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주 기업 스페이스X의 나스닥 상장으로 글로벌 우주산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일찍이 우주사업에 투자한 제약사 보령(003850)의 우주 투자자산이 한 분기 만에 93억원 증가하며 1000억원대를 넘어섰다.
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보령의 우주 관련 주요 투자자산의 장부가액이 한 분기 만에 총 93억 6726만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이는 실제 회수된 수익이 아닌 장부상 가치 평가에 따른 미실현 이익이다.
전분기(작년 4분기)와 비교하면, 보령의 가장 큰 투자처인 미국 민간 우주정거장 기업 액시엄 스페이스(Axiom Space)의 장부가액은 696억 3986만원에서 734억 4969만원으로 약 38억원 증가했다.
달 탐사 기업 인튜이티브 머신스(Intuitive Machines, Inc.) 투자 평가액은 같은 기간 221억 7945만원에서 267억 5114만원으로 약 45억원 늘었다. 우주·딥테크 투자 펀드 '아우렐리아 펀드(Aurelia Foundry I, L.P.)도 약 23억원에서 33억원으로 상승했다.
이들 자산을 합산한 총평가액은 직전 분기 말 941억 3370만 원에서 당분기말 1035억 95만원으로 늘어났다. 이 같은 변화는 글로벌 우주 관련 기업의 주가 흐름과 환율 효과, 그리고 분기 말 공정가치 평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4년 전 '우주 헬스케어' 택한 오너 3세
보령의 우주사업 투자는 김정균 대표 주도로 2022년 본격화됐다.
김 대표는 김은선 보령홀딩스 회장의 아들로, 보령 창업주인 김승호 명예회장의 손자로, 2022년부터 보령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맡았다.
회사는 2022년 미국 액시엄 스페이스에 약 5000만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642억원)를 투자하며 '우주 헬스케어' 사업에 진출했다. 이후 추가 투자 등을 통해 관련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왔다.
국내 제약업계에서 우주라는 이종 산업에 투자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었다. 김 대표는 우주를 새로운 시장이라고 봤다. 특히 우주 환경에서의 의약품 개발에 주목했다. 우주 공간의 미세중력 환경을 활용해 단백질 결정화, DNA 나노물질 조립 등 지구에서 어려운 연구의 한계를 넘으려는 것이다. 보령은 이런 시각하에 '케어 인 스페이스(CIS)'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김 대표는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미래에 우주는 사람이 머무는 새로운 생활 공간이 될 것"이라며 "우주에서 신약을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명유지 인프라 전반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보령의 우주사업은 신약을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약 개발을 돕는 연구·검증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민간 우주정거장을 기반으로 글로벌 헬스케어 실험 생태계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아울러 "단기 수익보다 20~30년 뒤 우주 관광과 상시 우주 거주 시대를 보고 선제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페이스X 이후 재평가"…우주 산업 성장 기대감
다만, 그동안 일부 주주를 비롯한 시장 일각에선 보령의 우주 투자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다.
이 회사 안팎에서 기존 제약 사업에 집중해야 할 자원이 상대적으로 수익 실현 가능성이 불확실한 우주 신사업에 분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신약 개발 역량이 우주 투자로 인해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린 것이다.
하지만 최근 스페이스X의 나스닥 상장 이후 우주 산업 전반에 대한 투자 기대가 다시 확대되는 분위기가 생기면서, 보령의 선제적인 우주 사업 투자 전략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민간 우주 인프라 구축이 본격화되면서 초기 단계 기업들의 기업가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보령이 보유한 우주 투자 자산도 장부상 가치 변화 폭이 확대되고 있다.
다만 보령의 실제 현금 회수(Exit)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투자 자산이 나스닥 상장사인 인튜이티브 머신즈를 제외하면 대부분 비상장 기업 또는 사모펀드 지분으로 구성돼 있어 공정가치 평가에 따라 분기마다 장부가 변동이 발생하는 구조다.
◇본업 제약사업 고도화…항암제·CDMO 확장
한편, 보령은 본업인 제약 사업 전략도 고도화하고 있다.
고혈압 치료제를 비롯한 주요 제품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유지하는 동시에, 항암제와 글로벌 위탁개발생산(CDMO)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회사의 1분기 매출액은 2554억원, 영업이익은 20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2%, 84.7% 증가했다.
특히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가 보유했던 오리지널 항암제 브랜드를 인수해 직접 제조·판매하는 LBA(Legacy Brands Acquisition·레거시 브랜드 인수) 전략으로 업계의 관심을 모았다.
보령은 2024년 9월 사노피와 항암제 '탁소텔' 등 글로벌 비즈니스 인수 계약을 체결했으며, 지난달 거래를 최종 종결하고 글로벌 판매를 개시했다.
LBA는 특허가 만료되었거나 성숙기에 접어든 글로벌 오리지널 의약품을 인수해 기존 브랜드 인지도와 시장 점유율을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방식이다. 보령은 이를 통해 '탁소텔(도세탁셀)', '젬자(젬시타빈)', '알림타(페메트렉시드)' 등 주요 오리지널 항암제 포트폴리오를 확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