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가켐바이오(141080)가 사업개발 전략의 무게중심을 조기 기술이전에서 후기 임상 기반 '빅딜'로 옮긴다. 자체 항체 설계 역량을 확보해 기술이전 수익성을 높이고, 플랫폼과 파이프라인을 결합한 '패키지 딜'과 후기 임상 직접 개발을 통해 기업가치를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약 1조원 규모의 재원을 바탕으로 차세대 항체약물접합체(ADC) 플랫폼 고도화에 속도를 낸다. 항암제를 넘어 신경퇴행성질환과 자가면역질환 등 비항암 분야까지 적용 범위를 넓히는 중장기 로드맵도 제시했다.
김용주 리가켐바이오 회장은 8일 열린 '글로벌 R&D(연구개발) 데이 2026'에서 "중국 기업들이 기존 기술을 빠르게 따라오는 상황에서 플랫폼을 조금 개선하는 수준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시장의 판을 바꾸는 '초격차'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DC 진화 넘어 비항암까지…개발 방식도 바꾼다
한진환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신약연구소장은 이날 ADC의 한계인 약물 내성, 독성, 적응증 확대를 해결하기 위한 차세대 플랫폼 전략을 공개했다.
우선 '엔허투' 등 기존 ADC가 사용하는 CPT(캄프토테신) 계열을 쓰지 않는 토포이소머라제1 저해제를 개발해 내성 문제를 극복한다. 여기에 표적단백질분해제(TPD), 면역 자극제 등 새로운 작용기전(MoA)을 접목하고, 두 개의 약물을 동시에 탑재하는 이중 페이로드(ADC가 암세포에 전달하는 세포독성 약물) 기술도 확보할 계획이다.
면역항암 분야에서는 종양에서만 활성화되는 STING 작용제(선천면역을 활성화해 항암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물질)를 개발해 전신 독성을 줄이고, 면역원성 세포사멸(ICD)을 활용해 면역항암제와의 병용 효과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ADC 플랫폼 자체도 고도화한다. 정철웅 ADC연구소장은 약물항체비율(DAR)을 낮춘 'Low DAR' 플랫폼을 통해 혈중 안정성을 높이면서 종양 내 약물 전달 효율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기반으로 다중 표적 ADC를 개발하고, 장기적으로는 신경퇴행성질환과 자가면역질환 등 비항암 분야로 플랫폼을 확장할 계획이다.
신약 개발 방식도 바뀐다. 후보물질 발굴 단계부터 중개연구팀이 참여해 바이오마커(생체표지자)를 함께 설계하고, 인공지능(AI) 기반 전임상 데이터 분석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은 후보물질에 연구개발 역량을 집중한다.
외부 기술을 적극 도입하는 '오픈이노베이션'도 확대한다. 한 CTO는 "모든 기술을 자체 개발할 필요는 없다"며 "핵심은 자체 플랫폼에 외부 기술을 빠르게 접목해 경쟁자보다 먼저 앞서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전략을 바탕으로 회사는 매년 4~5개의 임상시험계획(IND) 승인 단계 후보물질을 확보해 5년 안에 임상 단계 파이프라인을 20개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이를 통해 계열 내 최고(Best-in-class)와 계열 내 최초(First-in-class) 신약을 지속적으로 창출한다는 구상이다.
올해도 5개 안팎의 후보물질이 IND 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임상 단계 프로그램은 6개였으며, 올해는 이미 4개가 신규 진입했거나 진입을 앞두고 있다.
◇항체 내재화·후기 임상으로 '빅딜' 노린다
사업개발 전략도 달라진다. 그동안 외부 항체를 도입하거나 공동 개발해 기술이전 수익을 나눴다면, 최근 확보한 항체 설계 역량을 바탕으로 항체 내재화 체계를 구축했다. 자체 설계한 항체를 활용해 향후 기술이전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일부 파이프라인은 초기 기술이전으로 현금흐름을 확보하고, 경쟁력이 높은 자산은 임상 후기까지 직접 개발한 뒤 플랫폼과 함께 묶어 대형 기술이전을 추진한다.
채제욱 최고사업개발책임자(CBDO)는 "과거에는 자금 부담 때문에 초기 기술이전이 불가피했지만 이제는 직접 개발과 기술이전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며 "초기 기술이전과 후기 임상 자산을 함께 확대해 기술이전 규모와 부가가치를 모두 높이겠다"고 말했다.
파트너사의 임상 성과도 새로운 수익원이 된다. 채 CBDO는 "재기술이전(Sub-license)이 이뤄질 경우 선급금과 마일스톤 일부를 함께 받는 구조"라며 "파트너의 임상 진전이 곧 리가켐바이오의 추가 수익으로 이어지는 사업 모델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하반기부터 성과가 가시화될 전망이다. 일본 오노약품공업의 L1CAM 표적 ADC 'LCB97'은 임상 1상에 진입했고, 체코 소티오의 'SOT106'도 하반기 임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연말에는 영국 익수다테라퓨틱스의 HER2 표적 ADC 'IKS014'와 중국 시스톤파마슈티컬스의 ROR1 표적 ADC 'CS5001'의 임상 1b상 데이터가 공개된다.
두 회사 모두 글로벌 빅파마와 재기술이전을 추진하고 있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경우 리가켐바이오 역시 계약에 포함된 수익 분배 조항에 따라 선급금과 마일스톤 수익을 확보할 가능성이 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