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효능이 좋고 안전한 물질이라도 CMC(제조·품질관리) 허들을 넘지 못하면 신약 허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KCMC(한국CMC서비스산업연구조합)를 중심으로 공공 플랫폼과 인력 양성 체계를 구축해 한국이 직접 CMC 역량을 키우겠습니다."

이상래 한국CMC서비스산업연구조합(KCMC) 혁신기술위원장이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KCMC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만난 이상래 KCMC 혁신기술위원장(아주대 의대 교수)은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그동안 효능과 안전성에만 집중해왔지만, 정작 신약 허가의 마지막 관문인 CMC 역량은 충분히 키우지 못했다"고 진단하며 이같이 말했다.

◇"좋은 신약도 CMC 못 넘으면 허가 없다"…신약 개발의 숨은 병목

CMC는 신약 후보물질을 실제 의약품으로 개발하기 위해 제조 공정과 품질, 안정성 등을 검증하는 과정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효능·안전성 연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고, 비용 부담 때문에 상당 부분을 중국 업체들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의약품 공급망과 기술 주권의 중요성이 커지고, 신약 허가 과정에서 제조·품질 검증 기준이 강화되면서 CMC는 제약·바이오 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위원장 역시 CMC 전문가는 아니었다. 오랜 기간 치매와 파킨슨병 등을 연구하며 다수의 논문과 특허, 기술이전 경험을 쌓았지만, 2022년 신약 개발 업체 카이저바이오를 창업해 직접 신약 개발에 뛰어든 뒤에야 CMC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그는 "막상 신약 개발 현장에 들어와 보니 전임상부터 임상, 인허가에 이르기까지 매 단계에서 CMC 문제로 좌초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며 "그동안 국내 기업들이 신약 허가 단계까지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다 보니 CMC의 중요성을 체감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제약·바이오 전문지 파마 매뉴팩처링(Pharma Manufacturing)에 따르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020~2024년 신약 승인을 보류하며 기업들에 보완을 요구한 사례의 74%는 CMC 문제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약효와 안전성 못지않게 CMC 역량이 신약 허가의 핵심 변수로 된 것이다.

그는 특히 신약 개발 비용의 상당 부분이 CMC에 투입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신약 하나 개발에 1조원이 든다고 하면 절반 이상이 CMC에 사용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CMC를 뒤늦게 고려했다가 개발 전략 전체가 흔들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 위원장은 "초기 독성시험을 마친 뒤 허가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약물이 빛이나 열, 습기 등에 노출되면서 분해되면 새로운 불순물이 생길 수 있다"며 "이 경우 규제당국은 새로 생성된 물질에 대해서도 독성 자료를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이미 수십억원을 투입해 독성시험을 마쳤더라도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시험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벤처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며 "결국 CMC를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으면 신약 개발 전체 전략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의존이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기술 유출과 데이터 주권 문제로 이어진다고도 우려했다.

이 위원장은 "효능과 안전성 데이터는 투여 결과지만, 물질 자체에 대한 핵심 데이터는 CMC에 있다"며 "우리나라 기업들이 중국에 의뢰하면서 중요한 제조·품질 데이터가 해외에 축적되는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중국에 의뢰한 뒤 자사 물질과 유사한 정보가 현지 기업 홈페이지에 공개되는 사례까지 경험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중국 바이오 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시행된 생물보안법(Biosecure Act)에 따라 CMC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는 "미국은 자국 내에서 안전한 의약품 공급망을 구축하려고 한다"며 "제조·품질에 대한 검증은 앞으로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수동 한국CMC서비스산업연구조합(KCMC) 이사장(오른쪽 첫 번째)과 이상래 혁신기술위원장(오른쪽 네 번째)이 구혁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가운데)과 간담회를 가진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KCMC

◇中 의존 벗어나려면 국가 플랫폼 필요…KCMC, 인력·인허가 지원 나선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이 위원장은 지난해부터 CMC의 중요성을 적극 알리기 시작했고, 약 1년의 준비 끝에 지난 3월 KCMC를 출범시켰다. 그는 지난 4월 국가 차원의 바이오 정책·규제·투자를 총괄하는 범정부 컨트롤타워인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위촉돼 CMC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KCMC는 김수동 아주대 교수(전 아주대 제약임상대학원장)가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산업기술연구조합으로 정식 승인을 받았다. 국가신약개발재단(KDDF)과 협력해 공공 플랫폼 구축부터 인력 양성, 글로벌 인허가 지원까지 아우르는 CMC 전 주기 생태계 구축에 나설 계획이다.

KCMC는 ▲공공 CMC 플랫폼 구축 ▲전문 인력 양성 ▲글로벌 인허가 지원 체계 마련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국내에서 CMC를 잘하는 기업은 20곳 안팎이지만 전문가 평균 연령이 50대 중반에 달한다"며 "젊은 인력이 유입되고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특정 기업이 모든 CMC 과정을 담당하기 어려운 만큼 컨소시엄 기반의 공공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CMC는 중소 CMC 기업과 오송·대구 첨단의료복합단지, 신약개발 관련 기관 등이 네트워크를 구성해 항체·약물접합체(ADC), 세포·유전자치료제(CGT) 등 모달리티(치료전달법)별로 역할을 나누고, 조합이 인허가와 규제 대응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지금까지 국내에는 실제 실무 인력을 키우기보다 관리 인력만 많았다"며 "소를 키우는 사람은 없고 목장주만 있었던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산업 전체를 키우기 위해서는 정부가 공공 영역에서 CMC 플랫폼과 인력 양성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무리 효능이 좋고 안전한 신약 후보물질을 만들어도 CMC 허들을 넘지 못하면 허가를 받을 수 없다"며 "지금이야말로 국내에 CMC 데이터와 인력을 축적해야 한다. CMC는 한국 제약·바이오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퍼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