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바이오로직스가 인천 송도 바이오 생산시설 건설을 위해 또다시 유상증자에 나섰다. 출범 이후 일곱 번째 유상증자다. 누적 투자금만 1조5000억원에 육박한다. 회사는 생산능력을 확대해 연내 대형 글로벌 제약사(빅파마) 수주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지만, 기존 미국 공장 가동률마저 급락한 상황에서 추가 생산능력이 실제 수주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송도 바이오캠퍼스 1공장 건설 자금 마련을 위해 2553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한다. 송도 1공장은 착공 2년 만인 지난달 22일 건축 승인을 받았으며, 하반기 시운전에 들어가 내년 상업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송도 1공장은 12만리터(L) 규모의 항체의약품 생산시설이다. 2023년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으로부터 인수한 미국 시러큐스 공장(4만L)까지 합치면 롯데바이오의 생산능력은 총 16만L로 확대된다.

그래픽=정서희

◇4년간 1조5000억원 투입…빅파마 수주는 아직

이번 유상증자는 출범 이후 일곱 번째다. 롯데지주(004990)가 2022년 6월 130억원을 투자해 설립한 이후 롯데바이오는 롯데지주·롯데홀딩스·호텔롯데를 대상으로 ▲2022년 12월 2106억원 ▲2023년 3월 2125억원 ▲2024년 6월 1501억원 ▲2025년 3월 2100억원 ▲2025년 12월 2700억원 ▲2026년 3월 1501억원에 이어 이번까지 총 7차례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이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총 1조4716억원에 달한다.

롯데그룹은 유상증자 외에도 채무보증 성격의 자금 지원을 이어왔다. 롯데지주는 2024년 11월 롯데바이오로직스의 9000억원 규모 대출에 대해 자금보충약정을 체결했다. 대출 원금 9000억원은 물론 이자와 수수료까지 전액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투자 규모에 비해 수주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회사가 올해 1분기 말 기준 공시한 누적 수주 규모는 5억6470만달러(약 8568억원)다. 업계에서는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2022년 BMS로부터 시러큐스 공장을 인수하면서 함께 승계한 기존 생산 계약인 것으로 보고 있다.

BMS 외 신규 고객 확보도 아직 제한적이다. 올해 일본 라쿠텐메디칼, 미국 항암 전문 바이오기업, 영국 오티모파마 등과 계약을 체결했지만 대부분 임상용 의약품 생산이나 공정개발 단계다. 아직 대형 상업 생산 계약은 확보하지 못했다.

기존 물량이 감소하면서 미국 시러큐스 공장 가동률도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가동률은 2024년 81%에서 지난해 74%로 낮아졌고, 올해 1분기에는 14%까지 급감했다. 롯데지주(004990)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생산능력은 22배치(Batch·바이오의약품을 1회분 생산하는 단위)였지만 실제 생산은 3배치에 그쳤다.

회사 측은 최근 신규 고객 요구에 맞춰 시러큐스 공장의 시설 성능 개선(스펙업) 공사를 진행하면서 일시적으로 가동률이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박제임스 대표는 지난달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바이오USA'에 참석해 "미국 기존 BMS 생산 물량은 유지되고 있으며, 연내 1~2건의 대형 수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동빈 롯데 회장과 신유열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대표(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박제임스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대표가 지난 3일 롯데바이오로직스 송도 캠퍼스 1공장을 찾아 점검하고 있다./연합뉴스

수주 지연에 적자 확대…생산능력보다 중요한 건 '대형 수주'

수주 확보가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실적 부담도 커지고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2024년 적자 전환한 데 이어 지난해 매출이 감소했고 영업손실은 1326억원, 당기순손실은 1414억원으로 적자 폭이 확대됐다. 올해 1분기 적자는 562억원으로 전년 동기(208억원)보다 약 3배로 확대됐다.

감가상각 부담도 커지고 있다. 올해 1분기 의약품 제조 부문 감가상각비는 11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4억원)보다 35.7% 증가했다. 송도 1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감가상각비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송도 공장 운영에 따른 고정비까지 더해질 경우 당분간 손실 폭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결국 회사는 2030년 매출 목표도 기존 1조5000억원에서 '1조원 이상'으로 하향 조정했다. 송도 2·3공장 건설 계획도 자금 조달 부담으로 속도 조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업계는 롯데바이오가 대형 수주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생산능력 확대보다 차별화된 기술력과 서비스 역량을 입증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롯데바이오는 미국 시러큐스 공장과 한국 송도 공장을 연계하는 '듀얼 사이트(Dual Site)'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시러큐스 공장은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 등에서 62건 이상의 규제기관 승인 경험을 갖췄고, 송도 공장은 대량 생산을 맡아 시너지를 내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위탁개발생산(CDMO) 경쟁사들도 이미 비슷한 전략을 갖췄다. 셀트리온(068270)은 지난해 12월 미국 일라이 릴리로부터 뉴저지 브랜치버그 생산시설(6만6000L)을 확보했고,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도 지난 4월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으로부터 미국 록빌 공장(6만L)을 인수했다.

생산 규모 역시 경쟁사보다 작다. 송도 1공장이 완공돼도 롯데바이오의 생산능력은 16만L로 삼성바이오로직스(84만5000L), 셀트리온(25만L)에 못 미친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바이오의 '듀얼 사이트' 전략만으로는 당장 경쟁사들과 차별화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결국 독보적인 기술력과 서비스 경쟁력을 입증할 수 있으냐가 빅파마 대형 수주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제임스 대표와 함께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대표를 맡고 있는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부사장)은 올해 글로벌 최대 바이오 행사인 바이오USA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신 부사장은 그동안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JPM)와 바이오USA 등 주요 바이오 행사에서 글로벌 고객사와 직접 만나 수주 지원에 나서 왔다. 올해 바이오USA 기간에는 롯데웰푸드와 일본 롯데제과의 아시아 사업 통합을 위한 싱가포르 합작법인 출범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