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 시각) '바이오USA' 개막 이튿날을 맞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컨벤션센터. 수천 건의 파트너 미팅이 동시에 진행되는 행사장에서 글로벌 제약사와 바이오텍 경영진들은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기술이전이나 인수합병(M&A) 자체보다 계약 체결 이후를 더 중요하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기술과 좋은 계약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으며, 파트너십의 성패는 결국 관계와 실행력, 그리고 운영 체계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이날 '후기 자산 거래에서 상업적 성공 견인하기: 딜 이후 리스크 관리와 가치 실현(Driving Commercial Success in Late-Stage Asset Deal-Making – How to Navigate Risk and Realize Value Post-Deal)' 세션에 참석한 패널들은 한목소리로 "딜(계약)은 출발선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마리안 드 배커 비어바이오테크놀로지 최고경영자(CEO), 그레그 차우 수트로바이오파마 최고재무책임자(CFO), 마하 라다크리쉬난 소피노바인베스트먼트 수석 파트너, 토모히로 야마우치 아스텔라스파마 종양 사업개발 책임자, 존 드영 화이자 글로벌 사업개발 부사장이 23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바이오USA'에서 대담하고 있다./샌디에이고(미국)=박수현 기자

◇"빅파마는 거래보다 관계를 먼저 본다"

존 드영 화이자 글로벌 사업개발 부사장은 파트너십의 출발점으로 '관계 축적'을 꼽았다.

그는 "화이자는 4~6개월마다 주요 바이오텍과 정기 미팅을 갖는다"며 "바이오텍의 이야기를 듣고 데이터를 보면서 우리가 줄 수 있는 인사이트를 나눈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면 딜의 구조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엔 사업개발(BD) 조직만 참여하지 않는다. 드영 부사장은 "연구·임상·제조품질관리(CMC)·사업개발 인력이 함께 한다"며 "신약 개발은 결코 직선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항상 발생하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를 쌓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관계가 먼저'라는 원칙은 투자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유럽과 미국을 기반으로 80억달러(약 12조원) 이상을 운용하는 바이오 전문 투자사 소피노바인베스트먼트의 마하 라다크리쉬난 수석 파트너는 "포트폴리오 기업들에게 빅파마와 가능한 한 일찍 관계를 구축하라고 조언한다"며 "당장 거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뢰를 쌓고 문화적 적합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미래에 함께 일할 수 있는 상대인지를 판단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자산"이라고 덧붙였다.

◇"계약서보다 중요한 것은 운영 계획"

딜이 성사된 이후의 이야기는 더욱 현실적이었다.

차세대 ADC 플랫폼을 개발하는 미국 나스닥 상장 바이오텍 수트로바이오파마의 그레그 차우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많은 사람들이 파트너십 계약이 체결되면 일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때부터 진짜 일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 제약사와의 협력은 때로 하나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두 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운영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은 시간과 자원을 요구한다"며 "자체 프로그램의 지연은 감내할 수 있지만 파트너와의 지연은 다르다"고 말했다.

차우 CFO는 실제 아스텔라스와의 협력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복수의 해결 방안을 함께 제시하는 방식으로 신뢰를 유지했다고 소개했다.

드영 부사장은 계약 체결 이전부터 운영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파트너십 계약에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반드시 담겨 있어야 한다"며 "누가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떤 임상을 수행할 것인지, 의사결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가 명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상황을 계약서에 담을 수는 없다"며 "결국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과 협업 문화"라고 덧붙였다.

◇"자산을 넘기는 것과 가치를 넘기는 것은 다르다"

파트너십의 목적이 기술수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마리안 드 배커 비어바이오테크놀로지 최고경영자(CEO)는 "모든 딜 구조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라며 "어떤 자산은 직접 보유해야 하고 어떤 자산은 파트너와 함께 개발하는 것이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어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GSK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항체 치료제로 글로벌 시장의 주목을 받은 미국 바이오텍이다. 최근에는 감염병 중심 기업에서 면역학·종양학 기업으로 체질 전환에 나서며 대형 파트너십을 잇달아 체결하고 있다. 각각의 거래는 기술 도입, 상업화, 공동개발이라는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설계됐다.

2024년 프랑스 사노피로부터 T세포 인게이저(TCE) 자산과 플랫폼을 도입했고, 지난해에는 네덜란드 제약사 노르진과 만성 델타간염 치료제 상업화 계약을 맺었다. 지난 4월에는 일본 아스텔라스파마와 전립선암 치료제 후보물질 'VIR-5500' 공동 개발·상업화를 위한 최대 17억달러 규모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드 배커 CEO는 "아스텔라스와의 전립선암 파트너십에서 미국 시장 수익을 공유하고 공동 판매 권한을 확보하는 구조를 선택한 것도 장기적인 가치 창출에 참여하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고 했다.

이는 기술수출 규모와 계약금 자체에 주목해온 국내 바이오 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얼마에 계약했느냐보다 어떤 권리를 남겨뒀고 향후 가치 상승에 얼마나 참여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장에 참석한 한 국내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선 여전히 기술수출 자체를 성공의 종착점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며 "한국 바이오도 이제는 그런 긴 호흡의 게임을 배워나가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