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가 위고비, 마운자로 등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비만치료제를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의료계와 제약업계가 잇따라 반대·우려 목소리를 내고 있다.
비만약 오남용 관리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환자 치료 접근성과 사회적 인식, 국제 보건의료 추세, 신약 개발 환경 등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게 주요 논리다.
식약처는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와 마운자로(성분명 티르제파타이드) 등 GLP-1 계열 비만치료제를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추가 지정하는 내용의 '오남용 우려 의약품 지정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행정 예고하고 26일까지 의견 청취를 진행한다.
이에 주요 의학회와 산업계가 의견을 잇달아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남용 우려 의약품 지정 제도는 특정 의약품의 오남용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나 국민 건강 위해가 우려될 경우 식약처가 별도로 지정·관리하는 제도다.
대상 의약품은 제품 용기나 포장에 관련 표시를 해야 하며, 의약분업 예외 지역에서도 의사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없게 된다. 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약품 안전 사용 서비스(DUR)를 통한 처방 현황 모니터링 대상이 된다.
식약처는 최근 비만치료제 수요 증가와 함께 미용 목적 사용, 온라인 거래 등을 고려한 규제책으로 오남용 우려 의약품 지정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의약계에서는 비만 치료에 도움이 안 되는 규제라고 지적이 나왔다.
오히려 '오남용 우려 의약품'이라는 명칭이 부여될 경우 비만 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심화시키거나, 치료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대한가정의학회 설명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는 GLP-1 계열 치료제를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고 성인 비만 환자를 위한 치료제로 권고했고, 이후 각국은 적정 사용을 전제로 환자 접근성을 높이고 제도권 내 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발전시켜 왔다.
대한가정의학회 비만이사로 활동 중인 김선현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교수는 "국내에서 GLP-1 계열 비만치료제를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추진될 경우 비만 환자의 치료 접근성과 진료 현장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GLP-1 계열 비만은 여전히 사회적 편견과 낙인이 큰 만성질환"이라며 "비만 치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환자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고 치료 시작이나 지속을 어렵게 만들어 결국 건강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계에서도 국산 비만 신약 개발이 본격화한 시점에서 새로운 규제 등장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한미약품(128940)은 에페글레나타이드의 품목 허가 심사를 받고 있으며, HK이노엔(195940)은 에크노글루타이드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셀트리온(068270), 삼성바이오에피스, 대웅제약(069620), 일동제약(249420), 디앤디파마텍(347850), 이엔셀(456070), 프로티나(468530) 등이 다양한 기술로 비만 신약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이 아직 초기 성장 단계라는 시각에서 국내 규제가 향후 국산 비만 신약 개발과 시장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GLP-1 연구 권위자인 최형진 서울대 의대 교수는 지난해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비만치료제 시장은 아직 서부 개척 시대"라며 "후발 주자에게도 충분한 기회가 남아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비만 신약이 GLP-1뿐만 아니라 GIP, 삼중 작용제, 전자약, 디지털 치료제 등으로 계속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비만치료제 개발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의미다.
비만치료제 수요 증가에 대응해 해외 주요국은 주로 처방과 유통 관리에 초점을 두고 관리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GLP-1 계열 치료제를 필수의약품 목록에 포함하고 성인 비만 환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당시 WHO는 위조·불량 의약품 확산을 대응하는 방안으로 규제된 유통망 구축, 의료진 처방, 환자 교육, 감독 강화 등을 제시했다.
영국은 온라인을 통한 비만치료제 처방 증가에 대응해 환자 확인 절차를 강화하고 있으며, 영국 의약품·의료기기규제청(MHRA)은 불법 비만치료제 제조 시설 단속과 위조 의약품 유통 차단에 나서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역시 세마글루타이드와 티르제파타이드 관련 불법 온라인 판매와 위조 의약품 유통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호주 의약품규제청(TGA)은 GLP-1 계열 의약품의 비허가 복제 조제를 제한하는 조치를 시행 중이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환자(국민)의 안전을 위한 목적이라면 치료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해 정식 허가를 받아 나온 신약에 대한 규제보다 해외처럼 짝퉁 위고비·가짜 마운자로 등 불법·위조 의약품 유통 강화에 규제 역량이 집중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26일까지 수렴한 의견을 검토한 뒤 7월 중 규제개혁위원회 회의에서 해당 안건을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