업도 달라져야 한다.
최근 셀트리온(068270), 알테오젠, 리가켐바이오(141080), 에이비엘바이오(298380), 펩트론(087010) 등 주요 기업이 주주서한과 공지를 통해 주가 방어를 위해 R&D 진행 상황을 직접 설명하며 주주·투자자들과 적극 소통에 나선 것도 변화의 흐름이다.
이처럼 기업들도 이제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기술력이 뛰어난 것만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장밋빛 전망보다 중요한 것은 검증 가능한 데이터와 투명한 설명이다. 무엇보다 정보를 일부에게만 선택적으로 공개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시장 전체와 공정하게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바이오 붐'은 한 건의 기술수출로 결코 오지 않는다. 시장이 원하는 것은 '깜짝 뉴스'가 아니라 반복되는 성과와 흔들리지 않는 신뢰다. 기술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장과 투자자에게도 같은 수준의 신뢰를 얻을 때 비로소 한국 바이오의 경쟁력은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