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코스닥 시장 출범 30주년을 맞았다. 1996년 7월 1일 출범한 코스닥은 지난 30년간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성장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특히 당장 이익을 내지 못하는 초기 혁신 기술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기술특례 상장 제도는 바이오·의료 기술 기업이 자본시장에 진입하는 통로가 됐다.
30년이 지난 지금 K-바이오, 의료기기 산업과 코스닥 시장은 새 변곡점을 맞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298380), 알테오젠(196170), 리가켐바이오(141080)등 기술 특례로 코스닥에 상장한 주요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조(兆) 단위 기술 수출 및 상용화 성과를 거두며 기술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1일부터 3일까지 진행되는 코스닥 30주년 기념 행사 'KOSDAQ Connect 2026'에는 알테오젠, 에이비엘바이오, 오스코텍(039200), 온코닉테라퓨틱스(476060), 파마리서치(214450), 클래시스(214150), 에임드바이오(0009K0), 오름테라퓨틱(475830), 알지노믹스(476830), 큐로셀(372320), 넥스트바이오메디컬(389650), 리브스메드(491000), 엔솔바이오사이언스 등 기술력을 인정받은 바이오기업이 대거 참가해 기관 투자자들과 만난다.
이는 코스닥 시장에서 제약·바이오 산업이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바이오기업들은 상장 유지 기준 강화와 투자 심리 위축이라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바이오 산업의 성장을 지원하던 시장이 이제는 '성과와 신뢰'를 요구하는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코스닥 성장 발판으로 기술 수출 성과 키워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술 수출은 공개 기준 8건, 총계약 규모는 86억6675만 달러(약 13조4500억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간 기술 수출 규모의 절반을 이미 넘어섰으며, 2년 연속 역대 최대 실적 경신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가장 큰 계약은 아리바이오가 체결했다. 경구용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AR1001'의 글로벌 독점 권리를 중국 푸싱제약에 이전하며 총 47억 달러(약 7조원) 규모 계약을 성사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역사상 최대 규모 기술 수출이다.
알테오젠은 인간 히알루로니다제 플랫폼 'ALT-B4'를 앞세워 GSK 계열사와 바이오젠에 잇달아 기술을 이전했다. 큐라클과 오스코텍 등도 조 단위 계약을 체결하며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했다.
코스피 상장사인 한미약품(128940)은 GLP-2 기반 신약 '소네페글루타이드'를 미국 일라이 릴리에 기술 수출했다. 이번 계약은 선급금 7500만달러(약 1160억원)을 포함해 총 규모가 최대 12억6000만달러(1조9520억원)다.
업계에서는 최근 기술 수출이 과거와 질적으로 달라졌다는 평가도 내놓는다. 초기 단계 계약에서 벗어나 임상 단계 신약과 글로벌 판권 계약이 늘면서 선급금 규모도 예전보다 커졌다는 분석이다.
◇기술은 인정받는데…증시는 '소외'
반면, 시장의 평가는 다소 엇갈렸다. 올해 상반기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중심의 증시 상승세가 이어지는 동안 제약·바이오 업종은 소외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RX 헬스케어지수는 올해 상반기 연초 대비 13.7% 하락했다.
시장에서는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관련 대형주로 투자자금이 집중된 데다,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연구개발(R&D) 중심의 성장주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일부 기업의 회계·공시 논란이 업종 신뢰 훼손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제약기업 관계자는 "전쟁, 금리 같은 대외적 요인뿐 아니라 일부 개별 기업의 이슈가 바이오 업종 전반의 신뢰 저하로 이어지면서 투자심리 회복이 늦어지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선아 하나증권 연구원은 "국내 바이오 업종이 미국 금리와 미국 제약·바이오 시장 흐름에 높은 연동성을 보이는 가운데 실적 부진이 이어질 경우 밸류에이션(가치평가) 회복이 제한될 수 있다"며 "제약·바이오 업종의 주가 회복을 위해서는 기술 이전을 통한 성장성 입증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근에는 기술 수출뿐 아니라 임상 데이터, 마일스톤 수령, 상업화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도 자리 잡고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과거에는 네이처 매디슨 같은 국제 학술지에 논문이 실리면 상한가를 기록하고, 기술 수출 자체가 신약 개발 성공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며 "이제는 기술 이전은 신약 개발 과정의 한 단계일 뿐이며, 임상과 사업화까지 이어지는 지속 가능한 사업 구조를 중요하게 보는 시각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제 K-바이오는 '꿈을 지탱하며 서사로 오르던 시대'에서 '데이터로 증명하는 시대'로 완벽히 넘어왔다"고 진단했다.
◇촘촘해진 검증…물갈이 시작되나
이달부터 코스닥 상장 유지 요건도 강화됐다. 시가총액 기준은 기존 150억 원에서 200억 원으로 높아지고, 주가 1000원 미만 종목에 대한 관리종목 및 상장폐지 요건이 새롭게 도입됐다. 반기 기준 완전자본잠식도 상장폐지 심사 대상에 포함된다.
금융 당국은 액면병합 등을 통해 상장폐지 기준을 우회하는 사례를 막기 위한 보완 장치도 마련했다. 이번 제도 개편은 장기간 실적 없이 자금 조달에 의존해 온 이른바 '좀비기업'을 시장에서 신속히 퇴출하겠다는 취지다.
기업공개(IPO) 시장에서도 선별 기조는 뚜렷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술특례로 상장한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은 6곳으로 지난해와 같았지만, 상장예비심사 기간은 평균 75.7영업일로 크게 단축됐다.
심사가 빨라졌다고 문턱이 낮아진 것은 아니다. 일부 기업은 예비심사 단계에서 자진 철회를 선택했고, 상장한 기업들도 평균 2.5차례 증권신고서를 정정하며 사업성, 위험요인, 기업가치 산정 등에 대한 금융당국의 검증을 거쳤다.
또 금융당국이 코스닥 상장사를 프리미엄·스탠다드·관리군으로 나누는 승강형 세그먼트 도입을 추진 중이다.
업계에선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신약 개발은 통상 수년에서 10년 이상이 걸리는 만큼 적자가 불가피한 산업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다만, 부실 기업 정리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바이오 산업 전반의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이승규 부회장은 "시장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상장 유지 요건 강화는 필요하다"면서도 "혁신 기술이 도전할 수 있는 환경도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차손이나 기술특례 상장 기업의 매출 요건 등은 바이오 산업 특성을 반영해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상장 문턱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상장 이후 기업에 대한 관리·감독과 투자문화의 성숙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IPO 문턱이 낮을 때 상장한 이후 공시 논란을 키워온 일부 기업에 대한 핀셋 관리·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혜민 연구원은 "국내 바이오 투자 시장이 성숙하고 있는 동시에 데이터 검증 없이 수급과 스토리만으로 급등하는 '밈(Meme) 주식'이 공존하고 있어 투자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K-바이오는 부실기업 퇴출 가속화와 공시·회계 규율 강화를 통해 신뢰도 높은 시장으로 바꾸려는 과정에 있다"면서 "전문 사모펀드와 바이오 전문 기관의 분석 역량이 강화될수록 근거 없는 기대감만으로 오른 종목은 더 자주 흔들리고 '밈 주식'의 수명은 짧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