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식 14만941주는 한국 사회 및 신탁 기금에 기증한다. 아들 일선은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지난 24일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유한양행(000100) 옛 사옥에서는 창업자 고(故) 유일한 박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마치 자신의 유언장을 직접 읽어주는 듯했는데요. 그는 1971년 별세하며 손녀딸에게 1만달러, 딸에게 땅 5000평을 남기고 나머지 재산은 사회에 기부했습니다.
이는 유한양행(000100)이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홍보 영상입니다. 과거 라디오에서 나왔던 유일한 박사의 목소리를 AI(인공지능)로 복원한 것인데요.
유한양행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창업자의 정신을 이어받아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사용한 옛 사옥을 복합 문화 공간 윌로우 하우스로 만들었습니다. 시민들은 누구나 자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데요. 이날 미디어 투어를 진행하며 이런 영상을 공개한 것입니다. 회사는 창업자의 철학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AI 영상을 만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내 제약사들이 최근 앞다퉈 AI 영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선 제작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는데요. 그동안 제약사들이 일반 의약품의 성분과 효과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면 최근에는 AI로 보다 다양한 시도를 하며 젊은 세대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분위깁니다.
85년 된 제약사 일동제약(249420)은 최근 비타민 피로 회복제 아로나민 골드 액티브를 AI로 광고했습니다. 노란색 비타민이 운동하는 현대인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영상입니다. "피로로 꽉 막힌 하루, 활력 스위치 온"이라는 음성과 함께 화면 구석에는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됐습니다'라는 문구가 뜨는데요.
아로나민은 일동제약이 1963년 선보인 장수 브랜드입니다. 일동제약의 작년 아로나민 제품군 매출은 715억원입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3%에 달하는 1등 품목인데요. 최근 MZ세대(1980~2000년대생)를 겨냥해 이미지를 젊게 바꾸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건강과 즐거움을 함께 추구하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트렌드를 반영했다"고 밝습니다.
68년 된 동국제약(086450)도 최근 탈모약 판시딜 광고를 AI로 제작했습니다. '탈모주의보'라는 이름의 록가수가 "텅빈듯한 허전함 어떻게 채워야할까" "오늘부터 먹는 탈모약으로 덜 빠지고 풍성해질테니" "탈모인들 일어나라"는 노래를 부르는 영상입니다. 이른바 'B급 감성'이 통하며 소셜미디어(SNS)에서 누적 조회수 1100만회를 넘겼는데요.
그밖에 '전입선'이라는 트로트 가수가 "오늘도 안절부절 항상 불안에 떠는 내가 싫어"라는 노래를 부르며 전립성 비대증 배뇨 장애 치료제 카리토포텐을 알리는 영상도 제작했습니다. 동국제약은 작년 판시딜과 카리토포텐을 포함한 캡슐 의약품 매출이 571억원인데요.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 수준입니다. 회사 관계자는 "AI로 캐릭터를 제작하고 음악과 유쾌한 서사를 담아 시청자들이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는데요.
제약사들이 너도나도 AI 콘텐츠 제작에 뛰어드는 까닭은 싸고 빠르기 때문입니다. 제작비가 치솟는 상황에서 AI로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고객의 눈길을 끌겠다는 것인데요. 다만 AI 영상을 제작할 때는 효능을 과장하거나 오인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명령어를 입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AI 광고는 단순히 제품 효과를 알리는 것을 넘어 다양한 콘셉트를 실험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데요. 수십년 이상의 업력을 간직한 전통 제약사들이 AI 영상으로 미래 고객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업계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