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바이오 연구의 융합을 형상화한 이미지. 질병으로 손상된 부위를 건강한 세포, 조직으로 대체하는 재생의료에도 AI와 양자컴퓨터가 적용되고 있다./ PopTika/Shutterstock

그동안 의료폐기물로 전량 소각되던 인체유래 지방이 의약품과 의료기기 개발에 활용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국내 재생의료 산업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바이오업계와 의료계에서는 재생의료 핵심 원료 확보 기반이 확대되면서 차세대 스킨부스터(피부에 유효 성분을 주사해 피부 탄력과 보습 등을 개선하는 시술 또는 제품)와 조직재생 제품 개발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13일 국회와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달 국회는 인체유래 지방의 의료 목적 재활용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기존에는 태반만 의료목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인체유래 지방도 의약품과 의료기기 연구·개발 등에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개정안은 공포 후 1년 뒤 시행된다.

이번 법 개정은 단순히 의료폐기물 처리 방식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체유래 지방에는 ECM과 콜라겐, 성장인자, 지방유래 줄기세포(ADSC) 등 조직 재생에 활용되는 다양한 생체 성분이 포함돼 있어 재생의료와 조직공학 분야의 핵심 원료로 꼽힌다.

그동안 의료폐기물로 분류돼 대부분 소각됐던 지방조직이 향후에는 바이오 소재로 활용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특히 업계는 이번 법 개정으로 재생의료 산업의 원료 지형이 바뀔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 ECM 기반 제품은 주로 인체 유래 무세포 동종진피(hADM)를 활용해 개발돼 왔다. 향후에는 지방 유래 ECM도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되면서 차세대 재생의료 소재 개발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명 할리우드 스타인 킴 카다시안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 2025년 8월 서울을 방문해 피부과 시술을 받는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인스타그램

업계는 이번 법 개정이 빠르게 성장하는 스킨부스터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Grand View Research)에 따르면 글로벌 스킨부스터 시장은 올해 17억달러(약 2조6000억원)에서 연평균 13.1% 성장해 2033년에는 41억달러(약 6조2000억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 기관은 특히 한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국내 기업들도 ECM 기반 차세대 제품 개발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엘앤씨바이오(290650)의 '리투오'가 시장을 선점한 데 이어 한스바이오메드(042520)는 인체 유래 무세포 동종진피(hADM) 기반 스킨부스터 '셀르디엠'을 출시했다. 올해 한스바이오메드와 국내 유통·판매 계약을 맺은 휴젤(145020)은 최근 조직은행 설립 허가를 받은 뒤 셀르디엠 판매를 시작하며 유통망 확대에 나섰다.

제테마(216080)도 hADM 기반 스킨부스터 '아디떼'를 선보이며 재생의학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엘앤씨바이오는 지방 유래 ECM 기술도 선제적으로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회사는 약 8년 전부터 지방조직 활용 기술을 연구해 왔으며, 인체유래 지방 ECM 기반 재생소재 '메가아디포ECM'을 개발하고 관련 국내 특허를 확보했으며 미국 특허도 출원한 상태라고 밝혔다.

현재 미국에서는 지방 유래 ECM 기반 재생 플랫폼이 연부조직 재건과 볼륨 결손 치료 등에 활용되고 있다. 지방조직 유래 ECM 기반 제품인 레누바(Renuva)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진피 유래 ECM 중심이던 시장이 지방 유래 ECM으로 확대될 경우 재생의료와 에스테틱 산업 전반의 성장 기반이 넓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이번 개정안은 인체유래 지방의 의료목적 재활용을 허용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세부적인 재활용 대상과 용도, 방법 등은 대통령령에서 정하도록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조선비즈 질의에 "미국 등 주요국의 인체조직 안전관리 사례를 조사해 관리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의약품과 의료기기, 인체조직이 혼합된 제품은 주된 작용기전을 고려해 약사법 또는 의료기기법 적용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의료계에서는 현재 스킨부스터가 의약품과 의료기기, 화장품, 인체조직 등 여러 제도 아래 분산 관리되고 있는 만큼 보다 명확한 허가 체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범준 중앙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글로벌 기업들은 차세대 원료 확보와 제도 정비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는 반면 국내 기업들은 명확한 허가 체계와 전용 가이드라인이 없어 투자와 개발 방향을 설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재조합 콜라겐과 ECM 등 차세대 바이오 원료에 대한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 지원과 생산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며 "스킨부스터에 특화된 심사 체계와 임상시험 가이드라인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