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가 단순 위탁개발생산(CDMO)을 넘어 자체 개발한 '플랫폼 기술이전(L/O)'을 통해 새로운 수익원 확보에 나선다. 신약 개발사들이 겪는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는 맞춤형 플랫폼을 제공해, 기존 수주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에 지식재산권(IP) 기반의 부가가치를 더하겠다는 전략이다.
정형남 삼성바이오로직스 바이오연구소장(부사장)은 24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바이오USA' 현장에서 국내 취재진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고 "경쟁사들처럼 우리도 자체 플랫폼 기술을 개발·수출해 새로운 매출 동력으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20% 프리미엄' 론자·'생물보안법 타격' 우시…시장 재편 노리는 삼성
자체 플랫폼을 활용한 기술이전은 글로벌 CDMO 기업들의 핵심 수익 모델이다. 독보적인 기술 IP를 제공하면 고객사의 전환 비용이 높아져 강력한 '락인'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스위스 론자는 포유류 세포주 개발 플랫폼 'GS 시스템', 이중항체 플랫폼 'bYlok' 등 바이오 의약품 전 공정에 걸친 IP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투자은행 제프리스에 따르면, 론자는 이러한 IP를 바탕으로 일반 CDMO 기업 대비 15~20%의 가격 프리미엄을 누리는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중국 우시바이오로직스는 독자적인 이중항체 플랫폼 '우시바디'와 세포주 개발 플랫폼 '우시아' 등을 보유하고 있으나, 지난해 말 미 생물보안법 통과 이후 시장 내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 내 고객사들이 대체 CDMO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에게 이탈 고객사들을 흡수할 수 있는 틈이 열린 셈이다.
여기서 기회를 포착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최근 '기술사업개발(Technology BD)그룹'을 신설하고 전방위적인 플랫폼 세일즈에 나섰다.
◇'에스듀얼' 등 3대 플랫폼 확보…기술적 한계 극복에 초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글로벌 무대에 선보일 플랫폼은 ▲이중항체 플랫폼 '에스듀얼(S-DUAL)'▲항체약물접합체(ADC) 페이로드 링커 ▲뇌혈관장벽(BBB) 셔틀 플랫폼 등 세 가지다. 가장 개발이 진전된 것은 2022년 출시 후 고객사 물량에 적용해 온 에스듀얼이다.
이중항체는 서로 다른 표적 항원에 동시 작용해 단일항체보다 효능이 높지만, 결합 부위를 추가하면서 안정성과 생산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정 부사장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쪽 팔이 긴 비대칭형 구조를 고안했다"며 "특정 결합을 유도하는 'CH3 도메인'을 추가해 결합 오류를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기존 경쟁 약물과 비교해 위암·유방암 동물 모델에서 월등한 종양 억제 효능을 보였고, 면역원성도 현저히 낮다"고 강조했다.
ADC 신약 개발 기업 에임드바이오(0009K0)와 공동 개발한 ADC 페이로드 링커, 난치성 뇌 질환 약물의 전달률을 높이는 BBB 셔틀 플랫폼도 본격적인 수요 확보에 나선다.
ADC는 암세포만 타격하는 항체에 독성을 지닌 약물(페이로드)을 결합한 신약으로 흔히 '유도 미사일'에 비유된다. 여기서 링커는 항체와 약물을 묶어주며 목표물(암세포)에 도달했을 때만 약물이 분리되도록 제어하는 연결고리다.
정 부사장은 "에임드바이오와 협력해 주변 암세포 타격 효과는 높이고 정상 세포 부작용은 낮춘 링커-페이로드 조합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양사는 '라이프 사이언스 펀드(삼성물산·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에피스 공동 조성)'를 통해 2023년 공동 연구에 착수했으며, 이번 행사에서 그 첫 번째 성과를 공개했다.
BBB 셔틀 플랫폼은 뇌혈관의 촘촘한 방어막을 뚫고 치료 약물을 뇌 내부로 전달하는 기술로, 알츠하이머·파킨슨병 등 뇌 질환 신약 개발에 활용된다. 기존 경쟁 기술이 겪던 빈혈(적혈구 파괴) 등 독성 부작용을 개선한 투과 기술을 확보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신약 개발 안 해" 선 그었지만…그룹 내 '교통정리' 과제
다만 계약 체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정 부사장은 "플랫폼 기술은 효능뿐 아니라 독성, 안정성, 약동학(PK) 데이터가 완벽히 검증돼야 한다"며 "현재 영장류 대상 독성 시험 등을 통해 데이터를 구축 중이라 구체적 시점을 못 박기는 이르다"고 설명했다.
단, 미충족 수요가 큰 BBB 셔틀 플랫폼의 경우 초기 데이터만으로도 계약이 이뤄지는 시장 특성을 고려해 유연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CDMO 기업이 직접 신약을 개발해 고객사와 경쟁하는 것 아니냐'는 이해상충 우려에는 선을 그었다. 정 부사장은 "우리가 개발하는 것은 고객사가 신약을 잘 만들도록 돕는 서포트 기술(support technology)"이라며 "물질 소유권은 온전히 고객사가 가져가고, 우리는 플랫폼 라이선스 수익만 얻는 구조"라고 말했다.
한편, 그룹 내 바이오 계열사 간 사업 영역 중복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삼성에피스홀딩스(0126Z0)는 지난해 신약 후보물질 발굴을 전담하는 자회사 '에피스넥스랩'을 신설하고 ADC 및 약물전달 플랫폼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추진 중인 신규 플랫폼 사업과 일부 겹치면서 두 조직이 동일한 영역에서 각개전투를 벌이는 모양새가 됐다.
일각에서는 양측의 역할 분담과 사전 소통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정 부사장은 "사업 영역을 인위적으로 조정해 경쟁을 피하는 구조는 아니다"라며 "에피스넥스랩이 신약 개발 과정에서 우리 플랫폼을 필요로 한다면, 다수의 잠재 고객사 중 하나로서 기술을 도입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